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둘 애기, 서른여덟 어른
내가 서른두 살이고 언니가 서른여덟 살 일 때, 스노클링을 하러 거제도로 가던 여행사 차량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만났다.
오전 8시 50분, 여행사에서 오라고 한 시간보다 10분 이른 시간이었다. 정류장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흐리고 먹구름이 끼어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이윽고 약속한 아홉 시가 되자 내 앞에 카니발 한대가 멈춰 섰다. 회색 나시티를 입은 근육질에 피부가 까만 남자가 창문을 내리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스노클링 예약하신 분 맞죠?
차 안에는 운전자인 가이드와 나밖에 없었고,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 탓에 몸살 기운이 으슬으슬 올라왔다. 이런 날씨에 거제도 스노클링이라니... 갑자기 모든 게 내키지 않아 취소하고 싶어졌다. 그냥 서울로 올라가겠다 하려고 입을 떼려는데 가이드가 말했다. 오늘 같이 가는 분 있어요. 곧 탈 거예요. 어 저기 보이네.
카니발이 멈추고, 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가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걸어 잠그고 다시 문을 닫을 때까지 우리는 셋 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먼저 입을 연 건 가이드였다.
- 다들 스노클링 처음이에요?
- 사이판에서 해본 적 있어요.
여자가 대답했다.
- 거기서 해봤으면 거제도는 시시할 텐데. 허허.
- 괜찮아요. 저 거제도 안 가봤거든요. 안 가본 데 가면 좋죠 뭘. 안 해본 거 다 해보고, 안 가본데 다 가볼 거예요. 마흔 전에.
마흔 전에.라는 말로 여자의 나이는 짐작이 가능했다. 나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슬쩍 고개를 돌려 여자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여자는 어깨를 드러낸 하늘색 오프숄더 티셔츠에 무릎이 찢어진 빈티지 청바지를 입고 납작한 쪼리를 신은 채 한쪽 다리를 꼬고 있었다. 몸매는 날씬했고, 얼마 전에 태닝을 했는지 피부가 까맣고 쇄골 바로 아래엔 레터링 문신이 있었다. 머리는 노랗게 염색해서 높이 묶어 틀어 올렸고, 자잘한 큐빅이 박힌 하늘색 손톱은 반질거렸다. 나는 고개를 숙여 내 손을 봤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메마른 손톱에 세로줄이 쭉쭉 그어져 있었다. 그때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 몇 살이에요?
- 서른두 살요.
- 서른둘? 애기네.
그 말에 웃음이 터지며 긴장이 풀렸다. 맙소사, 이 나이에 애기라는 소리를 듣다니. 여자는 자기보다 동생이라 편해졌는지 금세 말을 놓고 내게 이것저것 물어왔다. 혼자 왔니? 남자 친구 있어? 혼자 다니면 심심하지 않아? 무슨 일해? 등등. 원래 혼자 통영 자주 와요. 없어요. 괜찮아요. 회사 다녀요. 너무 쌀쌀맞지도, 너무 친절하지도 않게 적당한 선을 가늠하며 질문에 답을 하는 동안 나는 언니에 대해 몇 가지 알게 되었다. 이름은 김수영. 버킷리스트는 발리 여행, 수영 배우기,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 따기, 뭐든 안 해본 거 해보기, 안 가본 곳 다 가보기, 이 모든 일을,
- 마흔 전에 하기. 아. 언니라고 불러. 말 놔도 되고.
수영 언니의 모든 계획에는 '마흔 전'이라는 전제가 붙었다. 그렇게 마흔전에 다 해버리고 나면 마흔 후에는 뭘 할 거냐고 물어볼까 했지만, 그런 건 언니도 딱히 생각해 본 적 없을 것 같아 굳이 묻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20대 후반에 서른을 코앞에 두고선 나도 친구에게 이런저런 바람을 늘어놓곤 했었다. 나 일주일에 한 번씩 공연하고, 노래 녹음해서 앨범도 내고, 유럽여행도 갈 거야. 서른 전에. 그중 실행으로 옮긴 것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거제도에 도착하니 하늘에서 제법 굵은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기침이 나고 팔에는 소름이 돋아났다. 추웠다. 여행사 가이드는 비가 확 쏟아지기 전에 얼른 입수하자며 언니와 나에게 새까만 부력 슈트를 건넸다. 덜 마른 슈트에서는 빨래 썩은 냄새가 났다. 아. 역시 괜히 온건가 후회하다가 이미 되돌릴 수 없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며 스스로를 달래고는 숨을 참고 슈트에 몸을 집어넣었다. 다 입고 등에 달린 지퍼를 올리려는데 손이 안 닿아 애를 먹자 수영 언니가 내 지퍼를 올려줬고, 나도 수영 언니의 슈트 지퍼를 올려준 후 우리 셋은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비 때문인지 몰라도 거제도 바닷속은 탁했다. 그래도 제법 집중해서 뿌연 물속의 작은 물고기들과 해초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모래에 반쯤 파묻힌 찌그러진 콜라캔을 발견하고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탁한 물속, 더구나 쓰레기라니... 상상했던 것과 다른 바닷속 풍경에 실망한 난 결국 금세 스노클링에 흥미를 잃고 먼저 물밖으로 나왔다.
