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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Sep 10. 2023

아 췬추ㅏ?

추임새 또는 의심

나는 한국말을 가장 잘하는 한국인이다.

(잘한다기보다 외국어에 비해 낫다는 뜻)


그러나 솔직히,

국어에 자신 있었어도 한국 마지막 학력은 초졸,

그나마 배웠던 내용마저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이미 10대에 스스로 느끼거나 인정했던 것은


1. 그럴싸한 표현들은 잘 생각나지 않았고

2. 점점 단순한 생활 한국어만 유지했으며

3. 어른께 애매한 존대표현으로 실수한 적도 있었다.

(문장 중간에 존칭으로 제대로 바꾸지 못하는 실수)


한글 독서는 초딩시절 끝난 것과 다름 없으니

어휘력이 줄면 줄었지 늘 리 없었고

외국에 살아도 95%듣고 5%만 말을 하다보니

전반적인 언어가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일기만큼은 열심히 적었는데

영어, 노어, 한글이 규칙 없이 섞여 있어,

내 일기를 엿보려면(?) 어쨌거나 3개 국어는

해야겠구나 생각한 적도 있다.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수록 섞어 쓰지 않는다.

예외는 있겠지만 내가 본 경우는 전부 그러했다.



주위에 나보다 (한)국어를 잘하는 친구는 없었다.

내가 국어를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옆에

국어를 잘할 리 없는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다.


미국 7년, 한국 7년, 그 후 모스크바로 왔거나

여러 나라를 돌다 이번에도 부모님을 따라왔거나.

특히 나의 10대에는 부모님의 대사관, 대기업 등의

발령으로 따라온 친구들이 제법 많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미국 또는 영국학교를 다녔고, 그중

전공에 따라 러시아 학교를 다니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거나 말거나, 우리는 모두 비슷비슷, 또는 더

난감한 수준의 국어실력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백화점을 "백하점"으로 적거나, 말은 하는데 한글로

책을 너무 안 읽어서 더듬거리며 읽는 애도 있었다.

스크바에 와서 한국어가 늘어가는 경우도 보았다.

미국은 보통 한국애들끼리도 영어를 사용하겠지만

러시아에서는 한국애들끼리 한국말을 사용하니까.


본인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던 이중국적

친구 한 명은 이야기 도중 모두 웃음이 터지면 대화

내용을  이못 해 혼자 멀똥멀똥 쳐다보기도 했다.

마치, 얼결에 영국학교 졸업식에 따라가 연설 듣다

모두 웃음이 터지는데 나 혼자 뭐였지 했던 것처럼.


장소는 모스크바인데 문 열고 들어가니 영국이라

입구에서부터 매우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ㅋㅋ

왜 따라왔을까, 왜 나를 부른 것일까. 수 년여만에

들어보는 영어 부스러기들을 지나쳐 보내며, 새삼,

그저 평범하게만 보아왔던 친구들을 '아 참.. 얘네

주재원 자녀였지, 영어 쓰는 애들이었지'했던 기억.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 둘은 마침,

한국에 대한 환상을 가졌고 한국에서 별로 살아본

적이 없는 애들이었다. 그래서(?) 나의 국어실력은

딱히 늘 이유(?) 또는 기회가 없기도 했던 것이다.



러시아어에도 사투리가 있지만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수도라서

사투리를 쓸 리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어로도, 외국어로도,

사투리를 쓸 리 없었다.



대부분 한국인 룸메들과 살았는데

기숙사에서는 중국인과 한 번,

우크라이나인과 한 번 1년씩 살았다.


중국룸메는 샤워실에 내려가면 적어도

1시간이 넘어야 돌아왔는데 얼굴이 매번

아주 새빨갛게 익어 있었다.

(샤워실에서 중국인들 화기애애 모임)


우크라이나 룸메가 나와 살게 된 계기는

그녀의 룸메가 "더러워서 더는 못 살겠다"

탄원서를 제출하고 나갔기 때문이었다.

(살아보니 샤워실에 거의 가지 않았다)


중국룸메도 알고 보니, 복도에서 머리채 잡고 싸워

유명해진 센케였는데 나와 1년간 조용히 살자,

다음 룸메 도전해 주신 듯. 우크라이나 룸메 역시

전전 룸메와 1년 내내 불화로 시끄러웠다고..


