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이 맞다는 걸 당신이 납득할 때까지
나의 주관은 당신의 주장을 반대하며 형성되었다. 당신이 당신의 말이 옳다고 우기는 걸 반박하고 싶었다. 어떤 논리로 반박을 전개해야 더 효과적으로 당신의 주장을 명쾌하게 격파할 수 있을지 나는 끝없이 고민한다. 오래전 유명한 철학자가 쓴 고전 철학서에서, 어떤 유명한 심리학 교수의 강연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실은 당신이 나의 반박논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 만족스러워야 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뉴스를 보고, 당신보다 조금 나은 뭔가가 되어 당신의 허접한 논리를 짓밟아버리려 했다.
하지만 당신의 주장은 나의 논리와 근거가 개입될 종잇장만 한 틈도 주지 않는 철옹성 같았다. 당신은 나의 말과 나의 말의 의도와 내가 준비한 논리를 꺼내기도 전에 내 존재 자체를 말살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당신의 말대로라면 당신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나는 감정적이고 논리가 없다. 하지만 당신은 내 주장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으며, 내 의도를 근거로 어떤 말을 하면 내가 당신을 이길 수 있을지, 혹은 어떤 말로 내가 당신을 괴롭힐 수 있는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행여 당사자인 내가 방법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당신은 더욱 철저하게 예의 그 '합리성'과 '이성'을 내세우며 몸을 사린다. 그래도 나는 침착하게 언젠가 당신을 이기기 위해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뉴스를 보고, 내가 당신보다는 나은 인간인 이유를 기어코 찾아내려고 애써왔다.
나는 당신이 온몸으로 나를 혐오하는 걸 안다. 나의 생각을 이해하고 들어 볼 생각조차 없는 당신이다. 듣고자 한다면 들을 수 있을 것이고,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갈수록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당신은 당신이 나를 이긴다는 것 자체에서 느끼는 쾌감에 중독되어 나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았다. 당신은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중한 존재. 인간의 존엄, 공감, 배려, 사랑, 이런 것들. 당신 같은 사람을 한 명만 만나도 나는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듯 눈앞이 깜깜해지고, 인간에 대한 혐오가 쐐기가 되어 마음 깊이 박힌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살면서 당신 같은 사람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봤다. 그리고 당신 같은 사람들은 당신을 추종하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당신의 철옹성 안에서 더욱 단단한 무쇠 논리를 만든다. 당신은 고등학교 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의 담임선생이었고, 내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직장동료였으며, 싸움을 부추기는 것으로 어느 한 쪽의 표심을 얻는 것을 즐기며 편 가르기에 환장하는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서 당신을 발견할 때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가장 끔찍한 것은 내 안에서 당신을 발견할 때였다. 범죄자가 뱉어대는 변명이 아닌 한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보려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서 나를 반추하고 그가 하는 이야기를 이해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때로 나는 나조차 알 수 없는 내면의 체계로 인해 누군가를 무시해버리곤 했다. 함부로 대하지도, 시비를 걸지도 않았기에 최악은 면했지만 누군가를 무시해버린 나를 알아챌 때면 나는 창피함 때문에 마음이 무겁고 소화가 되지 않았다.
그래. 솔직히, 나는 한편으로 당신이 부럽다. 당신처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짓밟고 상처를 주면서도 자기주장을 한껏 내세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태도가 부럽다. 그 주장을 신봉하여 따르는 종교집단 같은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어 신봉자들의 영혼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당신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당신이, 공감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당신이, 나는 부럽다. 나는 공감하지 못하면 부끄러움을 느끼는데,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내 마음에도 상처가 나서 견딜 수가 없는데, 당신은 그렇지 않을 테니 평생토록 뻔뻔하게 잘 먹고 잘 살 테지. 아아, 나도 당신처럼 양심이 없으면 사는 게 좀 편했으려나.
그래도 나는 당신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당신이 가진 영향력으로 인해 당신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을 난도질한다는 걸 알면서도 기어이 말로 죽여버리고, 내가 옳다는 걸 어떤 방식으로라도 증명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당신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고통스러운 세상이지만 살아가면서 좋은 것들을 보려고 노력하고 싶다. 사람들의 마음에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다. 그것을 한껏 칭찬해주고 그의 말에 공감하며 모두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고 싶다. 그래야 끔찍하고 잔혹한 것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좋은 울타리를 한 뼘이라도 더 높게 쌓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은 분명 끔찍하고 잔혹한 것들이 강한 힘을 가졌을 때 그것의 편을 들겠지만, 그래도 나는 강한 힘보다는 사람의 온기에 기대어 살아가고 싶다.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기로 했다.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니까. 당신에게도 당신의 지옥이 있을 것이고, 그 지옥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깊고 두려운 곳임을 안다. 당신이 일상에 머무르다 어느 순간 그 지옥에 발을 헛디뎠을 때에, 그런 당신에게 손을 내밀어 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신봉자들? 강한 힘을 가진 자들? 전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당신은 틀리지 않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누구도 틀리지 않았으며, 다만 당신이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우리 중 누군가는 자신의 삶에 떳떳하고, 누군가는 떳떳하지 않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거듭 자기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는 데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