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이와 어르신

친구가 된다는 것

by Kyum

올해 2월, 종로에 있는 작은 갤러리에 모 아이돌 그룹의 일본인 멤버 중 한 명인 K의 개인전을 보러 갔다. 작년 11월 인터뷰 잡지 에디터로 일할 때 K를 취재했었는데, 취미를 물어보니 그는 그림을 그린다고 대답했다. '어떤 그림을 그리세요? 저 그림 보는 거 좋아하는데.'라고 하니, '아직 대외비이지만, 조만간 제 작품 전시를 할 계획입니다. 초대권을 드릴 테니 그때 보러 오세요.'라고 답했다. 나는 꼭 가겠노라고 이야기했고, 그건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날 인터뷰가 그 회사에서의 마지막 인터뷰였기 때문에 초대권이 나에게 전달되지는 않았다. 아마 보냈다면 회사로 보냈을테니까. 나는 전시 오픈 소식을 K의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고, 직접 티켓을 사서 그 전시에 다녀오기로 했다.


갤러리는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내려 2.5km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걸어서 30분쯤 되는 거리였고, 구불구불한 주택가 골목과 언덕길로 가야 했다. 2월이라 아직 날이 춥고 바람도 많이 불었지만, 갤러리까지 바로 가는 버스도 없고 택시를 타자니 주택가를 빙빙 돌면서 헤맬 것 같아 그냥 걸어갔다. 걷다 보니 계단과 오르막이 많아 숨이 찼고, 추운 날인데도 등과 가슴골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입고있던 코트를 벗어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걸어가다 단독주택이 오밀조밀 밀집된 곳을 지나가는데, 주택가들 앞에 병렬 배치 형태로 놓여있는 낡은 의자 세 구에 왜소한 어르신 한 분, 덩치 큰 어르신 한 분, 솜뭉치 처럼 작고 보송보송해 보이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쪼르륵 앉아있는 게 보였다. 무심코 지나쳐 스무 걸음쯤 가던 난, 발길을 돌려 그들에게 다가갔다. 의자에 앉아있던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참을 수 없었다. 그냥 지나가면 후회할 것 같아 그들에게 다가가서는 말을 걸었다.


- 강아지 너무 귀여워서 그런데, 혹시 사진 좀 찍어도 돼요?


강아지의 주인은 체격이 왜소한 어르신이었다. 웃으며 마음껏 찍으라 답하는 어르신에게 강아지의 이름을 물었다. 대박이였다. 대박이와 어르신은 이런 일에 매우 익숙한 것 같았다. 대박이는 낯선 사람이 자신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거나 쓰다듬는 일에, 어르신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강아지의 견주로 살아가는 일에. 대박이는 애교가 많았다. 쓰다듬는 내 손길을 피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내 손등을 핥아줬다. 조금 더 가까이 보고 싶어 얼굴을 가까이 하자 마스크를 쓴 내 입에 뽀뽀를 했다. 그러자 누가 내 심장을 부드러운 깃털로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나는 대박이를 몇 번 더 쓰다듬다가 가방에서 필름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날 난 대박이를 필름 카메라로도 찍고, 스마트폰으로도 찍었다. 그렇게 10분쯤 지났나. 슬슬 추워졌고, 해가 이동해 우리가 있던 자리에 그늘이 지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운영시간을 단축하는 전시장이 부쩍 많아졌기 때문에 갤러리에도 늦지 않게 가야 해서 나는 그만 일어나기로 했다.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어르신 두 분과, 대박이와 대박이 어르신의 사진을 몇 장 필름 카메라로 담았다. 그러고는 사진을 보내드리겠다며 대박이 어르신의 연락처를 받았다. 마음속에는 연락처를 받아두면 언젠가 다시 대박이를 볼 수 있게 되리라는 계산도 있었다.