기숙사 평화를 위한 땜빵(?)임을 뒤늦게 느꼈지만

감사히도 의외로(?) 센케들과 평화로이 지냈다.



한번은 한국인 두 명과 한 방을 썼는데

한 명은 말이 어색했고 한 명은 사투리를 썼다.


지도도 잊고 사투리나 지역감정도 모를 때라

사투리를 듣고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았다.

울산이라고 했다.


"맞나~!"

"아, 맞나~?""

"아, 맞다~"


이 말을 6개월간 6천 번쯤 들은 것 같다.

나는 동화되었다.


"아, 맞아"

"아, 맞네!"


일상에서는 물론이고 이제 부모님과의 통화에서조차

울리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어색하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추임새를 따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투리도 아니고,

표준어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



한국친구가 북한친구를 소개해 준 적이 있었는데

순전히 "북한 말투"에 큰 관심을 가져서 북한인의

말투를 들어보는 것에 큰 흥미를 가진 적이 있었다.

어릴 때 TV에서 잠깐  북한 말투가 어찌나

웃기고 독특하던지. 언어나 소리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실제로 들어보니 기대했던 것만큼

북한스럽지 않아 실망했다..ㅋㅋㅋ

(부산사람이 서울사람 만나면 완전체 사투리가

나오지 않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듣는 것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던 나는

어느 날 한국인들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언니, ㅋㅋㅋ 언니 사투리 쓰세요..?"

"야 너 약간 북한말투로 변해가는 것 같아."


(알고 보니) 나는 동화되고 있었다.


그들이 북으로 다시 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사투리(?)'의 영역에서 벗어났다.


나의 능력에는 희한하게도 기한이 있는지

당시 북한 말투를 꽤 찰지게 흉내 낼 수 있었지만

현재는 전혀 하지 못한다. (외국어도 비슷한 듯..)



울산 룸메는 그 후의 일이었다.


"맞네! 맞아" 역시, 룸메가 달라지자

자연스럽게 본래의 나(?)로 돌아왔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며칠 전 아래의 글을 보았다.

제목의 내용이 매우 의아해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



출처 : https://m.bboom.naver.com/best/get?postNo=4005040&boardNo=9


이상했다.

일단 상황이(죄송하지만) 웃겼는데,

왜 이 자연스러운 추임새가 누군가에게는

듣기 싫은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댓글을 읽으니 더 큰 혼란이 찾아왔다.



사투리?


" 진짜요? " 가 사투리라는 뜻인가..!


그럴 리가. 나는 사투리를 쓸 리 없는데...



아 췬추ㅏ?


- 횬쏜, 횬쏜


우크라이나인 룸메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다급히 불렀다.  (내 이름은 노어 특성상 발음이 후지다)


- 응

- 나 궁금한 게 있는데

- 응

- 아.. 그게 뭐지, 뭐였더라.. 아...

- ???

- 네가 평소에 많이 쓰는 말이 있거든 한국말

- 오 그래? 그게 뭔데?

- 아 근데 생각이 안 나네 들으면 아는데

- 아 궁금하다 뭐지?

- 네가 제일 많이 쓰는 단어야 뜻이 너무 궁금해


나도 궁금했다.

같이 사는 친구가 가장 많이 들은 한국말이라니

더욱 궁금해졌지만 내가 여러 단어를 꺼내 봐도

그게 아니라고 하며 끙끙 앓다 말했다.


- 괜찮아! 가 또 말할 거야! 그때 바로 물어볼게!

- 그래 ㅎㅎ


그때 폰에 진동이 와서 전화를 한국말로 받자,

룸메는 눈을 반짝(번뜩)이며 내 통화를 주시했다.


- 언니! EMS 왔어요

- 아, 진짜?


그때였다.


- 횬쏜!!!! 바로 그거야!!!!!

    아 췬 촤?!!! 췬 촤!!!


매우 기뻐하며 외치던 그녀가 뜻을 물었다.




- 뜻은,

- 응!


(정말 기뻐하고 있었다)


- 정말인지 묻는 것도 되는데,

- 응!

- 러시아말의 правда랑 똑같아.

