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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m Sep 29. 2022

작은 꽃게 이야기

내가 경험한 모든 죽음들

간장게장을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연립주택에서 조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그때 할머니가 게장을 자주 담아 주셨다. 가을이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알이 꽉 찬 암꽃게를 서너 박스 사와 담은 간장게장은 딱 그맘때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몇 박스라 하더라도 실제로 담고 나면 양이 얼마 되지 않아 대식구가 2주 정도 끼니마다 조금씩 챙겨먹고 나면 끝이었다. 그럼 이제 그걸 먹기 위해서 또 일 년을 기다려야 했다. 가끔 할머니는 제철이 아닐 때도 게를 사서 간장게장을 담기도 했는데, 제철이 아닌 게는 뚜껑을 땄을 때 살이 다 녹아내리고 없어서 마치 누가 먹다 남긴 찌꺼기 같았다. 물론 맛도 없었다.


처음부터 간장게장을 좋아한 건 아니었다. 어릴 때보다 더 어릴 땐 징그럽고 비리다는 이유로 싫어했다. 그러다 좋아하게 된 게 아마 초등학교 입학 전후였던 것 같은데,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밥이랑 같이 먹을 때 정말 맛있는 음식이라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 그 후 가끔 할머니에게 게장을 담아달라고 조르고는 했다. 할머니가 제철이 아닐 때도 꽃게를 사서 간장게장을 담았던 건 내가 그리 졸라댔던 것도 얼마간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고.


내게는 간장게장을 보면 생각나는 비릿한 기억이 하나 있다. 지금은 잘 먹지만 당시 그 일이 있고 나서는 한동안 게장을 먹지 않았다. 그것은 죽음에 관한 것으로, 새끼 꽃게의 죽음에 관한 비릿한 기억이다. 할머니가 제철 꽃게를 사 오며 박스에 작은 새끼 꽃게 하나가 따라 들어왔었다. 몸을 쭉 펼쳤을 때 성인 손바닥 사이즈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게였다. 포획금지 사이즈였을텐데 아마 어쩌다 어미 게와 함께 있다가 운 나쁘게 그물에 걸려 잡혀온 것 같았다. 할머니는 그 작은 게를 간장게장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대신 집에 놀러 와 있던 여섯 살 사촌에게 장난감으로 주었다. 게의 몸에 게장을 들이붓는 것과 게의 몸을 사촌에게 장난감으로 던져주는 것 중 무엇이 더 잔인한 행위일까. 작은 게는 거실 한가운데서 짧은 다리로 겁먹은 듯 살금살금 움직였다. 할머니. 얘 키우면 안 돼요? 키우자. 물 주고 밥 주면 되잖아. 라 했지만 할머니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그 작은 게가 너무 귀여워 한참을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쳐다봤다. 하지만 사촌은 그렇지가 않았나 보다. 나는 앙증맞은 집게를 들이밀며 하잘것없이 위협하는 그 게가 안쓰러워 지켜주고 싶었는데, 여섯 살 사촌은 게의 위협이 건방지다고 생각했나 보다. 사촌은 손으로 게를 툭툭 건드리고 쓱 밀었다. 야. 너. 하지마. 라는 내 말은 듣지 않았다. 할머니는 게를 괴롭히는 사촌이 너무 귀여웠는지, 잘한다 잘한다 내 새끼 잘한다며 연신 손뼉 치며 웃었다. 그러다 손가락으로 만지면 다칠 수 있으니 이걸로 하라며 사촌의 손에 무기를 쥐어주었다. 숟가락을 든 사촌은 그걸로 게를 쳤다. 처음에는 톡톡. 그러다 당황한 작은 게가 우왕좌왕 움직이는 모습을 보더니 흥분했는지 조금 더 세게 툭툭. 그러다 작은 게가 살려고 집게발을 자르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더니 재미를 느꼈는지 이윽고 퍽퍽, 팡팡. 사촌이 손에 쥔 숟가락이 게의 겉껍질과 하나 남은 집게발을 사정없이 내리쳤고, 게는 다리 몇 개가 부러지고 겉껍질에서 퍼석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사촌은 그날을 기억할까. 사촌은 죽어라. 죽어라. 하며 게를 계속 때렸다. 게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추고, 게가 토해낸 검은 물이 바닥을 듬뿍 적시고 내장이 배갑을 비집고 나올 때까지 때렸다. 할머니는 이제 그만 혀. 됐어. 재밌었어 내 새끼? 그런 말을 했고, 게를 때리는 내내 하지 말라고 그만하라고 소리 지르던 나는 작은 게가 너덜너덜하게 바스러져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들어가는 걸 보고 난 후에는 토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할머니에게 증오를 퍼부었다. 왜 어린 게를 잔인하게 죽여요 할머니. 잔인하고 나빠. 최악이야.라고 했을 때, 할머니는 어차피 저거 살지도 못해. 키우지도 못하고. 네가 키울 거냐? 게장으로 담그는 거나 애가 좀 갖고 노는 거나 거기서 거기여. 어차피 죽을 거. 라 했다.


