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안사용 설명서 (4)

싫어하는 마음을 사용하는 방법

by Kyum

싫어하는 마음은 하얀색이다. 변칙적인 요소가 조금만 개입되어도 금세 본래의 색을 잃어버리며, 어떤 색과도 잘 어우러지지만 다른 색이 섞이다 보면 순식간에 더럽게 변해버린다는 이유로. 싫어하는 마음은 불안하고 순수하며 뜨겁다. 좋아하는 마음엔 내가 당신을 좋아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의지가 존재한다. 하지만 싫어하는 마음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당신이 싫어져서 지금 내가 어지럽다는, 곤란함이 가득한 상태를 의미한다.


의지와 무관한 감정의 작용인만큼, 싫어하는 마음엔 상대의 행동과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감정으로 바뀔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대학 때 아르바이트를 했던 사무실의 한 여직원은 일 못하는 협력사 직원을 한심하게 생각하여 그를 욕하고 자주 다투고 전화로 화내다 만나서 화해하기를 되풀이하였으며, 그러다 둘은 몇 달만에 죽고 못 사는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이처럼 극단적인 반전이 가능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나는 누군가의 '저 사람이 싫다'는 말을 믿지 않으며 나 또한 '저 사람이 싫다'는 말은 함부로 하지 않는다. 함부로 그런 말을 뱉는 사람이라면 말이 자주 바뀌며 타인에게 감정적인 피해를 입힐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말하건대, 재작년에 그만둔 직장엔 내가 참으로 싫어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싫어하는 내 마음은 처음엔 하얀색이었다가 노랗게 변해 동정을 느끼기도 하였고, 초록색이 가미되어 파란색의 호감으로 변하기도 하였다가 이런저런 색이 유입되며 결국 흙탕물에 가까운 고동의 탁하고 지저분한 색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나는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고동의 얼룩을 투명하게 세탁하고 싶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더욱더 그들을 싫어하게 되었다. 발버둥을 칠수록 내 마음 색은 더욱 탁해져 종국에는 모든 색을 집어삼키는 새까만 색이 되어버렸다. 새까매진 내 마음은 날 선 부메랑이 되어 나를 공격하였으며, 그러자 슬프게도 그들에게 느끼는 역겨움만큼이나 나 자신에 대한 미움도 커져버리고 말았다.


