모더나 접종 4주 후 근황
백신 맞고 한 달 후부터, 그러니까 2주 전부터 숨쉬기가 어려웠다. 백신 맞기 전에는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요즘은 숨을 하도 몰아쉬다 보니 갈비뼈가 확대된 것 같다. 숨 쉬는 걸 의식하지 않으면 평소 무호흡으로 있을 때도 많고, 무호흡으로 있다 보면 종종 짜증이 나고 컨디션이 나빠지는 등 피로하다. 주변인들에게 갑갑함을 호소하니, 많은 이들이 백신 접종 후 겪은 안 좋은 증상들을 내게 말해줬다. 생리불순, 장염, 심근염, 만성피로 등 제각기 다른 증상과 천차만별의 발현 기간에도 결론은 오직 하나뿐. "병원 가서 검사해봤는데, 아무 이상 없대."
그래서 병원을 안 가려고 했다. 의사가 내게도 아무 이상 없다고 말할 게 뻔하니, 그런 뻔한 소리를 들으면 화가 날 것 같았다. 엊그저께 자다가 새벽에 깨어나 가슴을 두드리며 여러 번 심호흡을 하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 전까진 말이다. 다음날 아침에 나는 혹시 내가 무슨 병이라도 걸렸나 전전긍긍하며 내과에 갔다. 안경을 쓰고 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피부가 하얗고 눈이 충혈된 내과 선생님은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몇 가지를 물었다. 여기까지 걸어오셨죠? 네. 뛰어오지는 않았어요. 계단 잘 올라가시죠? 네. 그렇다면 정상입니다. 백신 접종과 심근염 증상 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도... 그럼 전 왜 이런 거죠? 이번엔 내가 물으니, 스트레스 때문일 거예요.라고 하였고, 예전에도 스트레스받았지만 그때랑 지금이랑은 완전히 다른데요. 이런 경험은 처음인데요. 라 하니, 선생님은, 정 그러시면 엑스레이 찍고 심전도 검사해보시죠.라고 말했다.
폐 사진을 찍고 양말 벗고 누워서 심전도를 검사한 후 다시 진료실에 들어갔다. 정면 사진 보이시나요? 네. 뭐죠? 당신의 흉부입니다. 그런데요? 정상입니다. 심전도 결과도 정상입니다. 집에 가세요. 이상 없습니다. 선생님, 그럼 전 어떡해요. 일상생활이 힘든데요. 라고 물으니, 글쎄요. 지속되면 큰 병원 가서 다른 검사도 해보세요. 아무튼 지금 당장은,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라고, 선생님이 힘주어 말하며 고개를 모니터 쪽으로 돌렸다. 그만 나가라는 신호였다. 예상한 결과였지만, 예상했던 것만큼 화가 나진 않았다. 오히려 아무 이상이 없다는 선생님의 말에 안심이 되기까지 했다. 다만 선생님이 유일한 원인으로 지목한 게 스트레스였으니 나는 나의 스트레스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내 스트레스의 원인은 뭘까. 전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것이 원인 같기도 했다. 원인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망상 같았고, 어쩌면 내 자아에 뼛속까지 깊이 박혀있는... 아뿔싸, 또 너냐. 그랬다. 스트레스 촉발의 근본적인 요인이라면 늘 그랬듯, 지긋지긋한 나의 불안일 것이었다.
두 기수의 심리상담 경험이 있다. 3년 전 첫 심리상담을 받을 때,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어려워 안절부절못하다 물었다. 선생님, 혹시 저 그림 그리며 말해도 돼요?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서요. 스케치북에 그림 그리며 얘기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매번 상담이 끝날 때마다 하나씩 그림을 완성하여 나는 스케치북 위에 크레파스로 눈이 없는 물고기와 다리가 여섯개 달린 심해생물 등 총 7점의 괴상한 그림을 그려냈다. 나의 그림이란 나의 불안과 나의 합작이었던 것이지. 사람을 바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힘들었던 그때의 나란, 대부분의 사람들을 끔찍하게 여기고 있었다. 또한 그런 나를 들킬까 불안해하며 적당히 모두와 잘 지내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피가 마를 때까지 꺼내어 쓰고 있었다. 실은 난 사람이 너무 싫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책도 사람이 쓴 거고, 넷플릭스나 TV 프로그램도 사람이 만든 거고, 유튜브도 결국 전부 사람이 한 거라서 보기가 싫었다. 하지만 그런 내 상태를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말할 엄두도 못 냈기에, 그런 날들엔 꼭 내가 사람이 아니라 폐기를 기다리는 플라스틱 포장재 같았다.
