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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m Jan 30. 2023

고통에 익숙해지는 중

이번 폴생은 처음이라서 

폴댄스는 신체의 고통을 인내하고 그 고통에 정착하며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운동이다. 때문에 내 몸은 수차례 멍이 들고 사라졌다가 다시 멍이 들기를 반복하며 고통에 익숙해져가는 중이다.


마음의 고통은 매번 겪을 때마다 새롭고 좀처럼 익숙해지지도 무뎌지지도 않기에 예방만이 최선이다. 반면 폴을 타며 생기는 신체의 고통은 탈 때마다 조금씩 무뎌지고 둔해진다. 놀랍게도 고통에 무뎌질 수록 무뎌진 부위는 조금씩 가늘어지기에 만족감이 꽤나 크다. 폴을 시작한 한 달도 안 됐을 때를 생각해본다. 나는 통증 때문에 처음 하는 대부분의 동작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었다. 폴싯은 가랑이사이가 너무나 아파 연결동작인 엔젤스핀까지 가지 못하였고, 팅커벨을 때는 폴에 오금 아래 종아리 근육이 찝히는 느낌이 괴로워 오금을 똑바로 걸지 못하였다. 피겨헤드를 처음 때도 겨드랑이가 너무 아파서 초도 버티지를 못했다. 나중에 선생님과 대화하며 알게 건데, 살이 단단하고 건조한 사람일수록 폴을 탈 때 더 큰 통증을 호소하고는 한단다. 살이 물렁물렁하고 부드러우면 폴에 닿았을 살이 쿠션 역할을 해서 상대적으로 조금 아프고, 반면 살이 단단하고 건조하면 폴에 쓸리고 부어서 살 자체에서 아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도 폴에 처음으로 컨텍하는 부위를 쓰는 레슨을 받은 후에는 컨텍부위가 하루 이틀정도 퉁퉁 붓고 피멍이 든다. 그런데 멍이 나처럼 심하게 드는 사람도 있고 상대적으로 드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시작하고 처음 동안은 내가 폴을 못 타서 이런 알았는데, 통증의 역치가 사람마다 다르고 나는 상대적으로 역치가 낮은 사람이라 적응이 힘들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비로소 알았다.


시작한 지 3개월이 조금 안 된 요즘은 어떤가 하면, 처음에 안 되던 동작들을 두 번째나 세 번째에 가뿐하게 성공해나가는 중이다. 폴싯을 한 후 왼쪽은 컵그립을 잡고 오른쪽은 어깨부터 밖으로 빼내어 다리를 꼬고 허리춤에 팔을 얹은 채 빙빙 도는 엔젤스핀, 폴싯 상태에서 상체를 쭉 누운 뒤 왼쪽 팔을 아래로 잡고 가슴을 위로 내미는 다프네. 이런 것들은 처음에 배웠을 때 한 번에 성공하지 못했었고 최근에야 매끈하게 완성해낸 기술들이다. 그리고 이 기술들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몸이 유연해졌고 살이 조금 빠졌기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난생 처음 겪어본 고통들에 조금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수업을 처음 들을 때는 선생님이 시범을 보이면 내가 저걸 있을까. 절대 안 될 같은데... 라며 지레 겁을 먹어 더 움츠러들고 더 아프기도 했는데, 이제는 내가 했을 어떤 모습으로 완성이 될지, 완성 시 나의 쉐잎이 궁금해지고는 한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즐거움도 예전보다 조금 커졌다. 결국 폴댄스는 시작부터 끝까지 고통과의 사투!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와 대화해 본 폴을 나보다 오래 탄 모든 사람들이 동의한 바 있다. 고통에 익숙해지는 것, 그것이 폴댄스 실력향상의 관건이라는 것.


처음 폴을 할 때는 꼭 한번에 기술을 반드시 성공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이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꾸준히 하며 느끼는 것은, 결국 의지만 있다면 반드시 기술을 터득하는 데 성공하기 마련이니 조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마다 잘하는 기술과 못 하는 기술이 다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 하루 만에 하는 걸 나는 한 달 만에 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을 직접 해보기도 했고 말이다. 세상사 모든 일이 다 그러하듯 결국 폴댄스도 꾸준함과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나는 여유롭게 폴을 타고 싶다. 여유로움의 바탕에는 치열함이 있다. 치열한 순간을 보낼 땐 조급함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오로지 지금 폴을 타는 이 순간을 치열하게 즐기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고통에 적응하는 만큼 단단해지는 내 몸을 관찰하는 것은 마음을 치유하는 데에 꽤 많은 도움이 된다. 적어도 폴을 탈 때만큼은 거기에 집중하느라 잡생각을 하지 않으며, 내 몸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또한 탈 때마다 조금씩 실력이 상승하는 것을 느끼기에 그만큼 자존감도 올라간다. 빙빙 돌아가는 쇠막대에 의지하여 어떻게든 내 몸의 중력을 가볍게, 날아가듯 사뿐히 띄우고자 노력하다 보면 주변의 소음이 사라진다.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몸더욱 단단해지고, 가쁘던 호흡은 차분히 위로 정착한다. 결국 고요한 가운데 폴과 나만 남는다.

폴에 허벅지 안쪽을 끼워서 지탱하는 '폴싯'에서 연결되는 기술들 (좌) 다프네 (우) 엔젤스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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