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택시기사

밤늦은 퇴근길에 택시를 탔다.

by Kyum


입사한 지 삼 개월이 지났을 무렵,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야근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날이면 밤 열한 시를 훌쩍 넘긴 늦은 시간에 사무실을 빠져나왔고, 대중교통이 전부 끊겨 사무실을 나오는 동안 카카오 택시를 호출하곤 했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회사 앞에서 굳은 어깨를 주무르며 지나가는 택시의 번호판만 뚫어져라 보다가, 이윽고 내가 예약한 택시가 도착하면 뒷좌석에 흘러들어 시트에 몸을 푹 기대어 앉으며 한숨을 토해내는 날들이었다.


그 무렵의 나는 회사 생활에 지쳐 있었다. 겉으로 볼 때 내 회사 생활에는 별 문제가 없어 친구들에게도 뭣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직원들은 친절했고, 내가 하고 싶었던 작가로서의 일을 하고 있었으며,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는 것도 전에 다녔던 직장에 비해 급여조건이 훨씬 좋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수용할만한 상황들의 이어짐 속에도 나는 언제부터인지 가슴을 옥죄는 듯한 갑갑함을 느끼고 있었다.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실체 모를 예감이 나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고, 그 결과 난 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연기하고 있었다. 내가 받아들이는 것과 실제가 다를지도 모를 어떤 기대나 바람을 충족시키기 위해 회사에 딱 맞는 퍼즐 조각이 되려 했던 순간부터 내 안의 뭔가가 어긋나기 시작했고, 어긋난 내면을 들키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면 할수록 괴리감만 더욱 커져갔다. 친구들 앞에서도 인스타그램 속에서도 난 아무 문제없는 사람의 가면을 쓰고 행복을 연기했지만 가면 속 피부는 곪아있었다. 온종일 쓰고 있던 가면을 혼자 있을 때조차도 벗지 못했으며, 뒤척이다 잠든 새벽녘엔 종종 악몽을 꿨다.


퇴근 후 집으로 들어온 나를 보며 엄마는 종종 너 요즘 살 빠졌다? 회사 다니니까 저절로 다이어트되네? 그래도 하고 싶은 일 하니까 좋지? 너 글 쓰는 일 하고 싶어 했잖아.라는 둥 눈치 없는 소리를 하면서도 내 눈치를 살폈다. 아마 엄마도 속으로는 내가 회사 생활을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내 표정에 전부 쓰여있었을 테니. 하지만 엄마는 내가 행여나 회사를 그만두고 폐인처럼 살까 봐 걱정이 앞서 어설픈 말들로 나를 달래려 했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랬을것이다. 엄마는 평생 모든 일들에 대해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했으며 나를 믿지 못해 전전긍긍해왔으니까. 그러면 나는 엄마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거실 불이 꺼지고 티비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방 안에만 있었다. 그러면서 엄마에게 하고 싶었지만 삼킨 말들을 혼자 되뇌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 하니까 좋냐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뭔지는 아나. 엄마는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로부터 아득히 멀어지는 기분으로 잠든 다음 날이면,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출근 준비를 마치고 엄마에게 다녀올게. 하고 밝게 인사하며 집 밖을 나섰다. 그래서 차라리 야근을 하고 새벽 한 시가 다 되어 집에 들어와 불 꺼진 거실과 마주하는 편이 훨씬 마음 편했다. 그런 날은 엄마의 어설픈 위로를 들을 일도, 그것을 외면한 게 미안해 죄책감을 변상하려고 다음 날 아침부터 연기를 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나는 퇴근길에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한강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하루 중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었다. 그날도 택시 안에서 한강을 보며 음악을 들으려고 이어폰을 찾고 있었는데, 한참을 이곳 저곳 뒤적여도 이어폰이 보이지 않았다. 깜깜한 데서 가방 안을 들쑤시다보니 차가 과속방지턱을 지나며 립스틱, 쿠션 팩트, 아이라이너 같은 가방 속 물건들이 튕겨져 나와 바닥과 시트 위를 굴러다녔다. 곧 상황을 파악한 기사님은 뒷좌석 실내등을 켜주며 물었다.


- 뭐 잃어버리셨어요?

- 네. 뭘 좀... 감사합니다.

- 퇴근하고 집에 가시는 길인가 봐요.

- 네.

- 늦게까지 일하셨네.


나는 기사님의 질문에 대답하며 떨어진 물건들을 주워 가방 안에 담았다. 이어폰은 가방 안에 없었다. 아마 회사에 두고 온 것 같았다. 이어폰 찾기를 포기하고 실내등을 끈 뒤 가방을 안고 창밖의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데, 기사님이 대뜸 물었다.


- 무슨 일 하세요?

