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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May 07. 2024

러시아 친구

feat. 착함 그 잡채

러시아에 살았지만

정작 러시아 친구가 많지 않았다.

혹은 친구 자체가 소수였던 것도 같다.


초창기 교회 친구 한 명

대학 다닐 때 몇 명

아파트 살 때 집주인 딸

그냥 이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정말 적네.


옛날 내 베프는 어릴 때부터 시내를 활보하다가

큰 호텔에서 청소부를 하며 지하에서 살더라는

러시아 남자 어른들과도 친구 먹고 놀았다던데..

(그래서 러시아욕을 러시아인보다 잘한다고....)


우리 학교는 대학이라도 음악원이라 음악전공자만

있고, 기숙사에도 물론 우리 학교 학생만 살았으니

음악 하는 ㄸㄹㅇ 수백과 함께 한 ㄸㄹㅇ가 나였다.


알다시피 러시아는 나라가 너무 크다.

우리나라도 서울사람과 부산사람의 다른 점이 있듯

러시아도 모스크바와 뻬쩨르부륵(St.Petersburg)

또는 타 도시 사람들의 분위기가 다른 것을 보았다.


하나 예를 들면,

모스크바 도심에서 길을 물어보면 말로 알려주고

뻬쩨르 도심에서 길을 물으면 뒤를 돌아 같이 가 줌.


시골 사람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모스크바 아닌 타 지역인 일수록 순수한 편이었다.

내가 겪은 일부만 말하는 것이다.



우리 학교 작곡과는 인원이 소수이다.

학년당 나까지 열 명이 절대 안 된다. 6~7명이던가.

악기과는 당연히 우리보다 많고 성악과는 떠들지만

안 그래도 말이 적던 작곡과 학생들은 더욱 조용했다.

그중 두 명을 빼고는 다 지방에서 와 붙은 애들인데

얼마나 착한지, 진짜 말도 못 하게 착함 그 자체였다.



한예종 친구가 부러워한 적 있다.

과는 노코멘트. 아무튼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으로는

S대 아니면 한예종인데 연주파일수록 후자이기도.

피아니스트 임윤찬이나 조성진도 아마 다 거기 출신.

아무튼 여기에 다니던 친구가 내 얘기를 듣고 놀라며

부러워한 까닭은 다름 아닌 '같은 과 친구들'이었.


우리학교 작곡과

우리 과 러시아애들은 순수했다. 노는 사람은 결코

찾아볼 수 없고 수업에도 절대 빠지지 않지만, 서로

경쟁구도로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경우도 본 적 없다.

함께 공부해 나가는 것이고 함께 더 알아갈 뿐이었다.


딱 한 명. 어디에나 한 명은 있으니까. 그러나 그 애도

분위기상 일 년에 두 번만 그랬다. 시험 당일 복도에

차례를 기다리는 애들에게 "이번에 곡 몇 개 썼어?"

꼭 물어보는 애가 있었다.(모스크바 출신) 그럼 대개

나는 몇 개, 너는 잘 썼니 정도 오간 후 조용해진다.


물어볼 때 '숨겨왔던 이기고 싶은 본능'이 보이는데

나한테도 물어보길래 한 개라고 답했다. 게을러서...

그보다 나는 경쟁에 관심이 없다. 장단점이 있다.

항상 한 개만 완성했다. 원래 한 개 하는 거 아닌가?

나는 그 애가 몇 개를 썼는지 아무 관심조차 없었지만

몇 년간 대답만 하고 보니 물어봐줘야 할 것 같았다.


- 너는 몇 개 썼는데?

- 나? 다섯 개!


그래, 열심히 해라 ㅋㅋ 그 친구를 제외하고는

러시아인에게서 그런 분위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후에 같은 학년이 된 한국애가 몇 번 신경을

거스른 적 있다. 경쟁과 경계심에서 나오던 비겁함.

위협은커녕 나를 각성시킬 만한 실력이 아니었기에

관심두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공부하다 와서였을까?

러시아에서만 음악한 애들과 그런 부분 결이 달랐다.

어쩌면 그래서 한국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겠지...



대인배


학기 말, 가장 어려운 과목을 결석했다. 사실 나는

모든 강의에 가지 않고 적당히 살아남으며 점수 

받을 줄 알다 보니 결코 투지적으로 다니지 않았으나,

과목만큼은 나조차 절대 빠질 수 없는 수업이었다.

한 번 빠지면 다음을 이해 못 하게 되어버리기 때문.

