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제가 지는 걸 싫어합니다.
차를 산 뒤 처음으로 드라이브 가던 날을 생각한다. 학원 차가 아닌 내 차를 직접 운전한다는 것이, 조수석에서 브레이크를 밟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내가 내 차의 주인이고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내가 내 목숨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무섭고 떨려서 나는 전날 새벽까지 잠을 못 잤다. 약속시간보다 세 시간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심호흡을 백번 정도 하며 주먹을 꼭 쥐었다 폈다 하며 워밍업을 했지만, 그래도 긴장감은 사라지지를 않았다.
1%. 내가 살면서 평생 들었던 잔소리 중 그날 연수를 해준 지인으로부터 들은 잔소리의 총량. 야 제발 엑셀 좀 밟아. 아니 지금은 브레이크 밟아야지. 차선 왜 안 바꾸는데. 깜빡이 켜야지. 천천히 들어가. 아니 깜빡이 켰으면 빨리 들어가야지. 학원에서 뭐 배웠냐. 뒤에 트럭 온다. 룸미러 안보냐. 야야. 앞에 봐야지. 듣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진이 완전히 빠져버리는 이런 패턴의 잔소리가 두 시간 반 동안 이어지던 그날의 내 차 안. 뭐... 잔소리를 듣는 건 괴로웠지만, 목숨 걸고 연수해주는 지인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싶어 원망은 안한다. 그날 난 좀처럼 속력을 못 냈다. 규정속도에도 못 미치는 속도로 운행을 하다 보니 뒤따라오던 차들이 계속 차선을 바꿔 내 앞으로 끼어들었다. 깜빡이를 켜고 끼어드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운전이 서툰 나에게 보복이라도 하듯 깜빡이도 안 켜고 거칠게 끼어드는 차량도 많았다. 지인은 옆에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목적지의 절반도 못 가, 나의 뻘쭘함과 지인의 홧병의 콜라보로 연출한 싸늘한 적막때문에 차 안의 공기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날 나는 차선도 잘 못 바꿨다. 그러다 보니 유턴을 거듭하며 목적지와 점점 멀어졌다... 돌아올 땐 내 차를 지인이 운전했다. 지인의 조언대로 타인 운전자 보험을 미리 들어놓길 잘했다고 생각했었다.
난 겁이 많다. 벌레도 무섭고 귀신도 무섭다. 그 중 내가 다치는 게 제일 무섭다. 높은 곳에 서있으면 떨어질까 무섭고, 줄넘기를 하다가는 줄에 걸려 넘어질까 무섭다. 계단을 내려가다간 발을 헛디뎌 미끄러질까 무섭다. 외상에 대한 두려움의 온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높은 편이다. 여기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어릴 때 내가 워낙 자주 다쳤다. 길을 걷다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발을 헛디뎌서 넘어져 무릎이 까지는 게 일상이었다. 한 번은 뒤에서 짖으며 나를 쫓아오던 개를 피해 뛰다 표면이 울퉁불퉁한 돌계단에서 데굴데굴 굴렀고, 줄넘기를 하다 넘어져 코가 깨져 기절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내방에서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방방 뛰다가 하필 서랍장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에 굴러다니는 서랍장 손잡이 이음새에 박힌 날카로운 못 위로 깡총 점프해 엄지발가락에 못이 쑥-박혀 한 시간 동안 피를 철철 흘리기도 했다. 외상의 역사는 성인이 된 후에도 빈도수는 확연히 줄어들었을지언정 계속되었다. 겨울에 높은 부츠를 신고 걷다가 발을 헛디뎌 인대가 찢어진 사람, 그게 나다. 베트남 다낭으로 여행을 가서 서핑을 하다 바닷속에서 보드에 코를 직각으로 때려 맞고 코피를 펑펑 쏟으며 해변에 누워있다 택시에 실려 숙소로 간 사람, 그것도 나다. 그날 해변에 누워 나는 이렇게 황당하게 다치는 사람이 나 말고도 또 있을까? 뭐 그런 생각을 했는데 아마 의외로 흔할런지도 모르겠다. 내 주변에만 없을 뿐. 이런 일들이 내 인생에 심각한 타격을 줄만큼 커다란 외상의 경험은 아니었으나, 모든 상황에서 다치지 않도록 정말 조심하고 주의함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내겐 좀 심각한 문제였다.
