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안사용 설명서 (완)

불안으로 인한 마음면역

by Kyum

시험을 앞둔 밤에, 면접을 기다리는 대기실의 반쯤 나가 깜빡거리는 형광등 불빛 아래, 나는 불안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꼭 물에 빠진 각설탕 같아 애달픈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조바심을 낼 때도, 나는 불안했다. 사랑이 끝나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으로 절망감을 바싹 끌어안을 때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여, 역시나 나는 불안했다. 그래.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대부분의 시간을 불안함 속에 보냈다. 나는 늘 내가 왜 불안한지 분석하며, 불안을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지 골몰하였다.


일상을 좀먹던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질문을 바꾸면서부터였다. 나는 불안의 근원에 끝없는 의문을 제기하는 대신 불안과 공존하려 했다. 어떻게 하면 불안한 마음으로도 잘 지낼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더는 불안을 제거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의 덤덤한 태도에 불안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그제야 알았다. 불안이 쉬운 일을 어렵게 만들고 문제를 일으켰던 까닭은 내가 그동안 불안에 집착해왔기 때문이었음을.


1화에서 밝혔듯 두 기수의 심리상담 경험이 있다. 몇 해 전 처음으로 심리상담을 받았을 때,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내정치와 방만한 사내 문화로 인한 간접적인 혹은 직접적인 피해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당시 난 일도, 운동도, 문화생활도, 독서도 열심히 했다. 퇴근 후 일주일에 두 번씩 8km를 뛰었고, 삼일은 수영을 했으며, 나머지 이틀의 주말에는 하루에 두 개씩 약속을 잡아 문화생활과 모임을 기획하고 출퇴근 시간에는 틈틈이 책을 읽으며 폰으로 감상문을 썼다. 하루에 다섯 시간에서 여섯 시간 정도를 잤고, 피로가 쌓이면 그 피로를 운동으로 풀겠다며 밖으로 나가 또 뛰었다. 그러나 이처럼 분주한 활동도 나 스스로를 만족시키진 못했다. 자기 계발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만 다니던 회사를 벗어나 이직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려면 나는 영어공부도 해야 하고 전문분야의 자격증도 취득해야 했는데, 그럴 시간을 좀처럼 못 내고 있었다.


하루는 더 부지런해지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며 상담 선생님에게 툴툴대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선생님은 한참만에 입을 열었고, 우선 나의 열정과 열심히 사는 태도를 칭찬했다. 어깨가 으쓱했지만 한편으로 내가 그런 칭찬을 들어도 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며 쩔쩔맸다. 내 모습을 보고 선생님은 표정을 바꾸며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은겸 씨는 자기 자신을 인정해줘야 해요. 그럴 줄 알아야 해요. 칭찬도 올곧게 듣지를 못하고, 매번 본인에게 너무 가혹하잖아요."라고. 나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면 도태될까 봐 두렵다 하니, 선생님이 말했다. "그 모든 일을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해낼 수도 있어요. 그러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거고요."


아아. 그랬다. 나는 일그러진 신념 때문에 오랫동안 스스로의 행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초등학교 입학 전에 다녔던 미술학원에서 그린 그림을 집으로 들고 와서 자랑스레 보여주었을 때, '별로네. 돈 주고 배우는데 이 정도는 그려야지.'라는 말을 들었던 후였을까. 아홉 살 때 기말평가 3등을 하고 집에 와서 자랑하는 내게 '1등도 아닌데 뭐 대단한 거라고 자랑까지 해. 전교도 아니고, 그깟 반에서 3등 한 걸로 여자애가 수다스럽게. 조신해야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을까. 언어를 터득하면서부터 나는 내 주장을 말하거나 기쁨을 표현하는 것을 죄악이라 여기게 되었으며 자부심보다 수치심을 먼저 배웠다. 심지어 여자로 태어난 것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어른이 된 나는 내가 이룬 성취를 눈앞에 두고도 스스로를 나무라는 가학적인 인간이 되어 버렸다. 필요 이상으로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거나 타인의 시선에 견주어 나의 행복을 헤아리던 습관도 바로 그 잘못된 신념 때문임을 그제야 알았다. 내가 그렇게 침잠하는 동안 불안은 줄곧 내게 경고해왔다. '진짜 이게 니 행복이야?' '괜찮겠어?'라는 말로. 비록 조소 어린 말투였어도 불안은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심리상담을 시작했지만, 7회 차의 상담 동안 오히려 불안이 그동안 내 삶을 지탱해주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불안은 내내 나를 지켜봤다. 기대 없이, 실망도 없이, 아무런 평가도 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 내가 불안을 가벼이 뛰어넘을 때, 불안은 어떤 위협도 가하지 않고 한 걸음 조용히 물러섰다. 물론 내가 위태로울 때 불안은 어김없이 재등장을 하곤 했으나, 그것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무슨 일을 겪더라도 나는 그 순간에 최선으로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은 강한 존재임을 느꼈을 때, 나는 내 안의 불안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상황에 있건, 그리고 누구와 함께 있건 올곧게 나를 지탱하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는 상상을 했다. 인간은 아무 색도 칠하지 않은 흰색 도화지로 태어나, 여러 색이 뒤섞여 종국엔 검은색으로 죽는다. 검은색이 되지 않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농도와 분위기는 다르지만 모두 마지막에는 검은색이 된다. 그래서 나는 슬픔을 안아주는 까만 밤의 색으로 죽고 싶다. 끝을 향하는 삶 위에서 불안은 계속 말을 걸어올 테지. 나의 숙주, 이젠 날 잊은 거야? 하고. 그럼 나는 대답해주고 싶다. 나는 너를 잊은 적이 없노라고. 그대로 있어도 된다고. 안심하라고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불안의 거칠거칠한 피부와 수세미처럼 가끌까끌한 눈썹을 쓰다듬고 싶다. 잠을 못 자 퀭해진 불안의 눈동자를 마주하고는, 잘 자라고 속삭이며 불안의 눈두덩 위에 나의 엄지와 중지를 살며시 얹어주고 싶다.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이 잠잠해지고 쌔근쌔근 숨소리가 들릴 때까지 불안의 창백한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싶다. 이것이 불안과 내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내 안의 모든 감정들을 꺼내어 어루만지고 싶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부분들까지 사랑하고 싶다.


TIP. 불안 극복이라는 키워드로 유튜브에서 영상을 검색하다 한 인기 영상에 달린 댓글을 읽었고, 저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으로 힘들게 살아왔음을 알았어요. 영상에 댓글을 단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지옥에 있었고, 그걸 보는 저는 안타까워하는 한편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묘한 용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썼습니다. 마음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함께 봐주었으면 하면서요. 당신 안에 있는 어떤 부분도 어떤 감정도 싫어하지 말고, 싸우지도 말고, 조건 없이 안아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하찮고 보잘것없는 모든 것에 애도와 사랑을 보내며, 나의 불안사용 설명서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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