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댄스를 시작하며 알게 된 이런저런 고통
몇 년 전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폴 경연대회 영상을 봤다. 그때는 그저 막연하게 멋있다는 생각을 했었고, 폴은 정말 선택받은 사람들만 하는 운동,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영역인 줄로 알았다. 근력도 받쳐주고, 유연하고, 몸선도 예쁘고, 운동신경도 뛰어난 사람들. 혹은 운동을 전공했거나 평생 운동을 해온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운동. 그러나 막상 직접 해보니 폴을 탈 때 초반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것은 근성과 맷집임을 느꼈다. 폴을 시작하면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새로운 고통과 마주하게 되는데, 과장을 좀 보태면 이것을 잘 참고 적응하면서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냉혹한 세계가 바로 폴링이라는 것! 겉보기에는 우아하고 예뻐 보이지만, 우아하게 수면 위를 떠다니는 백조가 실은 물속 발갈퀴로 아등바등 물장구를 치며 버티고 있는 것과 비슷하달까. 아무튼 오늘은 폴댄스를 시작하며 알게 된 이런저런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폴은 피부의 마찰을 이용해서 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폴을 쥔 손바닥은 폴과 쫀쫀하게 밀착이 된 채 꽉 붙들어야 하고, 폴과 닿을 신체부위(예를 들어서 오금이나 겨드랑이 등)는 폴을 세게 조이며 버텨야 한다. 피부를 폴에 밀착시켜 꽉 누르며 버티는 동작들을 하면서 폴에 닿는 모든 부위에 울긋불긋 멍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폴 위에 올라가는 클라임을 하다가 사진처럼 무릎 사이에 커다랗고 짙은 멍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나의 경우 의외로 멍이 생겨도 그 부위로 폴을 탄다고 해서 크게 쓰라리거나 아프지는 않았다. 아마 폴 위에서 버티는 것 자체가 힘들다 보니 멍으로 인한 통증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번 멍들 만큼 연습을 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다음에 그 동작을 할 때 처음에 느꼈던 만큼의 고통은 느끼지 않게 되어서 멍이 드는 게 은근히 반갑기도 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멍은 금세 없어졌다. 무릎 사이에 생긴 멍은 매번 폴을 탈 때마다 클라임을 하다 보니 지금도 남아있긴 하지만, 이 또한 서서히 옅어지는 중이다. 그래서 폴을 타며 생기는 멍은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 사실, 멍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따로 있다.
바로 손바닥에 생긴 굳은살이다. 폴을 손으로 잡을 때 힘을 많이 주는 부위에 굳은살이 생겼는데, 폴을 잡고 올라갈 때마다 굳은살이 생긴 부위가 꽤 따갑고 쓰라린다. 물론 이 또한 처음 잡고 올라갈 때만 아프고, 막상 올라가서 폴을 탈 때는 동작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아픈 것도 느끼지 못하니까 처음에 잠깐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폴댄스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다 알게 된 건데, 생각보다 폴을 타는 사람들이 굳은살 때문에 많은 고충을 겪고 때로 폴을 며칠씩 중단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한 유튜버는 손바닥 굳은살 관리법을 따로 알려주기도 했다. 관리법이란 게 별거 없었다. 그냥 샤워를 하면서 굳은살을 불려서 손톱깎이로 깎아내라는 거였는데, 나의 경험상 굳은살은 깎아내면 더 두껍게 생성되곤 했기 때문에 우선 현재는 그냥 두고 보는 중이다.