그 수업을 몇 번이나 빠져 난감하기 짝이 없던 나는

인생에서 몇 번 하지 않는 부탁이라는 것을 해 봤다.


- 아리나, 혹시..

- 응?

- 0월 0일 노트 필기 있어..? 정말 미안하지만 딱

  그 날짜 필기만 혹시 빌려볼 수 있을까..?

- 그럼, 당연하지!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당분간 수업이 없어서 학교 올 일이 없으니

따로 만나야 했다. 생색이라는 것이 없다. 메트로에

나온 친구가 필기한 것을 내밀었는데 아주 묵직했다.


- 엇.. 복사본이네?

- 어, 너 편하게 보라고 복사했어.

- 그런데 이거...


자기 공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즉 반 년동안 열심히

적은 필기노트를 몽땅 복사해서 나에게 넘긴 것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러면 돈이 꽤 들었을 텐데..!

무려 두꺼운 책 한 권  분량. 다 읽지도 못할 듯!


- 세상에, 한 날짜 것만 줘도 됐는데.. 정말 고마워!

  그런데 이거 복사비 많이 들었겠다. 얼마였어?

- 에이, 그냥 받아.

- 아니야, 이거 너무 많아. 얼마였는데?

- 아냐 아냐, 선물로 주는 거야. 별 거 아니잖아.


그래도 안 되겠어서 지갑에서 돈을 꺼내려던 나에게


- 너 지금 나한테 그 돈 주면 너랑 친구 안 한다.


결국 돈 못 주고, 필기에 담긴 사랑을 받아왔다.


여담이지만 아리나는 그 후 기숙사에 살았는데

지나가던 날 보고 자기 방에서 차를 대접하면서


- 빵, 빵도 먹을래?

- 아니, 괜찮은데..!

- 잠시만! 저기 빵 사둔 것 있어.


   없었지만 충격받았다.

꺼낸 빵에 곰팡이가 조금 슬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 부분만 잘라내고 버리지 않았다. 아껴 먹느라.

나는 먹지 않았지만.. 그녀의 경제적 상황은 결코

여유롭지 않았는데 사비 들여 수백 장을 복사해서

그것도 무려 같은 과 친구에게 덥석 주다니.

항상, 하나를 물으면, 열 개를 주는 친구였다.



선물 로봇


같은 과이면서 같은 교수님의 제자는 한 명으로

까쨔라는 친구였다. 까쨔는 예까쩨린부르크에서

왔는데 엄마와 함께 모스크바에 거주하고 있었다.

솔직히 까쨔는 진짜 말이 없고(심지어 나보다 더)

사교성도 없고 숫기도 없는 완벽한 모범생이었다.


당시 우리 교수님은 학교에서 짱을 먹고 계셨는데

까쨔는 그에 걸맞은 제자로 천하제일 학구파였다.

늘 진지했으며 나보다 더 집순이임이 틀림없었다.


그런 딸을 둔 까쨔의 어머니는 아마도 딸에게 필시

친구를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당시, 매번 놀라고 아,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지

이 집 뭐지, 이 분 대체 어떤 분이지 했는데,

점점 그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된 것 같다.


노력은 선물로 이어졌다. 남자에게도 그런 식으로

선물 받은 경험이 없다. 나는 남자로부터 단 한 번도

초콜릿을 받은 적이 없는데, 까쨔가 준 페레로 로쉐

선물세트 그것도 작은 것 말고 엄청 커다란 것으로만

ㅋㅋㅋㅋ 아무 날도 아니어도 문득문득 선물을 주면

내가 당황해서 무슨 선물로 보답해야 하나 하곤 했다.

페레로 보다 라파엘로가 맛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라파엘로 먹고싶다 패레로로쉐는 차라리 Rondnoir가 낫다


그다음에는 무려 홈웨어 원피스를 선물해 주었는데

와, 이게 도대체 어디에서 산 것인지 품질이 좋았다.

심지어 디자인과 색상까지 대박이라 몇 년을 입었다.


까쨔는 선물을 줄 때에도 표정이 매우 진지했다. ㅋㅋ

목석처럼 서 있으면 까쨔의 엄마가 어린이를 보채듯


- 자 얼른, 네가 가서 선물을 줘야지.


이런 추임새를 넣고 계시는 것이 보인다. 그러면

까쨔가 여전히 침착하고 진지한 얼굴로 게 다가와

아주 훌륭한 선물을 매우 정중하게 증정하는 것이다.