- 출판사 다녀요.


기사님이 순간 머릿속에 생각해냈을 '출판사 직원'이 하는 일과 내가 하는 일은 비슷할 수도, 전혀 다를 수도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다니던 회사가 출판업을 하는 곳이긴 해도, 기사님이 머리속에 떠올렸을 출판사의 성향과는 거리가 있었다.) 나는 잠시 내 직무의 디테일을 이야기할까 고민하다가 그만뒀다. 어차피 한번 보고 말 사람이었고, 무엇보다도 낯선 사람에게 이것 저것 설명하기에는 그날의 내가 너무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 그렇군요. 멋진 일을 하고 계시네요. 하하.


나는 기사님이 이제 말을 그만 걸어주기를 바라며 아니에요.라고 짧게 답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어폰의 행방을 더듬었다. 나는 정말 이어폰을 회사에 두고 온 걸까.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건 아닐까. 만약 회사에 두고 온 게 맞다면 본체에 꽂아뒀을까, 아니면 본체에서 뽑아서 책상 위에 동그랗게 말아 올려뒀을까. 기억해 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몰라. 내일 회사 가면 있겠지. 내일 무슨 요일이지. 목요일. 아. 이제 열두 시 넘었으니까 오늘이 목요일이구나. 오늘 출근하고 하루만 더 버티면 주말이네. 이번 주말에는 뭐하지.


- 출판사에 다니면 책 좋아하시겠네요. 혹시 직접 글도 쓰세요?


머릿속에 떠오른 잡다한 생각들을 툭 치고 들어온 기사님의 질문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글도 쓰냐구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정말 쓰고 싶은데, 잘 안돼요. 실은 저는... 제 이야기건 남의 이야기건 아무튼 사람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로 평생 살아가고 싶거든요. 제 이름으로 책도 출간하고 싶고요. 그러려면 계속해서 어떻게든 글을 써야 할 텐데, 잘 안 되는 이유는 그러니까... 회사 때문만이라고는 할 수 없고, 몇 가지 문제가 있는데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나는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해 앞서 그랬듯 짧은 답변을 택했다.


- 네.

- 그렇군요. 실은 제 어릴 적 꿈이 작가였어요.


꿈이요. 저도 그런데... 요즘은 산문 한 줄 쓰기조차 왜 이렇게 버거울까요. 아니, 실은 최근에는 시도조차 안 했어요. 글을 쓰려면 나 자신에게만큼은 솔직한 사람이 되어야 하잖아요. 요즘 저는 그런 면에서는 최악이거든요. 이런 저라도, 여전히 꿈이 작가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 기사님은 어떤 글을 쓰세요?


엉킨 실타래 같은 마음속 말들을 들키지 않으려고, 나는 대화의 포커스를 기사님에게 맞췄다. 저요. 시를 씁니다. 언제부터요? 초등학교 삼 학년 때였나. 처음으로 쓴 시 주제가 뭐였어요? 토끼요. 교정에서 토끼를 키웠는데, 보송보송한 털을 가진 이쁜 애들이었어요. 누군가에게 기사님이 쓴 시를 보여준 적 있어요? 어유, 웬걸. 백일장 입상 한번 못 해본 실력이에요. 내가 읽어봐도 진짜 형편없는걸. 아무한테도, 심지어 아내한테도 안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꿈이었다면서요? 꿈은 꿈일 뿐이지. 이루지 못하는 게 꿈 아닌가. 나는 글짓기로 돈을 벌기 위해 시도해본 적도 없고, 그럴 생각조차 안 해봤어요. 그냥 시 쓰는 게 좋았을 뿐이지.


- 그래도 저는 계속 글을 썼습니다. 중학교에 가서도, 고등학교에 가서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누구 보여주기 위해 쓴 시가 아니라서 일기장에 적어 책상 서랍 맨 밑 칸에다 꽁꽁 숨겨놓으면서요. 내가 상고를 나왔는데, 우리 학교 사내놈들이 아주 짓궂어서 약해 보이는 남자애들 구타하고 괴롭히고 그랬거든요. 걔들이 내가 쓴 시를 보면 나한테 어떻게 했겠어요. 나는 감수성 풍부하고 눈물도 많은 데 그거 안 들키려고 애들 앞에서 일부러 센척하고 욕도 막 하고 그랬지. 그러고 집에 오면 학교에서 쌓인 더러운 걸 씻어내는 기분으로 시를 썼어요.

- 그렇게 오랫동안 시를 썼는데 왜 아무한테도 안 보여줬어요?

- 너무 못써서요. 어디서 상 받을 목적도 아니고, 그보다도 시가 형편없어서 누구 보여주기가 창피했어요.

- 공개하고 싶을 때가 한 번도 없었어요? 공모전에 내본다던가.