무엇보다도 요즘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고통은 바로 어깨 통증이다. 폴에 매달릴 때 어깨를 쭉 내리고 가슴을 활짝 열면서 등근육으로 폴을 끌어올리는 게 기본자세인데, 앞서 2편에서 다루었듯 라운드 숄더인 내가 어깨를 뿌득뿌득 펴내면서 단기간에 거의 매일 폴을 타고, 폴을 안 탈 때는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서 일을 하다 보니 어깨에 피로가 쉽게 쌓이고는 한다. 이 통증은 어디 뼈나 인대가 다쳐서 생긴 게 아니라 안 쓰던 근육을 쓰면서 생긴 통증이라 어깨를 푸는 스트레칭을 자주 하고, 폼롤러와 마사지볼로 꾹꾹 눌러주다 보면 좀 나아진다. 또, 파스의 효능도 톡톡히 보고 있다. 이 파스는 연습실 사장님이 일본에서 사 와서 내게 주셨는데 효능이 매우 좋다. 저걸 붙이면 붙인 부위가 시원해지고 긴장이 풀리며 편안해져서, 어깨가 아플 때 하나씩 쏙쏙 빼서 요긴하게 쓰고 있다.
스트레칭도 열심히 하고 파스도 붙이며 통증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사실 어깨가 아플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도 폴을 좀 쉬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동안 그러지를 못했다. 그동안 살면서 내가 했던 '이건 시간이 안 돼서 하지 못한다' '저건 바빠서 못한다'등의 말을 했던 것이 모두 핑계였음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프고 힘들어도 폴을 타고 싶었고, 조금만 더 하면 안 되던 동작도 분명 성공할 것 같아서 지방 출장을 다녀오고 종일 운전을 한 날도 밤늦게 학원에 갔고, 주말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씻고 연습실에 갔다. 날짜를 헤아려보니 정말 몸살기운이 있고, 보드를 타다 심하게 넘어져서 허리가 아파서 쉴 때를 제외하고는 3일 이상 폴을 쉰 적이 없었다. 늘 피로나 통증보다 폴을 타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미련한 줄 알면서도 통증부위를 꾸역꾸역 스트레칭과 마사지로 풀어놓고 좀 나아진 상태로 연습실이나 학원에 가서 폴을 탔다.
나를 폴의 길로 이끈 지선 씨는 팔꿈치 통증으로 수개월간 폴을 쉬며 주사 치료를 받고 있고, 연습실 사장님은 작년에 폴을 타다가 삐끗하면서 다친 고관절이 아직까지 스트레칭할 때마다 아파서 포인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 다른 내 지인은 1년 6개월 정도 폴을 했는데, 그러면서 손목터널증후군이 와서 폴을 중지했다가 좀 나아지면 다시 하고 그러다 결국에는 그만뒀고, 이제 더는 폴을 타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보니 폴은 고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동이고, 부상도 그만큼 잦은 듯하다.
지금 내 바람은 한 가지뿐이다. 앞으로 다치지 않고, 통증으로 인해 중단하는 일 없이 꾸준히 그리고 무사히 폴을 타는 것. 실력이야 연습만 충분히 한다면 점점 성장할 것인데, 부상을 당해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둬야 한다면 그건 나도 어떻게 할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앞으로는 폴을 오래 타기 위해, 몸이 아프면 슬슬 몸의 눈치를 보고 좀 쉬기도 하며 폴을 타볼까 한다. 지난 열흘동안 단 하루를 제외하고는 매일 폴을 타고, 그중 2일은 학원에 가면서 연습실도 갔는데... 이게 무리하는 거란걸 알고 있고, 그래서 앞으로는 이런 패턴의 폴링은 자제하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도 당장 연습실로 뛰어가고 싶지만, 어깨와 허리 통증을 느끼는 오늘은 하루 쉬고 헬스장에서 충분한 스트레칭과 유산소 운동 등으로 대체하는 나름의 요령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뭐든지 지나치면 하지 아니함만 못하다 하였으니, 지속가능한 폴 생활을 위해 지금의 의욕과 에너지를 지금 모두 소진하기보다는, 미래의 나에게 나눠주며 꾸준히 가볼 계획이다. 1년 후, 3년 후, 더욱 멋진 모습으로 여유롭고 편안하게 폴을 탈 내 모습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