그들로 인해 나는 많이도 괴로웠다.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가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것은 대화로 어느 정도 해소가 가능했다. 그럼에도 심리치료를 받았던 근본적인 원인은 실은 간접적인 피해 때문이었다. 5분 늦게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부하직원에게 쌍욕을 퍼붓던 자,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해 언급하며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성희롱 발언을 사무실 내에서 서슴지 않던 자,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큰 나머지 직장 내 모든 사람들을 쉴 새 없이 욕하며 흠을 잡던 자, 동료 직원들에 대한 부정적인 업무 이슈를 퍼뜨림으로써 대표로부터 본인만 신임을 얻고자 했던 질투에 눈먼 자, 이들의 방만함을 모른척하며 본인의 워크 라이프를 거짓 포장하는 SNS 활동에만 심취했던 자. 난 그들 모두와 같은 사무실을 썼고 그래서 종일 그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들 모두가 싫었으나 무엇보다도 싫었던 것은 그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나였다. 당시 나는 남들이 봤을 때는 저들과 같은 직장을 다니는 나도 저들과 비슷한 사람으로 보이겠지 라는 불안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선생님에게 나의 고통을 토로하였을 때,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모든 사람을 좋아하거나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는 없다며 선생님은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었다. 적어도 겉으로 볼 때는 모두와 잘 지내고, 누구든 나를 좋아하기를 바랐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 했다. 그러면 나도 싫어하는 마음을 들키지 않을 것 같았고, 들키지 않아야만 끔찍한 사회생활을 참고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어이 목까지 차올라 꾸물대며 나를 할퀴는 가시 돋친 송충이 같은 싫어하는 감정을 숨기고 견뎌내는 것이 정말이지 괴로웠다. 계속 나의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그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말하였는데, 그때 나는 파산한 금치산자라도 된 양 말을 잇지 못하여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실은 퇴사야말로 내가 가장 원하던 것이었으나, 그럴 용기가 없었다. 비록 형편없는 연봉이긴 하나 당장 그 회사를 그만두면 먹고살 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당장 어딘가로 옮긴다 한들 그곳에서 또 다른 지옥이 펼쳐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중소기업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그럼 앞으로도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몰상식한 행위들을 견뎌내야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은, 당분간은 대안이 없으니 계속 회사에 다녀야 한다는 냉정한 답변으로 돌아왔다. 내겐 돈이 필요했고 직업도 필요했다. 당시 회사를 다니는 것 말고는 달리 수입원을 만들기란 막막하였다. 선생님의 말대로 그 회사를 그만둔다면 당시 내가 앓고 있던 문제는 해소될 것이었으나, 그렇게 되면 또 다른 문제와 직면하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당장 내가 이 회사를 그만둘 수 없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자 거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때부터 퇴사를 준비했다. 언제 회사를 그만둘 수 있을지는 몰라도 부지런히 준비해야 한다는 것만은 알았다. 어쨌든 한 발자국이라도 진보하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우선 하는 일을 제대로 하고 내 업무에 체계를 정립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면 경력으로 내세울 수 있는 뭔가가 하나라도 더 생길 것 같았다. 그리고 틈만 나면 어떤 종류의 책이건 읽었고, 규칙적으로 영어 공부를 하며 토익시험을 치렀다. 이런 일들이 하루아침에 눈에 띄는 성과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러한 노력의 시간들은 당시의 내게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어 준 인공호흡 장치였다. 자기 계발은 혼탁한 환경에서 내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난 하루하루를 온전히 나의 것으로 빼곡히 채우고자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러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미래를 상상했다. 사려 깊고 예의 바르며 최소한의 인간 됨됨이를 갖춘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무난한 보금자리와 튼튼한 울타리와 더불어 만족스러운 연봉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렇게 싫어하는 감정을 내 삶의 추진 에너지로 전환하자 더는 타인의 행보에 신경이 쏠리지 않았고, 삶은 이전보다 훨씬 단순해졌다. 나는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건 내가 싫어하는 이들을 내 삶에서 배척하여 가능한 멀리 하였다. 먼저 인사를 건네지도, 굳이 잘 지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뒤에서 누가 나에 대해 뭐라 떠들건 개의치 않았고 그런 말이 내 귀에 들어와도 못 들은 척하였으며, 그저 집단 안에서 내 몸값을 해내는 주체적인 아웃사이더로 정착하였다. 그렇게 하자 되려 그들과도 적절히 공존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겼다. 그들이 내 인생에 간섭하거나 개입될 수 있는 여지를 확연히 줄여버렸으니 말이다.


나는 타인과의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며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법을 그곳에서 배웠다. 이 방법은 현재도 내 대인관계에서 유용하게 작용하는데,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당히 무관심하고 감정을 섞지 않으며 어떤 관계에서건 그들의 역할에 더욱 집중한다. 모든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역할을 보유하고 있다. 예컨대,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역할의 일환인 것이다. 그러니 각자 본인의 역할을 잘 해내며 집단에 적절한 밸런스가 유지될 수 있도록 늘 한발 뒤에 머무른다. 이렇게 하면 집단에서 모두와 오랫동안 적당한 관계로 지낼 수 있고, 나의 감정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소모되는 에너지를 최소화 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으며,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몇몇 사람들과 더욱 진솔하게 소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모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초조하고 불안해할 때는 결코 가질 수 없었던 힘이다. 싫어하는 마음의 중심에는 나라는 주체가 없다. 내 마음의 중심을 찾으면 타인의 감정이나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에 감정이 요동치지 않으며, 연연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그 중심을 찾고 유지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며, 어쩌면 그것이 삶의 8할을 차지하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숙제일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요즘들어 하게 된다. 나머지 2할이란 그것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성과 영향의 주고받음을 관리하는 일일 테고.


TIP. 싫어하는 마음은 뜨겁고 강렬하여 공격적인데요, 그 공격성이 자신마저 헤치려 한다면 한 발 떨어져 관찰자가 되어봅시다. 아. 네가 지금 이런 이유로 화가 났구나. 그래서 그가 혹은 그들이 싫구나. 그들은 너를 불안하게 하는구나. 이렇게 파악한 후 질문을 해보세요. 그래서 그들의 저런 행동이 너의 인생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거니? 하고요. 그런 질문을 통해 타인은 아무것도 아니며, 오로지 나의 삶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함으로써 산만하게 흩어져있던 관심 축을 온전히 나에게로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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