그래서 막연히 생각 했었다. 아마 난 운전을 못할 것이라고. 겁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무슨 운전을 하겠냐고. 다치는 것도 싫고,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것도 싫은데 무슨 운전이야. 나 같은 게. 뭐 그런 생각을 하다가, 미술감상 모임에서 어떤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나보다 키가 십 센티 정도 작았고, 겁이 많게 생긴 동글동글한 강아지 눈매를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어쩌다 언니가 운전하는 회색 마티즈를 타고 같이 양주로 놀러 갔는데, 언니는 고속도로 차들의 소형차를 향한 멸시를 꿋꿋이 버텨내며 쿨하고 덤덤하게 목적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언니, 화 안 나요? 하고 내가 물으니, 서울에서 소형차 몰고 다니려면 어쩔 수 없어. 그리고 저렇게 난폭하게 운전하는 사람들 보이면 저 사람 자기 인생 불행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화풀이하는가 보다. 불쌍하네. 이렇게 생각하고 넘겨버리면 그만이야. 라던 언니. 작은 체구로 덤덤하고 쿨하게 도로의 난폭한 운전자들을 무시하며 마이웨이를 행하는 언니의 태도가 내 눈에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언니를 보며 나도 운전을 하기로 결심했었다. 저렇게 연약해 보이는 사람도 운전을 하는데. 도대체 나 같은 건 운전을 못한다고 생각할 이유가 뭐가 있어. 나 같은 게 뭔데? 고작 두려움 따위에 꺾여버리는 게 나 같은 거야? 이런 오기가 솟구쳤기 때문에.
운전학원 연수비는 한 회에 7만 원, 연수 시간은 두 시간. 부담되는 비용이었지만 운전하다 사고가 나면 그보다 훨씬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니 별 고민 없이 10회를 결제했다. 누가 듣더니 뭘 그렇게나 연수를 많이 받냐며, 돈 낭비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거라도 열심히 받아서 다행이었지 싶다... 아무튼, 그렇게 학원 연수를 받고난 후에도 운전에 대한 기억이 완전이 리셋되는 바람에 내 차로 받은 첫 연수를 망쳐버린 그날 이후,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문제가 뭘까. 학원 연수를 더 받아야 할까. 아닌데. 선생님은 더 오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는데... 그러다 뭔가 알아차렸다. 누구에게 연수를 받건 운전은 나 혼자 해야 한다는 걸 내가 망각하고 있었음을. 아주 짧은 거리라도 혼자서 차를 운전해 왔다 갔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혼자 운전을 하는 감각을 익힌다면 아마도 운전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 후에도 종종 가까운 지인들을 조수석에 태우고 연수를 받았다. 그때마다 드럽게 욕을 먹었지만 꿋꿋이 부탁해서 다녔다. 지인이 연수를 못해주는 날은 혼자서라도 차를 끌고 나가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근교의 카페 같은 데를 찾아갔다. 혼자 운전을 하며 몇 번이나 위험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럴 때는 클랙슨을 열심히 써서 사고를 모면했다. 아. 한번 사고를 내기도 했다. 다행히 누구도 다치지 않은 미미한 차량 접촉사고였다. 내가 과실이 더 커서 보험료가 좀 올랐다. 보험료가 올라서 속상한 마음보다는, 그런 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에 대한 반성의 마음이 더 컸으며 한편으로 이만하길 다행이란 생각도 했다. 혼자 주차 연습을 하다 주차장 기둥에 차가 긁히기도 하고, 좁은 주차장에 진입하다 벽에 차가 긁히기도 해서 도색을 몇 번이나 했었다. 그럴 때마다 생돈이 왕창 깨졌다. 너무 아깝고 슬펐다. 가끔 괜히 운전을 시작하고 차까지 덜컥 사버려서 이런 고생을 하는건가 싶기도 했으나, 이왕 마음먹은 것 1년은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운전을 하기로 다짐한 날 마음 속에서 솟구치던 오기가 아직 남아있었다. 내 안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운전을 잘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힘들어도 씩씩하게 차를 끌고 다니는 것 외에는, 아무래도 운전을 잘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게 1년 전이다. 