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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Jun 19. 2024

아빠 같은 남자랑

결혼한다 vs 안 한다

- 언니, 나는 절-대로 O씨 A형 남자랑은
결혼 안 할 거야.
- O씨 A형?
- 어.
- 너.. 혹시 아빠가 A형이셔?
- 어.


우리는 서로 마주 본 채 쌉싸름하게 웃었다.

자기 성씨 A형과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 다짐하던

눈빛은 수년동안 봐오던 중 가장 굳세고 강력했다.

그래서 기억에 남았다.

그녀는 성인이 되어, 다른 성씨 B형과 결혼했다.


- 나는 우리 아빠 같은 남자랑 결혼할 거야.
- 아빠 같은 남자?
- 응. 아~~ 나도 우리 아빠 같은 사람 만나고
 싶다~~~ 아빠! 난 아빠 같은 남자 만날 거야!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충격이었다.

자기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니,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아저씨가 그 정도로 아내에게 잘하시나? 아님

딸한테 특별히 잘하나? 나도 그 집 식구들을 다

알지만 딸이 그런 생각을 할 정도인 줄 몰랐다.


그 친구만이 유일하게,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라고 했고,

그 말을 들은 그 애의 아버지가 아주 흐뭇하게

웃는 얼굴을 보았다. 만족, 흡족, 딱 그런 느낌.


- 아빠 때문에 힘들어.
- 너네 아빠 되게 좋으시지 않아?
- 누나가 몰라서 그래.....
- OO이는 아빠 같은 남자랑 결혼하고 싶다고
그랬는데..? 어릴 때 그렇게까지 말하더라고.
- 누나한테는 잘했어. 누나한테만 그래.
- 누나한테만..?
- 차도, 누나한테는 외제차까지 사줬는데
 나는 걸어 다니다 누나가 결혼하고 떠나서
 남긴 걸 내가 받게 된 거야. 누나가 줘서.


물론 차 얘기가 주제는 아니었다. 그 집 아들 말을

들어보니 아들과 딸을 대하는 갭이 생각보다 매우

큰듯했다. 딸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고 다 들어주는

아빠인 반면, 아들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커서인지

아들의 꿈도, 계속 인정하지 않다, 결국 국내 최고

대학에 입학하자 그제야 조금 인정하신다 들었다.

'강한 아버지','능력있는 아버지'와 한집에서 사는

아들에게는 아마 다소 어렵고, 힘들었던 모양이다.


- 그 집, 바람 폈었잖아.
- 네????!?!
- 어머, 너 몰랐니?
- 무슨.. 누가요? OO네 아빠가요???!
- 어, 몰랐구나. 많이들 알고 있었는데.
- 말도 안 돼. 걔네 아빠, 엄청 잘하지 않았어요?
 집에 엄청 잘하고, 아내분도 너무 예뻐서..
- 무슨. 아내분이 속 많이 썩었지. 유명했어.


또 충격이었다. 특히 더 놀랄만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남의 개인사라 일일이 적을 수는 없겠다.

아무튼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지만,

당시 주변인물이라 자세한 내막까지 알고 있었다.


딸도, 나도 모른 게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알았다면 얼굴을 어떻게 봤을까 싶어 말이다.


미국 아빠들


모스크바에서 한때 국제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다.

캐쥬얼한 차림의 미국인 목사님이 설교 후 내려와

객석에 앉자, 그의 어깨에 10대 딸이 팔을 올려

친구 격려하듯 어깨동무를 했다. 그러자 그 아빠가

가볍게 웃으며 한참이나 그 자세로 예배를 드렸다.


말을 잘 듣는 이유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 있다.

(예외는 어디에든 있지만!) 왜 대부분 미국에서는

커다란 개들이 아기를 잘 돌볼까? 그런 영상을 꽤

봤단 말이다. 한국은 반려견 교육문화가 발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미국은 그런 집 많지 않은가.

아이 돌봐주는 개, 자는 아기 담요 덮어주는 개.

왜 외국인 다수는 개를 잘 훈련시켰던 것일까?


러다 문득, 나만의 추측이 뇌리에 스쳤다.

개가 아이를 잘 돌본다면 개를 잘 훈련한 것이고,

훈련을 위해 필시 개와 잘 소통해야 했을 것이다.

개와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잘 다루게 된 게 어쩜

애초에 어린아이들과 잘 소통하기 때문은 아닐까?