게는 어차피 죽었으니 꼭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절에 다녔는데 불교의 윤회사상을 믿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죽은 게가 꼭 다시 태어나길 빌었다. 게는 일 년도 채 못살고 음식물 쓰레기가 되었다. 그러니 새끼 게가 인간으로,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으로 태어나 적어도 인간의 숟가락에 얻어맞아 몸이 부서져 죽어버리는 일은 없기를 빌었고,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할머니도 독실한 불교신자인데, 왜 할머니는 저 작은 게가 인간으로 태어나 자신의 몸을 박살 낸 자들에게 복수할 거란 생각은 안 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니 무서웠고, 그 공포가 한편으로 위로가 되었다. 나는 만약 그 게와 같은 일을 겪는다면 사후세계에서 저승사자와 무슨 딜이라도 하여 반드시 다시 태어나 나를 그렇게 만든 인간들의 뼈를 똑같이 부숴서 그 고통을 갚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 자신이 무서웠다. 그 공포가, 이번에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간장게장은 살아있는 게의 몸에 간장을 부어서 몸속 구석구석 간장이 깊숙이 스며들게 한 후 숙성시켜 먹는다. 그리 잔인한 음식은 오독오독 씹어서 살점 하나 남김없이 깨끗하게 발라 먹으면서, 숟가락으로 맞아 죽은 작은 게를 보며 나는 그다지도 고통스러워했다. 그 고통의 근원엔 죄책감이 있었다. 게가 박살 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면서도 가만히 앉아있었다는 죄책감.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르긴 했어도 그 상황을 종결시키지는 못했다는 죄책감. 나는 그것이 무척 괴로웠다. 직접 나서서 게를 어디 다른 곳에 옮겨둔 것도 아니고, 키워볼 엄두도 물론 내지 못했다. 다만 가엾고 불쌍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그만하라고 소리만 질렀다. 죄책감은 분노를 압도하여 나는 얼마간 무너졌다. 그날 나는 좌절과 무력감을 배웠다.


그 해에는 간장게장에 손이 가지 않았다. 아예 먹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조금 먹다보면 이내 작은 게가 생각나 구역질이 났다. 그러면 젓가락을 내려놓고 게장 접시를 나에게서 먼 곳으로 치워놓고는 했다. 지금도 나는 고급식당에서 밑반찬으로 나오는 간장게장을 보면 그날 일이 떠오른다. 깜빡거리던 거실 형광등, 사촌이 그날 입고 있던 털조끼, 다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늘 켜져 있던 고물 TV에서 나는 지지직 소리, 주먹으로 숟가락을 야무지게 쥐고는 게를 때려죽이던 사촌, 잘한다 잘한다 내 새끼. 하며 손뼉을 치던 할머니. 작은 게는 죽었고, 고물 TV는 폐기 처분했고, 조부모님과 함께 살던 그 집은 팔았고,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사촌과 나는 잘 살아있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도 사촌에게 그날 일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마 죽을 때까지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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