수영 언니는 나보다 훨씬 적극적이었다. 언니는 가이드가 그만 나오세요. 거긴 위험해요.라고 말릴 때까지 더 깊이깊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가만 보니 언니는 스노클링이 아니라 수영을 하는 것 같았다. 처음 입수할 때만 하더라도 자기는 수영을 전혀 못한다며 불안해했는데, 슈트의 부력을 확인한 후 언니는 누가 뭐라 하건 바닷속을 나름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물에서 나와 가이드가 준비해준 컵라면을 먹었다. 비 오는 바닷가에서 홀딱 젖은 채 전신 부력 슈트 차림에 오리발을 신고 먹는 따뜻한 컵라면은 너무너무 맛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말벌이 얼쩡대고 있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가 라면을 반쯤 먹었을 때, 언니가 물밖으로 나왔다. 언니, 말벌 조심해요. 어디? 하고 두리번거리는 동안 내 주위를 맴돌던 말벌은 자취를 감췄다. 갔어요. 어. 말벌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로 내 옆에 털썩 앉은 수영 언니는 나보다 1.5배는 빠른 속도로 컵라면을 먹어치웠다. 라면을 동시에 다 먹은 우리는 가이드가 안내해준 근처 펜션에 들어가서 씻었다. 나는 남에게 알몸을 보이는 것이 싫어서 평소에 목욕탕이나 찜질방에도 잘 가지 않는데, 그날은 언니랑 같이 씻었다. 언니가 먼저 샤워실에 들어간 나를 따라 들어와 같이 씻자며 옷을 훌렁 벗어버리는 바람에 거절할 틈도 없었다.
씻고 나온 우리는 머리를 대충 말린 후 비를 맞으며 차로 뛰어들어갔고, 굵은 빗방울이 카니발 지붕 위로 후둑후둑 떨어지는 거제도를 빠져나와 통영 종합버스터미널로 갔다. 카니발이 우리를 내려주고 유유히 사라진 후에는 언니랑 나만 남았다. 나는 서울로, 언니는 부산으로, 우리는 대합실에서 각자의 집으로 데려다 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언니가 나에게 스마트폰을 건넸다.
- 번호 남겨.
잠시 고민하던 나는 내 번호를 누른 후, 통화 버튼을 눌러 언니의 번호를 내 폰에 남기고 보란 듯이 언니의 이름을 저장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나는 앞으로 언니와 다시 볼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여행지에서 잠시 스친 낯선 사람과 연락처를 교환하는 건 헤어질 때 예의상 하는 겉치레라고 생각했으니까. 인연이 닿았더라면 우린 좋은 친구가 되었겠지만, 아마 굳이 다시 볼 일은 없을 테지. 그래도 이름 정도는 기억할게. 안녕. 잘 지내.라는 말을 대신하는 정도의.
수영 언니에게 연락이 온 건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였다. 나는 추석 연휴를 2주 정도 앞두고 통영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2박 3일 동안 통영에서 바다 보며 책이라도 읽다 올까. 숙소를 어디로 하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1년 만에 카톡을 보낸 언니가 앞뒤 문장을 생략한 채 대뜸 본론부터 꺼냈다.
- 안녕. 잘 지냈어? 우리 이번 추석 때 여행 갈래?
카톡을 보고 1년 전 같이 씻자며 샤워실에 따라 들어오던 언니의 씩씩함 내지는 뻔뻔함이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런 사람이었지. 참 한결같네. 누군가에게 사소한 부탁을 할 때도 신중하고 마음을 쓰는 나와는 달리 언니의 태도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망설임이나 구김이 조금도 없구나, 싶었고 문득 언니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던 나는 곧 답장을 했다. 네. 어디로 갈래요?