미국의 문화 특성상, 어른과 아이 사이에 존재하는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존중'이 아이는 물론 개와의

소통에 있어서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소통 못하는 아버지일수록 반려견과도

소통에 능하지 않아 훈련시키는 것도 어설프단 점.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버지의 권위는 사실 아버지가 될 때 생겨났을 뿐

본인이 쥐고 놓치지 않아야 하는 생명줄이 아닌데,

애석하게도 한국의 다수는 그것을 애써 꽉 쥐었다.


내가 이 집 가장이야 (내가 왕이다)

내가 말하면 끝까지 들어 (넌 닥쳐라)


권위에 연연할수록 열등감이 심하다.


어디서 나를 감히 무시하냐 (자격지심)


이러한 아버지들에게는 공통점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도 아버지와 제대로 된 소통을

해보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꽤나 슬픈 사실이다.


소통의 방법을 모르는 아버지는

자신이 지켜야 할 가족으로부터

자신의 권위를 지키려 애쓰다,

나중에 자식들이 다 자라고 나면

존경은커녕 외면을 받기도 한다.


제일 싫은 사람


- 나는 권위적인 사람이 제일 싫어.


어떤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말보다 줄곧

어떤 사람이 싫은지 이야기했던 게 분명하다.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것인지 몰라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어떤 줄은 알았으니까.


아버지에게는 아버지의 권위가

어머니에게는 어머니의 권위가 있었는데,

당시의 아버지는 나에게 존경받지 못했고

엄마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권위를 지속적으로 주장하셨으나

엄마는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다.


강제 뷔페


아버지가 주장하는 대화방식은 대화가 아니었다.

사실이든 아니든 맞든 틀리든 내 의견이 무엇이든

일단 말씀을 시작하시면 무조건 끝까지 들어야만

하는 것. 중간에 의견을 얘기하면 버릇없는 자식

되고 혹 논리적으로 제시하면 아버지를 무시하는

불효자로 가정의 불화를 확신해도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대화하자"하실 때마다 뷔페 같았다.

서로가 고른 음식을 나눠먹는 게 아니라, 마치

내 입을 벌린 뒤 그가 원하는 음식을 가득 넣고는

"입에 맞지 않다면 먹지 마라. 일단 다 넣어라"

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느꼈다. 실제 그렇게

말씀하기도 하셨고. (끝까지 듣고 아니면 말아라.

하지만 내 말이 끝날 때까지 너는 말 말고 들어라.)


슬프게도, 아버지는 그것이 일종의 '배려'라고

생각하셨을 수 있다. '대화'의 의미를 오해한 채.


시키는 대로만 하는 주입식 교육이 어울릴 환경.

딱 그 시절 전형적 우리나라 아버지의 모습이며

이렇게만 자라난 아이들은 미국인과 토론은커녕

질문하는 것도 주저하거나 용기가 필요하게 된다.


친구처럼 엄마처럼 어른처럼 언니처럼


반면 엄마의 대화방법은 유대인과 비슷했다.

실로 엄마는 나를 낳기 전부터 성경과 탈무드,

정태기 박사(재벌가도 찾던 상담전문가) 등

자녀를 위해 공부하며 노력한 것이 많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둘 다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이셨다.


이렇게 자라면 아이들의 자존감이 건강하다.

어릴 때 어른에게 존중받았으므로, 커서도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존중함이 자연스럽고,

남을 대하는 마음에 비뚤어짐도 없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크게 연연치 않는

이유는 그와 관계없이 내면이 건강하기 때문.


비무장지대


마치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대립한 가운데 살듯

권위에 눌리다 존중에 숨쉬거나, 건강한 신체 중

늘 뭉쳐있는 한쪽 어깨를 가진 것 같았을지도.


모두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으나 어릴 적에는

권위가 숨통을 조일 때 산소호흡기가 엄마였다.


아버지는 최선을 다했다.


것이 아버지에게 최선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어릴 땐 몰랐으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한결같이 성실했다.

감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대단히 성실한 분이라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 인정한 점이 그것이었고

그 부분에, 나는 10000% 아버지를 존경해 왔다.


다만 소통하는 방법을 소화할 수 없으셨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한국의 남자들에게 이러한 어려움이

외국인보다는 많을 수 있다고 조심히 예상해 본다.


유교문화가 한몫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좋은 일이다.

그러나 공경은 '받는' 것이다. 마치 선물과 같이.


