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어디에서 자라 나에게 왔나
언제 어디서 태어나 자라왔나, 나의 불안. 성격이란 선천적인 것이라 바꿀 수 없다는 그릇된 신념을 안고 살아가게 만들었던 고질적인 질병, 나의 불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외부 자극에 의한 스트레스에 의해서, 그로 인한 육체적인 고통을 촉발하거나 고통 자체로 인하여 발생하던, 나의 불안. 의지보다는 억지로 살아가는 것이 보통의 인생이라며 나를 뾰족하게 몰아세우던, 나의 불안.
꾸역꾸역. 심리상담센터 선생님이 나에게 붙여준 내 인생의 별명이었다. 은겸 씨는 그동안 참 꾸역꾸역 살았네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느낀 건 반감이었으나 얼마 못가 선생님의 말을 납득했다. 맞아요 선생님. 나는 나 자신을 오랫동안 미워하며 방치했습니다. 그리고 삶이 원래 다 이런 줄, 남들도 다 이런 줄 알았어요. 꾸역꾸역 밥을 먹고 꾸역꾸역 출근을 하고 꾸역꾸역 일을 하고... 그랬던 은겸 씨가,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고 지금은 인생 최대의 만족감을 느낀다면서요. 그럼 행복한 삶을 선택하셔야죠. 앞으로도 프리랜서로 즐겁게 살라는 말입니다. 마음껏, 마음대로요. 선생님이 말했다. 그 말이 옳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는 운동이 좋았고, 한산한 낮에 은행에 가서 통장을 개설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됨이 좋았으며, 미뤄뒀던 병원 정기검진을 가거나 몸이 안 좋은 날은 열두 시간씩 죽은 듯 잘 수 있음이 좋았다. 바쁠 때는 새벽까지 일을 했다. 그렇지만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원 없이 책을 읽었으며, 종일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며 뒹굴거리기도 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결코 누릴 수 없었던 이 모든 것이 나의 일상이라는 게 그저 좋았다. 그럼에도 단 하루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것이 처음이라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건 직장에 다니건 그런 건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았다. 내 안엔 어떤 문제가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 귓가에 대고 내가 누리는 모든 행복은 내 것이 아니며, 곧 파괴될 것이라 속삭이던 못된 나의 불안이 바로 그 문제였고.
학교에 다닐 적부터 집단생활을 싫어했다. 집단에 귀속된 이들 중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렸고, 어떤 사람들은 포식자나 혹은 포식자의 오른팔이 되기 위해 천박한 권력관계를 다투었다. 사람은 좋지만 사람들은 싫었다. 집단은 늘 높은 확률로 감정 바이러스의 서식지였다. 그렇지만 세상은 원래 이러하니 어쩔 수 없다 생각했으며, 내가 이상한 거라고 자책하며 날 몰아붙이기도 했다. 조직에 맞지 않는다면 조직에 맞는 인간으로 날 바꿔야 한다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면서. 짜 맞춰진 퍼즐 조각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이탈된 퍼즐 조각의 운명은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거라면서. 그럼 버티고 바뀌어 완성된 새로운 내 자아란 실험으로 인한 유전자 조작 식물과 대기 오염으로 유전자가 변형된 식물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어느 쪽이건 상관없는 게 아닐까. 끔찍한 생각을 들키지 않으려고 늘 나는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알맞은 사람인 척했다. 인생이 불안 때문에 유예한 선택들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거대한 찌꺼기를 짊어지고 사는 것 마냥 버거웠다. 알맞은 척하는 나는 실은 부적합한 인간이라, 결국엔 내가 원하는 삶은 못 가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의 불안은 나를 비웃으며 속삭였다. 기운내, 나의 숙주.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책을 읽으면 생각은 가지를 뻗어나가며 자라 날때부터 썩은 새카만 열매를 맺었다. 나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나를 비교했다. 둘 중 누가 이기건 매번 나는 열등했다. 이처럼 부정적이며 비효율적인 사고패턴을 가진 사람의 삶이란 게 행복할리가. 놓아버리면 될 돌덩이를 기어이 짊어지고 한 걸음씩 발 딛는 하루하루는 비극적이었으며, 그때마다 나의 불안은 내게 끈끈하게 달라붙어 질척이고 있었다.
명상으로도 독서로도 월급으로 비싼 물건을 구매하며 일시적 쾌락을 좇는 것으로도 좀처럼 해결이 되지 않았던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마음으로 지난 8월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5주간의 심리상담을 통해 불안을 제거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나와의 공존 가능성은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걸 쓴다. 부정적인 경험이 축적되어 불안으로 맺히기까지의 과정을 나열하는 건 아무래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보다는 불안한 사람이 불안을 다루는 메뉴얼을 써보고 싶다. 불안하지만, 불안과 내가 어떤 방식으로 건 공존할 수 있음을, 공존의 작은 가능성이라도 좇으며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 이 글을 읽어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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