그렇게 또 언니를 만났다. 처음 만난 날 언니가 내게 연락처를 묻지 않았더라면 없었을 두 번째 만남이었다. 우리의 여행지는 순천이었다. 역에서 만난 우리는 택시를 타고 순천만 입구에 도착해, 근처 한복집에서 인당 2만 5천 원 정도를 주고 한복을 빌려 입고 머리에 꽃장식도 달았다. 전부 언니의 아이디어였다. 이런 건 20대 대학생들이나 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한복을 입고 거울을 보며 민망한 듯 투덜대자 언니가 그랬다. 그런 게 어딨어. 나는 다 해볼 건데? 마흔 전에.
순천만에 갓 도착했을 때는 날씨가 꽤 좋았다. 따스한 햇살, 뭉게뭉게 퍼지는 구름, 옷깃을 스치는 적당한 바람. 우리는 갈대밭을 배경으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셀카 모드를 해놓고 나란히 앉아서도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그때 하늘에서 뭔가 툭, 떨어졌다. 빗방울이었다.
- 언니. 비 오나 봐요.
- 그러게. 우산 없지?
- 네.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우르르 쿵쿵하고 하늘이 번쩍대며 번개가 땅을 찍어 누르더니 곧 비가 쏟아지고 날이 추워졌다. 이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다음부터는 엉망진창이었다. 비를 피하려고 급하게 들어간 근처 음식점은 전부 만석이었고, 재료가 소진되었다며 웨이팅마저 받지 않았다. 다섯 군데를 돌아다닌 끝에 겨우 자리 잡은 식당에선 저기요.라고 몇번이나 불러도 아무도 안 왔다. 내가 직접 주방에 가서 주문을 하고 받은 음식은 맛도 없고 양도 부실해 먹은 것 같지도 않았다. 식당에서 나오니 그때도 비가 내리고 있어서, 우산을 사려고 했지만 가까운 편의점까지는 5분을 걸어야 해서 그 거리면 그냥 한복집에 가는 게 낫겠다 싶어서 우리는 비를 맞으며 한복집까지 걸어가 빌린 옷을 반납하고 입고 온 옷으로 갈아입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 최소 50명 이상은 돼 보이는 사람들이 빼곡히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처에 택시는 한 대도 없었고 카카오 택시나 콜택시도 잡히지 않았으며, 기다린 지 30분 만에 온 버스는 이미 만원으로 사람이 가득 차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기다린 지 한 시간 반 만에 온 버스에 겨우 끼어 탄 채로, 우리는 온몸을 구기고 숨죽인 채 버스에 올라타 사람들이 다 내리기만을 기다리며 말없이 스마트폰만 내려다 봤다. 40여분 쯤 지나 사람들을 밀치고 간신히 목적지에 내리고 보니 비에 젖어 두피에 딱 달라붙은 머리카락, 땀과 비가 범벅되어 끈적거리는 피부, 퀴퀴한 냄새가 나는 옷과 꼬질꼬질해진 운동화까지 우리의 몰골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나 두 번 다시는 순천 안 올 거야.라는 언니의 말에 나도. 라 대답한 뒤 우리는 그제야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숙소로 도착한 후 우리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밖으로 나왔다. 비는 그새 멎어 공기에서는 풀냄새가 났고, 시간은 이제 막 밤 열 시를 지나고 있었다.
숙소 1층에는 사장님이 운영하는 비어 펍이 있었다. 우리는 그 펍의 바 자리에 앉았다. 씻고 나서 머리도 잘 말리고 옷도 새것으로 갈아입어 기분이 좋았다. 사장님은 우리에게 투숙객 서비스라며 칵테일을 만들어주셨다. 그러자 언니가 대뜸 사장님에게 내 얘기를 늘어놓았다. 사장님, 얘 음악 해요. 뮤지션이에요. 라며. 순간 나는 그날 낮에 언니에게 내 이야기를 한 걸 후회했다. 나는 전업 음악인이 아니고 더욱이 디지털 싱글을 발매한 건 꽤나 옛날 일이기 때문에, 누가 제 3자에게 나를 음악인이라고 소개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내 속마음도 모르고 언니는 사장님에게 넉살 좋게 얘 노래 빨리 틀어보라며 곡 제목을 알려줬고, 사장님은 내 노래를 비어 펍 사람들이 모두 주목할 만큼 큰 소리로 틀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얼굴이 화르륵 달아오르고 귀까지 빨개진 나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급히 자리를 피했다. 내가 나가자, 곧바로 수영 언니가 뒤쫓아와 내 팔을 잡았다.
- 화났어?
언니가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화가 난 건 정말 아니었다. 그냥 단지 겸연쩍은...