K의 전시는 정말 좋았다. 11월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K가 한 이야기가 그대로 작품에 스며있었다. 직업 특성상 늘 대중에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하고, 마음속에 쌓아둔 아픔은 그림으로 해소한다던 K. 전시장에서 만난 K의 작품은 여러 가지 상징을 품고 있었으며,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어떤 해석도 가능해 추상적이면서도 작품 의도는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런 표현방식은 장 미쉘 바스키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 난 몇 차례 전시장을 돌며 작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핀 후 집에 가는 길에 나폴레옹 빵집에 들러 녹차 롤케이크를 샀다. 집에 갈 때는 왔던 길과는 다른 루트로 갔기 때문에 대박이와 어르신을 다시 마주치지는 못했다. 만약 다시 갔다 하더라도, 그때쯤이면 아마 집으로 돌아가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겠지만.


다음날은 월요일, 숨 막히는 한 주의 시작이었다. 10시까지 출근해 7시에 퇴근하는 회사를 다니던 나는 집에서 8시 30분에 나가기 위해 7시 30분에 일어났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보통 밤 8시 30분에서 10시 사이였다. 뭘 좀 먹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면 11시쯤 되었고, 피곤했지만 그냥 잠들기는 아쉬운 마음에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를 보다가 새벽 한시쯤 잠들었다. 다음날은 낑낑대며 일어나 출근했고, 그렇게 평일의 피로는 하루하루 누적되어 갔다. 평일이 지나고 나면, 토요일은 미술감상 모임을 열어 회원들과 함께 전시장에서 그림을 보고 작품 후기를 나눴다. 모임을 열지 않는 날은 친구를 만나거나 서점에 가서 책을 샀고, 일요일은 한 주 내내 누적된 피로를 풀기 위해 종일 잤다. 먹고 자고 또 자다 보면 어느새 밤이었다. 밤이 되면 나는 숨 막히는 한 주의 시작을 다소 우울한 마음으로 각오하며 새벽까지 뒤척이다 잠이 들곤 했다.


그러는 사이 사진을 찍은 지 한 달이 지났다. 한 달이나 지났지만, 도무지 현상소에 갈 틈이 없었다. 현상소는 토요일은 일찍 닫고, 평일에는 밤 8시까지 열었다. 평일에 가려면 칼퇴근을 하고 가더라도 8시 5분에 도착할 곳이었다. 나는 어느 날 현상소에 전화를 걸어 10분만 더 영업을 해줄 수 있냐고 물었고, 현상소는 알겠다고, 그 이상은 늦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날 퇴근하자마자 뛰어서 역으로 가 지하철을 두번 갈아탄 후 8시 5분에 현상소에 도착했다. 필름을 맡긴 후 다음 날 저녁때 문자메시지로 필름 사진이 담긴 웹하드의 링크를 받았다. 받은 사진은 만족스러웠다. 담벼락 아래 서로를 마주 보는 대박이와 어르신의 옆얼굴이 포근했다. 사진 속에서 대박이의 몸은 새하얗고 눈은 검정 구슬처럼 새까맣고 초롱초롱했다. 그날의 추위와 대박이의 따뜻한 몸이 생각났다. 대박이가 마스크 쓴 내 얼굴에 뽀뽀를 하던 순간의 기억도 되살았다. 난 그때처럼 심장이 간지러워졌다.