포장재가 된 그때의 나는 달리 할 게 없어 죽음에 대한 생각에 깊이 잠기곤 했다. 삶은 죽음이란 목적지를 향한 하루하루의 여정 같았다. 일부러 죽을 생각은 없었지만, 열심히 살아보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다. 죽을 의지도 살 의지도 없는 나는 K-드라마 속 신파와 자멸 조의 한국소설이 불쾌하였고, 거리에서 스치는 연인이나 가족들의 다정한 모습이 역겨웠다. 그처럼 온갖 것을 싫어하는 나를 가장 싫어하며 꾸역꾸역 견디던 당시 내 삶의 중심엔 불안이 있었다. 싫다고 말하면, 재미없다고 말하면, 다 시시하다고 말하면 미움받을까 봐 불안했던 나. 내 마음이 무슨 테러분자라도 되는 냥 들키면 큰일이라도 날까 꽁꽁 숨기고 홀로 흑화 하던 나. 그랬는데,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가던 그때의 나를 자각한 후 수습해 정리하고 안간힘을 써 양지로 끌고 와 지금의 내가 되었는데, 백신을 맞은 후 부정적인 감정이 싹틈으로 인해 그때의 나로 돌아가게 될까 봐 무서웠다. 나의 두려움을 가장 잘 아는 나의 불안은 나를 비웃었다. 혐오의 검은 웅덩이에 몸을 반쯤 담그고 세상 모든 걸 미워하는 게 실은 네가 원하는 삶이잖아. 즐겨, 나의 숙주. 이런 소릴 해대며.
그래서 나는 최근에 그때처럼, 또 한 번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반대로 생에 대해 자각하였다. 그리곤 금세 알았다. 불안이 나를 비웃는 까닭, 내가 불안을 경계하는 까닭, 그것은 살고 싶어서임을. 과거엔 의지가 없었다지만, 지금은 달라. 숨 쉬기가 버거운 이 상황이 화가 나는 걸. 화가 나는 건 내가 지금의 생을 원하기 때문이며, 삶의 의지가 있기 때문일 테지. 나아지고 싶어서 병원에 다녀온 것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나는 아마도... 선생님이 아무 이상이 없다 했으니 언젠가 나아질 테지. 나아지고 나면 숨 쉴 때 느끼는 고통도 말끔히 잊힐 테고. 그러니 침착해져야 한다고, 불안이 뭐라 속삭이건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며 나의 회복을 기다려야만 한다며 나를 진정시켰다. 아아. 역시, 오래 전 그때와는 다르다. 불안에 압도당하지 않는다. 내가 불안을 압도한다.
가쁜 호흡을 다스리며 누워 나를 본다. 나는 누구인가. 나이도, 이름도, 외모도, 하는 일도 전부 지운 나를 나는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는가. 어디에도 실체는 없는데, 어째 이리 얽매이고 있나. 모든 감정도, 모든 고통도 몸에 걸친 옷과 매한가지로 한낱 겉치레에 불과한 것을.
얼른 나아지고 싶다. 언제쯤 숨을 편히 쉴 수 있을까. 최근에 추워져서 운동을 안 한 탓일까 생각하여 밖으로 나가 오랫동안 걷기도 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그래도 뭔가 노력을 해야하지 않나. 새해에는 다시 필라테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그러면 좀 나아지려나.
TIP. 마음이 불안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눈을 감은 채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하며 괜찮아. 좋아질 거야.라고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해봐요. 나를 치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람은 지금의 나라는 사실을 믿어요.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건 알약보다는 희망이 아닐까 하는. 우리는 언제까지나 스스로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사람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