- 너 멋있어서 그런 거야. 너 좋아서. 아. 좋다. 나랑 같이 여행 와줘서 고마워.
활짝 웃으며 구김 없이 말하는 언니의 태도에 어정쩡하던 내 기분이 금세 탁 풀어졌다. 뭔가, 매번 그런 식이었다. 우리는 사이좋게 화장실에 갔다가 펍으로 돌아가 맥주를 한잔 더 주문했다. 매장음악은 그 사이 멜론 TOP100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날 우리는 연애를 주제로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주로 언니가 뭔가를 권하고 나는 언니의 권유를 어떤 이유를 들며 방어하는 방식의 대화였다. 남자 많이 만나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러면 나는 때 되면 만나겠죠. 시답잖은 만남에 감정 낭비하기 싫어요. 게다가 좋은 사람도 없어요. 라 답변하는. 내가 계속 방어해도 언니가 자꾸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보는 것도 좋다고 강요 비슷한 걸 하는 바람에 나는 결국 살짝 짜증이 나고 말았다. 결혼은 할 거니? 안 하는 걸 추천하는데, 할 거면 최대한 늦게 해.라는 언니의 말에 반발심이 생긴 나는 언니는 언제 할 건데요?라고 쏘아붙이듯 물었다. 그러자 언니가 말했다. 글쎄. 앞으로는 안 할 것 같네. 나 결혼한 적 있어.
부모님이 종용한 맞선으로 만난 남자는 언니보다 열 살이 많았고, 종갓집 장손이었다. 남자의 집은 밭을 몇만 평이나 갖고 있는 땅부자였다. 그 남자와 만난 지 석 달만인 스물다섯 살 겨울에 언니는 결혼을 했고, 결혼하자마자 시댁으로 들어왔다. 말로만 듣던 시집살이였다. 시부모님 댁에는 개수를 세볼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수많은 장독대가 있었다. 개 중에는 언니보다 나이가 다섯 배나 많은 장독대도 있었는데, 그 장독대들을 관리하는 건 언니의 하루 일과 중 극히 일부였다. 언니의 하루는 빈틈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아주버님, 남편, 시아버지 아침식사 준비하기, 상 치우고 후식 내오기, 설거지 하기, 빨래하기, 점심 준비하기, 설거지 하기, 저녁때 손님 오면 술상 봐오기, 청소하기, 친척 어르신 생신 등 집안의 각종 대소사 챙기기 등등으로.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나지 않았고, 시어머니는 본인이 그러했듯 큰며느리가 집안의 모든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도맡아 하는 큰손이 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언니는 시어머니 밑에서 집안일을 하며 그 집에서 4년을 살았고, 스물아홉 살이 되던 해에 남편과 이혼하기로 결심했단다.
- 조선시대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일이.
- 이래저래. 집안 사정도 있었고.
- 근데 왜 이혼했어요?
- 베개 때문에.
언니는 그 집에서 항상 시부모님의 눈치를 봤다. 남편이 기운이 없으면 내조를 못하는 무능한 언니 탓이었고, 국이 짜거나 반찬이 싱거우면 음식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며느리 잘못이었으며, 집안일을 하다가 습진이 생기거나 허리가 아픈 건 자기 관리를 못한 언니의 책임이었다. 그런데도 언니는 그게 잘못된 건지도 몰랐다고 했다. 더욱이 시댁에서 친정 빚도 얼마간 갚아줬고, 부모님은 딸이 돈 많은 집에 시집간 걸 자랑으로 여겼으며 결혼 후 친구들과는 연락이 뚝 끊기는 바람에 주변에 힘들다고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 하나 없었다. 언니는 육체적 고통과 심리적 갈등을 오롯이 혼자 몫으로 집어삼키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그러다 한 번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종일 음식을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까지 끝낸 후 오후 네시쯤 앉아서 쉬려고 하는데 거실에 누워서 티브이를 보고 있는 남편을 보더니 시어머니가 언니에게 그랬다는 거다.
- 베개 갖다 줘라.
그 말을 들었을 때, 언니 머릿속에서 뭔가가 툭 끊기는 기분이 들었단다. 순간 베개로 남편얼굴을 눌러 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일었다고 했다. 남편을 죽이는 대신에, 시집온 지 4년 만에 언니는 처음으로 반항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시어머니에게 뭐라고 대꾸하지는 않았다. 다만 언니는 남편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 여보, 안방에 베개 있어요.
