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을 중심으로 (1/2)
지난번 글에서 리쾨르의 논의로 이야기를 이어가겠다고 언급했었다. 리쾨르의 철학적 해석학에 대해서 글을 쓰기 전에 리쾨르의 책을 다시 보고 가다머의 책을 다시 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가다머의 논의로 글을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에서는 해석학의 역사에 대한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가다머가 논의를 진행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철학적 해석학이 왜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조금 더 설득력 있는 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리쾨르의 철학적 해석학은 리쾨르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이 하이데거와 가다머의 영향력에 놓여 있지만, 가다머와 달리 후설의 현상학에 관련이 있다. 리쾨르의 철학적 해석학은 존재론적인 부분과 해석의 객관성에 대해서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칸트와 계몽주의
지난번 글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칸트가 이야기한 것과 비슷한 이야기로 철학적 해석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 굵은 글씨로 되어 있는 물음들은 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그리고 우리의 정신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칸트의 말과 비슷하다. 칸트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칸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칸트는 우리의 정신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는 철학자이다.
철학적 해석학은 계몽주의와 관련이 되어 있다. 가다머에 의하면 계몽주의는 전통적인 기독교에 반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칸트의 논문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서는 정말 멋진 말로 시작하는데, "계몽이란 우리가 마땅히 스스로 책임져야 할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년 상태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 미성년 상태의 책임을 마땅히 스스로 져야 하는 것은, 이 미성년의 원인이 지성의 결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도 지성을 사용할 수 있는 결단과 용기의 결핍에 있을 경우이다. 그러므로 과감히 알려고 하라!, 너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하는 것이 계몽의 표어이다."(이한구 역)
계몽주의의 표어는 매우 놀랍다. 계몽주의 표어로 인류의 발전이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유로』의 저자 스티글리츠도 유럽의 고유한 가치를 계몽주의에서 찾고 있는데, "계몽주의는 현대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다. 우리는 계몽주의 이전 영겁의 시간 동안 인류의 생활수준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너무 종종 잊어버리고 있다."라고 말한다. 계몽주의는 인류의 진보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이성의 놀라운 진보는 전통적인 해석의 문제에 이의를 제기했다. 특히 성경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게 되면서, 이전까지 진리라고 믿고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성경을 합리적인 지성의 눈으로 보게 되면, 성경의 텍스트를 용납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조차도 성경에 대한 기록들을 믿기에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그 이유는 계몽주의의 영향 아래에서는 그것이 역사적인 기록이나 진리로 여겨지기에는 너무나도 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해'에 대한 문제제기
우리가 텍스트를 접하는 가장 큰 목적은 정보를 얻기 위함이다. 텍스트를 접할 때에 우리는 텍스트로부터 얻는 정보를 글자 그대로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형식으로 텍스트를 기억해야만 할까? 이 지점에서 논의되는 것은 바로 '이해'이다. 우리는 텍스트를 다룰 때에, 읽을 때에 그것을 이해하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이해는 꽤나 추상적인 작업을 거치게 되므로, 특정한 규칙들이 있을 것이라 상상하기 어렵다. 이해에 어떤 규칙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에 제약을 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해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텍스트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해서 논의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가다머는 『진리와 방법』에서 '이해'가 무엇인지 다룬다. 가다머가 이야기하는 이해에는 규칙이 있고, 가능성도 어느 부분에서는 닫혀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지 제약이 아니다. 가다머는 "지평"이라는 말로 이 부분을 정의 내린다. 먼 곳을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사람은 가까운 곳과 먼 곳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것처럼, 이해는 해석자의 지평에 따라 달라진다.
이 책에는 이해에 대한 논의가 역사적으로 다르게 논의되는 부분이 있다. 이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텍스트에 주어지는 것을 기억하는 것을 말한다. 어떠한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하는가는 이해에 관한 논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해가 잘 되어 있으면, 텍스트에서 전달하는 내용을 누군가에게 다시 전달할 때 용이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반면에 이해가 잘 되어 있지 않으면, 텍스트에서 얻는 것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이해라는 것은 텍스트뿐만 아니라 대화나 담론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철학적 해석학에서는 텍스트에 대해서 더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하는데, 그 이유는 대화나 담론에서는 이해의 영역에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누다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발생하면 상대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러면 상대는 질문을 한 사람이 이해하는 정도에 맞추어서 다시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지만 텍스트를 다루게 될 때에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내가 질문을 해도 텍스트는 활자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질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해'에 대한 논의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함을 느낄 수 있다.