나는 기사님이 시를 공개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집요하게 물어보다가, 순간 싫다는 사람에게 괜한 강요를 하는 건가 싶어 흠칫했다. 눈치 없는 소리를 하고 눈치를 보는 내 모습에서 누군가가 생각나기도 했다. 고개를 들어 운전석을 보니, 기사님은 얼마 전 새치염색을 했는지 나보다도 새까만 머리에, 깔끔한 셔츠를 입고 금테 안경을 반듯하게 착용한 모습으로 정면을 보며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기사님의 뒷모습엔 차분한 심성과 흐트러짐 없이 차곡차곡 지어왔을 반듯한 세월의 흔적이 쌓여 있었다.


- 음... 누가 읽어도 감탄하고 전율을 느낄 만큼 멋진 시를 쓰게 된다면 그때는 물론 그 시를 세상에 공개할 겁니다. 성공한 영화감독이나 작가들 보면 부럽습니다.

- 어떤 점이요?

- 본인은 죽어도 작품이 남으니까 죽어서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요. 그러니 저도 만약 제가 죽어서도 사람들이 찾아서 읽을 만큼 좋은 시를 쓴다면 반드시 세상에 공개할 겁니다.


나는 기사님이 젊었을 때 어떤 일을 했을지가 궁금해져서 그 부분에 대해 질문을 했다. 기사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취직했다. 이렇다할 기술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대학진학을 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당장 몸으로 때워도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수입의류 유통회사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그 회사에 취직하는 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리고, 비교적 쉽게 들어간 그 회사는 기사님의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 되었다. 다니는 동안 회사가 커져서 월급도 많이 받았다고, 운이 좋았다고 했다. 기사님은 한 번도 이직하지 않고 도중에 쉬지도 않으며 근속연수 35년을 채운 후 재작년에 퇴임했다. 내가 살아온 만큼의 세월을 한 직장에서 일했다는 것에 놀라며, 나는 질문을 이어갔다.


- 비결이 뭐예요? 그렇게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일할 수 있었던 비결 말예요.

- 그건... 비밀인데요.

- 정말 궁금해서 그래요. 알려주시면 안돼요?

- 이거 참... 부장 직위까지 달고 엊그제 퇴임한 사람이 할 얘기가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다 내려놓고, 아무 생각 없이 다니면 됩니다. 누가 뭐라 하면 귓등으로 흘려듣고, 승진하면 그런가 보다, 못해도 그런가 보다. 하면 되는 거예요. 욕심부리면 그때부터 힘들어져요. 욕심부리고 안달 내다 망가지고 그만두는 사람들을 그동안 수도 없이 봤어요. 저는 본래 타고나기를 별 욕심이 없어서 직장도 무념무상으로 다녔는데, 저처럼 안 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더라고요.라는 기사님의 말에 나는 웃음을 빵 터뜨렸다. 맙소사. 이게 뭐야... 크게 웃자 그날의 피로가 싹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직장에서 힘들었던 이유는, 바로 내 욕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 하지만... 다닐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평생 일한 회사에서 나올 때는 아쉽지 않으셨어요?

- 아쉽죠. 나는 더 다니고 싶었는데 그만 나가라 하대. 그래도 뭐, 나갈 때 퇴직금도 어마어마하게 받은 데다 퇴직금과는 별도로 그동안 고생했다며 회사에서 이것 저것 챙겨주드라구요. 돌이켜보면, 제가 아들이 하나 있는데 IMF로 경기 안 좋을 때도 해고 안당하고 월급 다 받으며 다닌 덕에 저는 아들 양육비 걱정을 한 번도 안 했어요. 한 층에 사무실이며 회의실이며 창고며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을 때부터 사원으로 시작해서, 박스 나르고 테이핑 해가며 일하던 게 회사가 커지고 건물도 짓고 상장도 하더니 제 아래로 후배들도 줄줄이 생겼고 지금은 누구나 다 알만한 대기업이 됐죠. 그러면서 연봉도 크게 오르고, 사이사이 보너스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전광판에 우리 회사 광고 보이면 뿌듯하고 감사해요. 게다가 저는 다닐 만큼 다녔잖아요. 저 같은 사람이 물러나 줘야 다음 세대가 경제활동을 하죠. 젊은 사람들 가뜩이나 요즘 일할 데도 없잖아요.


기사님이 일했던 회사는 계열사만 수십 개를 보유한, 이름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이었다. 난 기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저렇게 말을 해도, 자신이 평생을 바친것이나 다름없는 회사에서 쫓기듯 나와 개인택시를 운행하는 지금의 삶에 기사님은 과연 만족하고 있을까. 허무하지는 않을까...