다음날 어르신에게 전화를 한 나는, 사진이 나왔으니 이메일로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차, 어르신은 이메일을 안 쓰시는 듯했다. 그래도 스마트폰은 사용하시겠지 싶어 문자 메시지로 사진을 보냈는데 못 받았다고 하셨다. 스마트폰도 잘 활용하지 않으시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솔루션을 마련했다. 현상소에서 사진을 인화해서 갖다드리겠노라고. 난 곧장 현상소에 전화해서 인화를 요청했고, 하는 김에 내가 과거에 찍었던 사진들 중 마음에 드는 것도 몇 컷 골라 함께 맡기고 그 주 토요일 오전에 일찍 찾으러 갔다. 이번에는 주말에 어떤 약속도 잡지 않았다. 얼른 사진을 인화해 그 핑계로 대박이를 만나러 가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토요일에 인화한 사진을 찾고, 어르신에게 전화해 다음날 오후 3시까지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오랜만에 방을 정리하고 일찍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일어나니 온몸이 찌뿌둥하고 욱신거렸으며 밖은 늦은 오후처럼 깜깜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왜 이렇게 어둡지 싶었는데, 밖에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일기예보를 보니 비는 하루종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날 약속을 취소하고 다음 주에 가겠노라 말했다. 그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사진을 전달해 주러 가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더욱이 나 좋자고 그 날씨에 대박이와 어르신을 집 밖으로 나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비는 다음주에도 왔고, 다다음주에도 왔다. 3주 연속, 주말에만 내내 비가 내렸다. 그러고 난 다음 주에는 미술관에 가야 했고, 다다음주에는 일 때문에 주말에도 바빴다. 그렇게 계속 여러 일들이 생기면서 대박이와 어르신을 만나러 가는 일이 우선순위에서 자꾸만 밀렸다. 그러다 7월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너무 더웠다. 퇴사해서 시간은 많았지만 굳이 그 날씨에 그늘 하나 없는 땡볕이 있는 곳을 찾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어르신에게 사진을 드리러 가겠노라 약속했던 것도 있고, 대박이가 보고 싶기도 해서 방문을 미루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9월, 가을이었다. 날이 좋고 바람이 선선했고 아무런 약속도 없었으며, 코로나 때문에 미술 감상 모임은 일시적으로 운영을 중단한 상황이었다. 이제는 만날 때가 되었구나 싶어 난 어르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와도 좋다는 말을 듣고, 두시까지 가기로 하고는 열두 시 반에 집에서 나와 마트에서 대박이에게 줄 강아지 간식 한 봉지를 골라 가방에 넣고는 종로에 갔다. 언덕을 넘어 구불구불한 주택가를 지나니, 그때 그 곳에서 그날처럼 낡은 의자에 앉아있는 대박이와 어르신이 보였다.


그날 갑자기 내가 대박이를 보러 간데는 사실 이유가 있었다. 나는 최근에 개인적인 이유로 마음이 몹시 좋지 않았다. 달리기를 해도, 홀로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해도, 책을 읽어도 마음이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대박이를 보면 조금은 나아질 것 같았다. 그리고, 예상대로였다. 그날 대박이는 올해 2월 처음 봤을 때처럼 변함없이 나를 반겨줬다. 대박이의 몽실몽실하고 보송한 털을 쓰다듬으며 간식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먹구름이 개이듯 마음이 맑아졌다. 난 속으로, 혹시 어르신이 언젠가 대박이를 보호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할 때 마땅한 사람이 없다면 내가 돌봐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굳이 이런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10여분을 앉아있으니 초등학생 둘이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말을 걸었다. 어르신 이웃집에 사는 아이들이었다. 나더러 누구냐고 묻길래, 올해 2월에 지나가다 대박이가 귀여워서 말을 건 행인이라고 어렵게 설명했다. 하는 일이 뭐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보다 대답이 훨씬 부자연스러웠다.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하는게 원래 이렇게 어려운 일일까. 한때 강아지를 키웠었고, 지금은 키우지 않지만 강아지를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대답이 더 좋았을까.


어르신은 잠시 있어보라더니 집으로 가서 빨대를 꽂은 거꾸로 요구르트를 내게 건넸다. 목이 말랐던 난 요구르트를 받자마자 한 번에 쪼르륵 들이켰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요구르트는 시원하고 달콤해서, 건조한 흙이 비를 빨아들이듯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넘어갔다.


