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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 광 Aug 27. 2021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으로



​우리 집에서 가장 열 일하는 가전제품은 냉장고 다음으로 티브이다. 할머니방 티브이는 24시간 내내 풀가동이다. 자나 싶어 끄면 일어나서 또 켜 놓고 잔다. 아이들이 티브이를 보는 시간은 밥 먹을 때나 볼 수 있는데 그것도 할머니 고정 채널만 시청 가능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티브이와 친해질 수 없는 환경이었다.

아이들은 핸드폰도 없었다. 없어도 큰 불편함 없이 잘 지냈다. 주변 지인들은 친구들과 핸드폰 게임을 하지 않으면 왕따를 당하다는 둥, 공감대가 없어 대화에 끼지를 못한다는 둥, 참 말들이 많았다.

중2, 작년 6월 온라인 수업 때 선생님과 소통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개통했지만 전혀 그런 문제는 없었다. 친정엄마가 "니는 아들(애들)을 뛰다 낳았나?"라고 할 정도로 활동적인 아이들이라 핸드폰을 오래 들고 있지도 못하고 엉덩이가 들썩거려 게임도 오래 못한다. 아마 축구는 몇 시간도 거뜬히 해낼 거다.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지만 요즘 아이들은 sns로 소통을 하고 전화번호를 모른다. 오히려 엄마인 내가 아이들 친구 번호를 더 많이 알고 있고 통화를 더 자주 한다. 아들의 위치 파악이 목적이기도 하지만 겸사겸사 아이 친구들의 안부를 묻기도 한다. 가끔 아들이 빌린 돈을 갚지 않을 때도 연락이 온다.

"준영이가 지난번에 4,000원을 빌려 갔는데요."

"안 주고 가버렸나?ㅎㅎ 지금 바로 보내줄게"

"죄송합니다."

"니가 뭐가 죄송하노. 안 주고 간 니 친구가 미안해 해야지ㅋㅋ"

"그래도 죄송합니다."

"짜슥, 더 미안하게, 준영이 옆에 좋은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다."

"아닙니다. 어머님이 더 좋으신 분입니다."

기특한 녀석에게 칭찬도 듣고 고마운 일이다.

숙소 있다가 외박을 나오면 어김없이 엄마 핸드폰에 페북을 깔아 메일 확인을 하고 저녁 약속을 잡는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하고 음침하고 야한 소리가 나왔다. 아이는 놀래서 끄고 나는 무슨 소리냐는 눈빛으로 아이를 쏘아 보았다. 그것은 호나우도 축구라는 제목으로 올려진 게시물이었다고 하는데 당황스럽고 낯부끄러운 순간이었다. 딸아이에게도 카톡만 허용, 모든 sns는 차단 시켰다. 여자아이들이 더 무섭다. 스마트폰은 잘 쓰면 유용한 기계이지만 일찍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너무 일찍 알게 되고 경험한다. 물론 스마트폰뿐만 아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문명의 혜택을 조금은 거스르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PC방도 6학년 때 갔다. 처음으로 엄마 몰래 간 날, 무려 엄마 아빠의 지인 3명에게 걸리고 만다. 모른척하고 있었더니 이실직고를 하긴 했지만 그 이후 PC방 간 친구들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혼자 기다렸다고 한다. 친구들 다 가니 얼마나 가고 싶었을까? 이해는 한다. 그렇지만 그 안의 풍경이 너무 싫다. 듣도 보도 못한 욕지거리에 건전하지 못한 아이들의 껄렁함, 물론 나의 선입견일 수도 있다. 언젠가는 알게 되는 세계이니 이것 또한 조금 더디게 경험했으면 했다.



나는 연탄불, 곤로(풍로를 속되게 이르는 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명의 혜택을 다 받고 자란 70년대 생이다. 얼마만큼 발전했는지 몸소 경험한 사람이다. 주인집 눈치 안 보고 우리만 쓸 수 있는 집 전화가 생겼을 땐 얼마나 신기하고 신기했는지 한데 지금은 각자의 손에 하나씩 들고 있는 것이 전화기다. 이제는 사람의 손보다는 기계의 손을 빌리는 일이 더 많다. 편리하고 유용하지만 사람 사는 정이 없다. 기계치인 나는 햄버거 주문하는 것도 버벅거리고 할인 혜택받는 것도 어찌하는지 몰라서 패스해 버린다. 희한하게 컴퓨터는 내 손만 타면 먹통이 된다. 친해질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펜으로 쓰는 글씨가 좋고 핸드폰 메모장보다 수첩에 메모하는 것이 더 좋다. 카톡으로 주고받는 안부 메시지보다 통화하던지 당장 만나는 게 훨씬 인간적이라 좋다.



몸으로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은 핸드폰 게임, 각종 미디어에 노출되어 현실과 게임 속 세계를 분간하지 못하고 방구석에서 병들어 가고 있다. 망상에 젖은 아이들은 옳고 그름의 판단이 흐려지고 과격해진다. 세상을 온통 삐딱하게만 보게 되는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해로운 것은 조금이라도 더디게 접하고 차단시켜주어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건강한 몸으로 사람들 속에서 부딪치고 쓴소리도 들으면서 좀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리라 믿는다.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이왕이면 태평양 열대어가 낫지 않겠는가?



온 가족이 핸드폰 없이 하루 살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불편하고 심심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평온하고 잔잔하고 여유롭다.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을 것이다.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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