- 회사에 남았어도 따분했을 겁니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료들은 진작에 다 떠나고 남은 건 내가 유일했고, 후배들도 많이들 그만둬서 그렇지 않아도 지루했거든요. 재미있는 건, 회사 다닐 때는 서로 내가 잘났네 내 말이 맞네 하며 싸우던 사람들이 막상 은퇴하고 만나니 다들 배나오고 머리 벗겨진 동네 아저씨들이지 뭡니까. 그래서 요즘 자주 만나요. 테니스도 치고, 산에도 가고, 술도 마시고. 코로나만 아니면 더 많이 만날 텐데. 그리고 택시 일도 나름 재밌어요. 무엇보다도 하루에 서너 시간 내킬 때만 일 할 수 있는 것이 좋고요.


그 말을 듣고, 난 좀 전에 내가 한 생각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왜 타인이 느끼는 삶의 만족을 주관적인 잣대를 세워 함부로 판단하려 했던 걸까.


- 그럼 일 안 하실 땐 주로 뭘 하세요?

- 아내랑 놀고, 티브이도 보고, 책도 읽고, 아내가 친구들 만나러 가면 시도 쓰고 그래요.

- 요즘은 어떤 주제로 시를 쓰시나요?

- 뭐... 늘 그랬는데, 생각나는 건 전부 주제가 됩니다. 가족, 하늘, 산, 도로, 등등... 그러고 보니 요즘은 산에 많이 다녀서 자연을 주제로 시를 자주 쓰는 것 같아요. 영감이 떠오르면 그게 뭐든 주제로 삼습니다. 어쩔 땐 길가에 핀 꽃 한 송이만 봐도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얼마 전에는 새벽에 자다 벌떡 일어났는데 시상이 떠올라 노트에다 이것저것 끄적이고 아주 흡족해하면서 잠이 들었어요.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 읽어보니 너무 유치하고 창피하지 뭡니까.

- 기사님이 쓴 시 궁금해요. 읽어보고 싶네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여쭤보는 건데... 정말로 그동안 쓰신 시를 어디다 올려서 공개하실 마음은 없어요?

- 에이, 뭐하러요. 아무도 안 읽을 겁니다.


아뇨. 읽어요. 열명 중에 한 명은 꼭 읽을걸요. 첫 번째로 올린 시에는 눈길이라도 줄 거구, 두 번째로 올린 시는 첫 문장이라도 읽어볼 거예요. 그렇게 계속 쓰고, 계속 보여주다 보면 뭐라도 되지 않겠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힘주어 말하자 기사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뱉은 후, 나는 곧장 후회했다. 아아. 창피해. 내 나이의 두 배만큼 살아온 어르신에게 어쭙잖은 훈수를 두다니... 내가 뭐라고... 나 오늘 많이 피곤한가보네.


- 정말 누가 읽어줄까요?


침묵을 깨고 튀어나온 기사님의 질문이 반가워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침 우리 집 근처에 도착하기 직전이라, 나는 차에서 내리기 전에 속사포 랩을 하듯 빠르게 말했다. 그럼요. 읽어요.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쓴 게 아니라 그저 시 쓰는게 좋아서 평생 쓰셨다면서요. 마음으로 쓴 시는 다른 사람들 마음에도 와닿을걸요. 앞으로도 계속 시 쓰실 테지만, 꼭 용기 내서 기사님이 쓴 시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누군가는 그걸 보고 감동할 수도 있잖아요. 사람들이 반드시 대단한 영화나 소설에만 감동하는 건 아니니까요.


말을 마친 후 택시에서 내린 나는, 빠르게 걸어 집으로 갔다. 걷는 동안 마음속에는 민망함과 뿌듯함이 동시에 차올랐다. 불 꺼진 집에 도착해 샤워를 마친 후 새벽 한 시가 다 되어갈 무렵, 나는 노트북을 열어 올 초에 써두고 방치했던 산문 하나를 다듬었다. 한 시간쯤 글을 다듬다 자리에 누워 나는 그날 기사님에게 미처 하지 못하고 삼킨 말들을 속으로 읊조렸다. 기사님. 이루지 못하는 게 꿈이라뇨. 세상에 꿈을 이룬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이뤄가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그래서 그 과정이 고통스럽더라도, 어떻게든 이뤄내는 것. 저는 그게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계속 글을 써요. 그리고 쓴 글을 용기 내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꼭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해요.


의식이 깊은 잠 속으로 빨려들기 직전, 나는 쓰던 산문을 완성해 4월 안에 브런치 작가 신청을 마치겠다는 작은 다짐을 했다. 그날 나는 기분좋게 잠이 들었고, 더는 악몽을 꾸지 않았다.

밤의 한강. 출퇴근 시간 중 이 구간을 지날 때를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