참인지 거짓인지 물을 때도 쓰지만

아 그래? 하는 의미로도 사용하잖아.

- 응, 그렇지.

- 이것도 같아.

- 오, 그랬구나! 췬촤? 취인쫘아?

- "매우"의 의미로도 사용되. 때에 따라 달라.

- 오오, 취인챠 췬챠?

- 발음이, 췬 이 아니고 지인~짜아~

- 쥐ㅇㅣ이인 촤아아아아 추ㅏ!

- ㅎㅎ 그래


룸메는 나에게 몇 번이나 "췬촤?"를 시도했다.



듣고 보니 "진짜" 그 말을 많이 사용했다.

공감의 표현. 상대를 생각하며 써주는 감탄사.


표현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충격이었고

심지어 사투리라는 정보에 놀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그동안 몰랐던 건가?

그럼 "진짜" 대신 어떤 말을 사용해야 한단 말인가.


혹시 나의 "진짜?"에 힘든 사람이 있었을까??

설마. 그런데

내가 언제부터 이 표현을 사용했지?!



그러고보니


유학와 맨 처음 만난 학교 친구가 부산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한 무리'였다. 모두 부산에서 왔다.


나는 20대 중반까지 부산에 가 본 적이 다.

부산에 친척도 없고 멀기까지 하니 가지 않았는데

1여 년 전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와 차로 부산에 갔다

일종의 문화 충격을 외국보다 많이 받고 돌아왔다.

(외국은 대비를 하고 가는데 부산은 그냥 가서.......)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일본어의 "本当와 러시아어의 "правда",

"really?"도 얼마든지 추임새(?)로 사용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저 세 가지 언어로 현지인과의 대화에서

분명 저 단어들을 추임새로 사용해 본 적 있었으며

상대도 "아 그래?"하는 맞장구로 받아들였다.(고

혼자 믿어온 것인가. 너무 자연스러운 "진짜"인가.)


https://m.bboom.naver.com/best/get?postNo=4005040&boardNo=9



아직 "진짜"의 표현이 추임새인지 반문인지

헷갈리는 시점에 봉착해 있고

사투리인지 표준어인지 완전한 확신도 없지만


일단 극공감의 표시로 수도 없이 해왔던

"아 진짜?"와 아쉬운 결별을 해야 할는지

진지하게 알아보고 생각해 볼까 한다.


"아 그래?"도 있기는 하니까...

요즈음의 나를 보면 "아, 정말?"도 잘 쓰는데.

진짜나 정말이나 다 참이냐는 뜻은 가지고 있지.


러시아어에서도, seriously에 해당하는 단어를,
진짜를 뜻하는 really에 해당하는 단어와 함께,
즉 저 두 단어를 (노어로) "오, 그래?"정도의
의미로도 사용할 수 있다. 추임새라는 말이다.
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추임새" 단어도 이 뿜의 글을 읽고 처음 따라
사용해 보는 단어... 글쓴이의 글이 귀엽고
"추임새인데요" 했다는 말이 특히 귀엽게 다가와
오늘 많이 따라 하는 나는 이미, 동화되었다...



꽃이라고 말해도 상대가 곰으로 들린다면

바꾸어 맞춰 말해주는 것은 괜찮은 일이나

(이런 면에 웬만하면 맞춤배려인간)


그간 무척이나 많이 사용해 왔다 보니

마치 외국어 단어를 새로 배우는 것처럼

한편 생소하고, 조심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하지만,

개인적으로 위의 경우가 웃기고 안타깝기도.


모든 사람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며"

웃음이나 상처 포인트도 "다를 수 있음"을 존중한다.


넘버원 표시가 한국에서 따봉일지라도

독일에서는 숫자 1, 일본은 숫자 5,

호주나 이란에서는 거절, 무례함인 것처럼 말이다.


설사, "진짜요?"가 극도로 듣기 싫은 사람일지라도

상대가 "추임새"로 사용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아, 그래요?" 혹은 오해할 뻔했다 넘겨 본다면

서로의 마음이 가뿐한, 좀 더 유연한 사회가 될 지도.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진짜?"라는 표현이 아무렇지 않을 수도.


진짜?




이 표현에 대하여 제가 모르는 부분이나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가르침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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