집에 가는 길에 대박이가 늘 산책을 가는 공원이 있어, 산책을 하러 간다는 어르신과 대박이를 앞세우고 함께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수녀님 두 분을 만났다. 수녀님들은 대박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중 한 분은 '대박이 너 왜 우리한테 인사 안 하니?'라며 마치 어린아이를 꾸짖듯 말을 걸며 깔깔 웃었다. 아마 그 동네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대박이를 어린아이처럼 귀여워하며 살갑게 대하는 것 같았다.


걸어가는 길에 어르신은 올여름에 대박이를 잃어버린 이야기를 해줬다. 그날 대박이와 함께 공원으로 산책을 가던 중 친구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눈을 판 사이 대박이가 사라졌다. 늘 함께 가던 공원에 먼저 가있나 싶어 허겁지겁 가봤는데 그곳에도 없었다. 공원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대박이를 못 봤냐고 여기저기 물어보다 보니 이내 날이 저물었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대박이를 부르고, 사람들에게 묻고, 경찰서에 신고하며 대박이의 행방을 수소문 하던 중 전화가 왔다. 강아지를 보호하고 있다는 전화였다. 대박이를 잃어버린 지 사흘 째 되던 날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대학교에 다니며 역 근처 원룸에서 자취를 하는 여학생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온 여학생은 택배 기사님이 대박이를 전해줬다고 설명했다. 여학생의 집은 대박이의 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거리였고 그 사이에는 도로 하나가 있다. 위험한 도로 근처를 헤매며 돌아다니는 대박이를 본 택배기사는 배달트럭 보조석에 대박이를 태우고 함께 다니다, 자신이 키우기가 부담스러우니 강아지를 잘 돌봐줄 것 같은 여학생에게 맡긴 듯 했다. 여대생들이 대박이를 찾아준 건 대박이의 털 안쪽에 심어둔 칩 덕분이었다. 구청에 반려견 등록을 하면 털 안쪽에 작은 칩을 심게 되는데, 그 안에 어르신의 전화번호가 있었던 것이다. 어르신은 고마운 마음에 밥이라도 사 먹으라며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 학생들에게 전해줬다. 하지만 학생들은 한사코 거절했다. '강아지가 너무 예뻐요. 데리고 있을 때 착하고 얌전했어요.'라며. 아마 그 친구들은 대박이가 있어 잠시 동안 행복했나 보다. 집에서 며칠씩이나 데리고 있으며 정도 들었을테니, 대박이가 그리워 찾아온 나처럼 그 친구들도 이따금씩 대박이를 그리워하지 않을까.


어르신과 대박이는 어르신 댁 주택가 언덕을 내려가면 바로 나오는 대로변 맞은편 펫 샵에서 만났다. 케이지 안에서 떨고 있는 작은 강아지 대박이를 보고 어르신은 망설임 없이 곧장 데려오기로 결심했다. 분양가는 120만 원이었는데, 20만 원을 깎아서 100만 원에 데려왔다. 순하고 머리도 좋아서 배변도 잘하고 함부로 짖지도 않고 밥도 잘 먹는 대박이를 어르신은 손주 보듯 이뻐했다. 함께 산책을 가다 만난 사람들은 대박이를 보며 걸음을 멈췄고, 어르신에게 말을 걸거나 한참동안 대박이를 바라보다 다시 제 갈길을 가곤 했다. 어르신은 대박이를 어디든 데리고 다녔다. 경로당에 갈 때도,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볼일이 있어 근처 가게에 들를 때도 늘 그림자처럼 함께 다녔다. 대박이를 바라보는 어르신의 흐뭇한 미소를 보며 생각했다. 분명 어르신은 대박이를 만나고 나서 웃을 날이 예전보다 더 많아졌겠지, 하고. 어르신은 언제든 대박이가 보고 싶으면 미리 연락하고 오라고 이야기해줬다.


난 어르신이 대박이를 입양한 내년 1월 대박이 생일날, 다시 그곳에 가볼 생각이다. 예쁜 강아지용 케이크 하나를 골라 사들고선.

2020년 2월, 대박이와 어르신. (LEICA min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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