말을 마친 언니는 남편 옆에 그냥 털썩 주저앉았다. 그게 전부였다. 가슴속에서 뭔가가 뚫린 듯 시원했고, 먹구름이 환하게 개인 듯 머리가 맑아졌다. 그런데 별안간 시어머니가 안방으로 쿵쿵 뛰어 들어가더니, 베개를 꺼내와 남편의 머리맡에 조심스럽게 놓아줬다는 게 아닌가. 구부정한 등을 굽히며 남편의 베개를 챙기는 시어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을 보며 언니는 뭔가를 알아차려버렸다고 했다. 게으르고 냉담한 남편,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 가부장적인 시댁, 식모살이나 다름없는 언니의 인생은 그 집에서 며느리로 사는 한 죽을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임을. 반대로, 언니가 그 집을 벗어나기만 하면 그 모든 꼴을 두 번 다시는 볼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다음날 언니는 아침 일찍 일어나 어디 가냐고 묻는 시어머니에게 대꾸도 안하고 전날 저금통과 통장을 털어 마련한 현금을 들고 집에서 나왔다. 차도 없고 운전도 할 줄 몰랐던 언니는 대중교통과 택시를 번갈아 타고 이혼 전담 변호사를 만나러 갔다. 남편은 이혼을 원하지 않았고 친정에서도 반대했지만 언니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이렇게 나가면 네가 잘 살 줄 아느냐는 시어머니의 협박 비슷한 말도 철저히 외면했다. 언니는 그 집에 더 있다가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고, 그래서 자기 자신부터 살리고 봐야겠다고 생각했단다. 4년동안 반항 한번 하지 않고 숨죽여 살아왔지만, 한번 결심이 서고 나니 그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혼절차를 마무리한 후에는 큰돈은 아니지만 다행히 위자료를 챙길 수 있었고, 언니는 그 돈으로 친정과 시댁에서 멀리 떨어진 연고 없는 낯선 지역에 전세 원룸을 구해 집 근처 네일아트 샵에서 일하며 1인 가구를 꾸려가기 시작했다. 언니는 돈을 벌어 난생처음으로 타투도 하고 태닝도 하고 알뜰하게 생활하며 모은 돈으도 가끔 해외여행도 갔다. 그렇게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살다 보니 지금까지 흘러왔고, 이혼 후 하고 싶은 건 뭐든지 다 하며 살아왔기에 후회는 없고 지금 이 시간이 참 행복하고 소중하다는 언니였다. 그날 비어 펍에서 나온 후, 우리의 대화는 숙소로 돌아와서도 동이 틀 때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각자의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는 대화 중간중간에 이따금씩 고개를 돌려 똑바로 누운 언니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그 무렵 언니에게는 애인이 생겼다. 언니의 애인은 언니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남자였다. 비슷한 아픔이 있어서인지 언니는 그 사람 앞에서만큼은 솔직해질 수 있었단다. 가족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그 사람 앞에서는 술술 다 털어놓게 되더라는 언니였다. 시작이 겁나 여러 번 밀어냈지만 그 사람은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고, 언니가 아이처럼 울 때면 늘 찾아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곁에서 기다렸다가 안아주며 은은하게 곁에 있어줬다. 사랑은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 같다고, 그 사람을 만난 후 자기는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언니가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언니는 나보다 한 뼘쯤은 어른에 가까운 사람 같았다. 사랑을 아는 사람은 내겐 다 어른으로 보이니까.
다음날 우리는 기차를 타고 여수로 넘어가 게장백반을 먹고, 회도 한 접시 사 먹은 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서울로, 언니는 부산으로, 처음 만났을 때처럼. 잘 가. 또 보자. 조심히 가. 반가웠어. 그날 몇 번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서로 연락을 한 적도, 만난 적도 없다. 하지만 언니는 잘 지내고 있다. 몇 달 전 들어가 본 언니의 인스타그램에서 언니가 네일아트 샵에 꾸준히 다니며 돈을 벌고, 번 돈으로 책도 사서 읽고, 주말이면 애인과 종종 여행도 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난 우리의 관계가 이 정도도 괜찮은 것 같다. 굳이 연락을 이어가지 않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아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고.
수영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 언니는 서른여덟이었다. 이제 나는 처음 만났을 때의 언니 나이와 조금씩 가까워져 간다. 언니와 나는 살아온 인생이 다르고, 생각도 달라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나이가 서른여덟이 되었을 때, 난 언니의 마음을 서른두 살의 나보다는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다 할 거야, 마흔 전에. 를 외치던 서른여덟의 언니 마음을. 날 보며 애기네, 하고 봄꽃처럼 웃던 그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