해석학의 역사에서
계몽주의의 등장으로 근대 과학은 괄목한 성과를 이루게 된다. 그 놀라운 성과는 우리의 현재 삶에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과학적 방법론은 다음과 같은 형식을 취한다. "가정(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 실험 → 결과 → 검증." 이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명백하게 객관적인 형태를 취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연과학은 매번 같은 결과를 산출하는 데에서 타당성을 이룰 수 때문이다. 이로써 과학적 방법은 학문의 영역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왜냐하면 과학적인 방법은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그 방법론이 더욱 명백해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매우 매력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다른 학문의 방법론도 수정해야 할 가능성을 느끼게 만들었다. 과학적인 연구 방법은 인문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 결과 전통적으로 진리라고 믿는 영역에도 타격을 입혔다. 가다머에 『진리와 방법』 서두에서 "19세기에 들어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한 정신과학의 논리적 자기 성찰은 전적으로 자연과학을 그 모범으로 삼는다."라고 말한다. 인문학이 아니라 정신과학이라는 용어에는 인문학에 있어서도 자연과학과 같은 방법으로 진리를 탐구해야 하는 강제력이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면, 그것은 계몽주의 이전으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은 뉘앙스를 풍기게 된다.
계몽주의는 정신과학에 중대한 물음을 던진다. 자연과학적인 저술이 아닌 텍스트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자연과학이 아닌 정신과학에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해'라는 것은 무엇이며 '이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칸트에서 슐라이어마허, 헤겔, 딜타이까지
가다머는 해석학의 역사를 이해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해석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해에 관한 형이상학적 관점이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살필 수 있다. 가다머는 형이상학에 기초를 놓고 있는 해석학적 관점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한다. 가다머에 의하면 해석은 인식론적 접근이 아니라 존재론적 접근이어야 한다.
칸트 - 진리와 아름다움에 대하여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은 칸트의 논의로부터 시작한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듯이 칸트에 대한 논의로 시작하는 이유는, 진리라는 것이 미적인 부분(아름다움)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칸트에 의해서도 예술은 '사물의 아름다운 표상' 이상의 것이다. 예술은 미적 이념, 즉 모든 개념을 초월하는 그 어떤 것의 표현이다." 칸트에 의하면 예술작품은 이해의 영역과는 거리가 있는 독특한 영역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아무리 뛰어난 예술작품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예술작품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예술작품의 고유한 가치가 드러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술작품을 볼 때에 느끼는 경이로움은 이해의 영역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예술작품은 예술가가 속해 있는 그 시대에 속한 어떤 것을 반영하고 재현한다는 점에서 "예술작품의 독특한 현재성은 존재의 표현됨"으로 말할 수 있다.
슐라이어마허 - 재구성과 통합(낭만주의 해석학)
슐라이어마허의 논의는 이해의 과정에서 역사에 대한 쟁점을 부각한다. 예술작품은 예술작품을 만들었던 예술가가 살아있을 때에만 의미를 갖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예술작품은 역사에 대한 논의를 품고 있다. 슐라이어마허에 의하면 "예술작품이 속하는 '세계'의 재생, 창작하는 예술가가 의미했던 근원적 상태의 재생, 근원적 양식에 따른 상연, 역사적 재구성의 이 모든 수단은 한 예술작품의 참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고, 오해와 잘못된 현실화의 방지를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그에 의하면, 역사적 지식은 잃어버린 것을 보충하고 전승을 재생하는 길을 열어준다." 그러나 슐라이어마허가 이야기한 것처럼 해석은 재생이 아니다. 정보의 전달이 해석이라고 여긴다면, 이해는 소멸된다.
슐라이어마허는 "작품을 저자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을 해석학의 과제로 삼는다." 그러나 가다머에 의하면 해석은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앞에서 나는 텍스트는 저자의 의도를 담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리쾨르의 해석학을 다룰 때에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헤겔 - 관념론적 역사관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정신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역사의 과정이라고 보았다. 정신은 스스로가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 점점 발전하고, 궁극적으로 절대정신이 된다. 절대정신은 절대자이다(절대정신은 완벽하게 자신을 꿰뚫어 보며 어떤 다른 것과 이질감이 없다). 헤겔에 의하면 역사는 그렇게 진행된다. 헤겔의 역사관은 관념론적인 역사관인데, 그의 역사관은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와 역사학에 대해서 고민하는 학자들에게 굉장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헤겔의 역사관이 역사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딜타이 - 객관성의 확보(역사의식)
딜타이는 헤겔의 관념론에 맞선다. 딜타이는 텍스트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역사는 텍스트로 전달된다. 역사는 기록하는 사람에 의해서 텍스트로 바뀌고,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텍스트로 역사를 접하게 된다. 삶은 그러한 방식으로 계속되는데, 딜타이는 그것을 역사의식으로 보았다. 딜타이는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해될 수 있다. 모든 것은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딜타이에게 과거의 역사에 대한 탐구는 결국 역사적 경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해독하는 작업이 된다."
딜타이의 역사의식 탐구는 역사에 관한 형이상학적인 논의를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는 점에서 훌륭한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가다머는 딜타이가 과연 헤겔의 객관정신에서 벗어났는지 의심스러워한다. 딜타이는 관념론적인 역사관에서 오는 해석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부분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인식론적 문제의 극복
다음의 글은 후설부터 요르크 백작 그리고 하이데거로부터 시작한다. 가다머는 해석학의 역사에서 하이데거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하이데거의 논의는 해석에 있어서 형이상학적 관점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