다른 러시아 들도 있었는데 어설퍼 보이는 동양인

나에게만 그렇게 좋은 선물을 주시면서 챙겨주시던

까쨔의 어머니와 가쨔에게, 아.. 그만큼 못 갚고 왔다.

아....


평소 아무리 좋은 친구 같더라도

상대가 잘됐을 때 축하할 수 있어야 진짜 친구인데,

신기하게도 까쨔와 나는, 딱 두 부문으로 나뉘던

같은 콩쿨에서 각각의 부문 1등을 한 적이 있었고,

그때도 까쨔의 엄마가 내 선물을 준비해 오시더라.



호감형 남학생


바냐라는 친구는 우리 과 아니 학교에서 내가 본 중

가장 잘, 혹은 예쁘게(?) 생긴 호감형 남자애였다.

모스크바 애였고 호리호리, 인상이 매우 선했다.

문제는 이 친구가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은 왜, 말하지 않아도 그걸 아는 것일까.

나대진 않아도 어쨌든 러시아인이니, 한국인보다

표현이 드러나게 되어 내가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강의가 끝나면 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기 마련인데

나중에는 4층에서 얘가 나를 따라잡으려 쾅쾅 뛰는

소리가 들려, 내가 더 빠르게 계단에서 날 듯 도망가

사라져 주었던 기억도 난다. 친구로도 좋은 애였는데

왜 그렇게까지 도망을 갔던 것일까. 어쩌면 그 친구가

호감형이었기 때문에 도망간 것일는지도 모른다.

시험에 들 일 자체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바냐 때문에 나는 학교에서 빨리 사라지는 사람

되고 말았다. 거의 2년 동안 한결같, 바냐도 이제

포기한 것 같았다.  원래 옷을 후지게 입는 편인데

그 시기 일본친구들과 다니다 삘을 받아 샀던 새로운

옷을 입고 학교에 갔다. 희한하게도 길에서 일본인이

나에게 일본어로 길을 물어보거나, 한국 애들이 내게

요새는 일본사람 느낌이 난다던 미묘한 시기의 패션.

(그렇다고 내가 일본을 좋아했다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 도착해 엘베를 탔는데 이런.

한 명이 들어왔다. 무려 바냐였다.


엘베 문이 닫히니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바냐는 몰래 말고, 나를 대놓고 계속 쳐다봤다.

그래, 이래서 내가 얘를 피해 도망 다녔던 거야.

모르는 척 멍 때리다 그래봤자 엘베 안, 낯이 뜨거워

순간 그 애를 봤는데 그때 들은 말이 잊히질 않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러시아어에서만 나오는 삘.

고마운 말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쁘다거나 아름답다 라고 말했다면 인상 깊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얼굴이 뜨거워

엘베 문만 뚫어져라 쳐다보다 그렇게 도망쳤다.


하지만 사람 피하자고 학교를 그만둘 수 없기 

오케스트라 강의 , 내가 실수로 펜을 바닥에

떨어뜨려 주우려는 순간 멀리 있던 ㅋㅋㅋ 바냐가

ㅋㅋㅋㅋㅋㅋㅋ 점프하  ㅋㅋ 펜을 주워서

나에게 건넸다. 생애 가장 민망한 수업시간이었다.


조용히 왔으면 덜 한데 급히 오다 책상에 걸려 쾅!

요란히 튀어왔으니 애들 다 쳐다보고 교수님마저...

강의를 멈춘 채 누구도 아무 말 없던 그 타이밍.

하.....


졸업식에서 아주 예쁜 러시아 여자친구와 함께

학교 홀을 걷던 바냐를 멀리에서 보게 되었다.

분명 나를 보았지만 서로 인사하지는 않았다.


네가 착하고 좋은 친구였기 때문에 그랬던 거라고

내가 네 마음을 가지고 놀 수는 없는 것 아니겠냐고

내가 말했을 리는 물론 없다.


걔만 그랬다. 학교에 남학생이 얼마나 많은가. 그중

바냐만 그런 것이지 다수가 나를 좋아했을 리 없다.

러시아에 예쁜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ㅎㅎ

각기 좋아하는 타입은 다양하기 마련이니까.

짚고 넘어갈 것은, 인기녀 타입이 전혀 아니었지만,

이따금 매니아존재했던 것 같다 정도. 거기까지.




아무튼 우리 학교 러시아 친구들은 하나같이

순수하고 착하고 서로 도와주며 선물도 하는 ㅎㅎ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친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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