그래서 지금은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물론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처음에는 불안하고 두려워서 거의 정면만 보고 운전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사이드와 룸미러도 잘 확인하고, 앞차와의 간격뿐 아니라 뒤차와의 간격도 보며 뒤에 큰 차나 트럭이 바짝 붙어있으면 속도를 조금 올려 뒤차가 차선 변경을 할 수 있도록 해주거나, 깜빡이를 켜고 안전거리를 확보한 후 내가 차선을 바꾸는 등 나름대로 도로 리듬을 읽으며 주행한다. 요즘은 목적지 부근에서 헤매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만한 좁은 골목에 잘못 들어왔을 때가 가장 무섭다. 뭐 그렇더라도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일정 수준의 긴장감은 있고 그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긴장은 내가 안전운전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운전을 한 지 1년쯤 지났을 때 긴장이 풀리면서 가장 교통사고가 많이 난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었다. 나는 그 말을 늘 마음에 새긴다. 운전을 하면서 긴장을 완전히 풀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혼자 운전을 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목적지 부근에 다 와서 길을 헤매더라도 목적지를 찾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매번 성공한 것이다.
운전을 하게 된 지금에 나는 매우 만족하고 있다. 일 때문에 가까운 외곽에도 자주 나가는데 그럴 때 차가 있으면 참 좋다. 간혹 평일에 사람 없는 한적한 교외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한참 앉아서 작업을 할 때도 있다. 이런 일들도 차가 없었다면 생각하기 어려웠을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전을 한 후 자존감이 많이 상승했다. 두려움을 극복한 경험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되는 것같다. 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니까. 십수 년 동안 두려워했던 걸 극복했는데, 다른 건 못할 게 뭐가 있나 싶어서. 교통체증에 심할 때 도로에 갇혀있으면 갑갑하고 발목이 저린다. 하지만 평일 대낮에 목적지를 향해가는 한적한 도로에서 15km 직진 코스와 마주했을 때는 정말 기분이 좋다. 차를 산 뒤 처음으로 드라이브를 갔던 날 지인으로부터 들은 잔소리에 주눅들어 운전을 포기했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을 테지. 사실 그럴 줄 알고 차를 샀다. 차를 사면 꾸준히 운행을 해야 망가지지 않기 때문에, 운전에 대한 강제성이 생길테니. 그 이유 때문이었다. 하여간에 난 지는 게 싫다. 그게 누가 되었건. 설령 그게 내 안의 두려움이라 할지라도, 나는 이기고 싶다. 이길 수 있는 데까지는 이기고 싶다.
Tip. 초보 운전자라면 운전이 힘든 건 당연합니다. 운전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스스로를 격려해주세요. 저의 경우 "나는 안전하게 운전하고 있다." "나는 목적지를 향해 잘 가고 있다." "나는 시야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등의 혼잣말을 하는 것이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많은 분들에게 연수를 받고 그분들의 조언을 새겨두는 것도 좋지만 운전을 잘하는 사람의 조수석에서 내가 지금 이 차를 운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시뮬레이션하는 것도 꽤나 도움이 됩니다. 저는 지금도 이 훈련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주의해야 합니다. 운전을 거칠게 하는 사람 옆에 앉아서 이 훈련을 하다 보면 어쩌면 나도 다음번에 운전을 조금 거칠게 할지도 모르니까요... 참, 내가 아무리 안전하게 조심해서 운전을 하더라도 세상에는 미친 이상한 운전자들이 많으니 전방 잘 살피고 방어운전 합시다. 갑자기 끼어들어오려는 차량 뒤에 있을 때는 클랙슨 꼭 쓰기! 하지만 이미 차가 쑥 들어왔다면 무시하고 거리두기! 초보운전자 여러분, 다들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