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우리 아이들은 남들 다 가져보는 비엔나소시지 하나 장착하지 못하고 엄마 젖을 먹고 자랐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어른들은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런 날은 죄지은 어미처럼 나를 원망했다. 모유가 좋다는 사실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검증된 사실이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못 먹일 수도 있는데 남편은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모유 예찬론자이다. 타의 반 자의 반으로 모유 수유를 선택했지만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유독 첫째는 밤새도록 젖을 물고 자는 일이 허다했다. 엄마인 나도 요령이 없어서 꾸벅꾸벅 졸아가며 아이를 껴안고 젖을 먹였다. 나중에는 엉덩이 피부가 벗겨져서 식겁한 적도 있었다. 이러다 나가떨어지겠다 싶어 10개월 때 혼합수유를 하고 돌이 지나 젖을 떼고 바로 밥을 먹였다. 이 과정에 남편과의 다툼이 잦았다. 문제는 분유다. 엄마 젖으로 충분한데 왜 분유를 먹이냐는 거다.
"내가 젖소가? 젖소냐고."
감사하게도 둘째 때는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양도 충분했었고 누워서 수유를 할 수 있는 요령을 터득해서 한결 수월했다. 밤중에도 징징거린다 싶으면 바로 젖을 물리고 아이랑 같이 잠들었다. 주변에서 누워서 수유를 하면 중이염이나 비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나는 내가 살아야겠기에 그런 말들은 흘려 들었다.
놀랍게도 둘째는 4kg으로 세상 구경을 했지만 살이 오동통한 게 아니라 그냥 길쭉하게 키만 크게 태어났다. 그냥 쭉 가다 걸리면 팔꿈치구나, 또 가다 걸리면 무릎이구나 할 정도로 매끈했다.
왜 우리 아이들은 살이 찌지 않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날은 유달리 내 젖(?)을 비난하는 말을 많이 들었던 날이었다. 아이를 보고 있자니 짠하기도 하고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아 분유를 막 찾아다녔다. 유레카, 남편 몰래 숨겨둔 비상용 분유가 있었다. 얼른 아이에게 먹였다. 처음 먹어 보는 맛이어서 그런지 아이는 곧잘 먹었다. 먹이는 동안 나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래, 아무도 없을 때 먹이자.'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화산 폭발하듯이 먹고 있던 분유를 다 토해내더니 끝내는 노란 위액까지 토해내기 시작했다. 아이를 들쳐 안고 병원으로 갔다.
"뭐할라고 분유를 먹여서 아를 고생시킵니까? 살찐다고 다이어트하는 세상인데. 나중에 보이소. 더 건강하게 잘 자랄 겁니다."
야단치듯 쏟아내던 의사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그 이후 나는 분유도 젖병도 다 버렸다. 그리고 둘째는 첫째와는 달리 거창하게 이유식을 먹이지 않고 어른들 밥상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 점점 아이는 밥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15개월 때까지 수유를 하고 더 이상 나는 어디에서도 겉옷을 걷어올리는 일이 없어졌다. 그렇게 기나긴 모유 수유의 여정이 끝이 났다.
첫째 아들은 튼실한 하체에 떡 벌어진 어깨에 다부진 청소년이 되었고, 둘째 딸은 오빠보다 키가 크고(또래 아이들보다는 머리 하나 더) 모델 뺨칠 정도로 늘씬하다. 자라는 동안 병원 신세 안 지고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잘 커주었다. 단지 아이들은 엄마를 닮아 살이 안 찌는 체질일 뿐 모유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비록 울며 겨자 먹기였지만 잠 설쳐 가며 끌어안고 먹인 덕분인지, 그 덕분에 아이들과 애착 관계 형성이 잘 되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들은 엄마와 떨어지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았고 낯가림도 없었다. 어딜 가든 적응 끝판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