선물이란 상대가 마음에서 우러나 주는 것이지

빼앗는 게 아니잖나. 만일 빼앗으면 되레 미움만

받게 된다. 선물 받는 게 아니라 미움을 받는다.


선물하고 싶은 마음은 언제 생길까.


존중받을 때 생긴다. 어른도 아이를, 애도 어른을

존중하는 것 역시 매우 자연스럽고 좋은 일이다.


아이가 어른으로부터 존중받으면 책임감이 늘어

신중해지고 자존감이 더해 마음이 건강히 자란다.

뿐만 아니라 날들이 쌓이면 어른을 존경하게 된다.

그때 어른이 받는 선물이 존경이다.


이 비밀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딱했던 다수의 우리나라 아버지들은 외로웠고,

몰랐다. 자신의 아버지도 그렇게 살았으니까.


인정받는 방법


서운함이나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 대화,

그리고 인정받는 방법을 몰랐다.


인정받고 싶은 만큼 인정받지 못할 때

이성을 잃도록 화를 내는 사람일수록

자존감과 결핍이 극에 달한 사람이다.


자존감은 지금 가족이 아래로 떨군 게 아닌

어릴 때부터 하강하고 있던 존재였을 것이다.

그때는 화낼 상대가 없거나 용기가 없었고,

지금은 내가 '가장'(king)이니 권리가 생긴게다.


말이 안 되지만 말이 되기도 하는 심리랄까...


문제의 해결은 근본부터 보아야 할 텐데

결혼 전 매립된 자존감을, 뒤늦게 만든 새로운

가족으로부터 재건축하려 하니 무너질 수밖에.



영, 혼, 육


사람은 영, 혼, 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눈은 육이다. 그러나 당장 상대의 눈을 바라볼 때

감정을 엿보게 된다. 분노의 눈빛, 간절한 눈빛 등.

눈빛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에게 영혼이 있음을 잘

알려주는 것이겠다. 눈빛은 신체를 말함이 아니니.


어떻게 '눈빛' 만으로 상대의 감정을 느낄 수 있나.

상대와 나에게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영과 혼은

다른데 아무튼 영혼이 눈에 보이지 않다 뿐이지,

인간이 정확히 영혼육으로 이뤄져 있는 게 맞다면


육이 병들 때 병원에서 의사의 도움을 받듯

영혼이 병든 것은 영혼의 치료자에게 도움을 받자.


사람에게 자기 병든 영혼 살려내라고 멱살 잡으면

서로 멱살 잡고 싸우거나 한쪽이 널브러지기 마련.


어쩌다보니 길고 우스꽝스러운 글이 되었는데

글쎄, 나에게 브런치는 여전히 일기장과 같다.


우리가족은 예수님을 믿는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예수님을 제대로,

인격적으로, 조금 더 실제적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종종 기도하지만, 나보다 훨씬 나을 때가

많다고 생각하곤 한다. 아무튼 가족이 다 믿으니,

문제가 생겨도 늘 결국에 예수님이 계시고 성경의

진리와 훈계를 마주하게 되어 '사랑과 용서'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므로, 현재 암에 걸린 엄마가,

"신혼 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하실만큼

요즈음 아버지가 엄마께 왕비대접을 해 주시고,

얼마전의 아버지는 나와 진짜 대화를 하셨으니,


혹 나중에라도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 이걸

읽게될 시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늘의 내용은

다소 '전체적인', '심리적인', '한국적인' 것들의

러프한 집합장소와 같은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당시의 나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이것이다.

아버지의 대화방식이 불합리하게 느껴지더라도
그냥 좀 봐드려라. 듣는다고 죽지는 않지 않냐.
그게 가정의 평화보다 중요하냐. 설사 틀린 걸
듣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하는 훈련을
받는 것이 이 땅을 살며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예수님은 내가 옳아서 구해주셨냐. 겸손하자.
내 자아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어쩌고 저쩌고 할 자아가 없다. 예수가 산다면
다 가능하다. 원수도 사랑하라는데 아버지가
원수는 아니지 않냐.(여기에서 말하는 원수는
내 가족을 ㅈ인 정도의 원수급..) 아버지에게는
내 방식이 힘든 것이다. 큰 죄가 아닌 내용들에
옳고그름을 따지기보다 순종을 배워 성화돼라.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 기도 좀 해라. 엎드려라.


마지막으로, 내게 정기적으로 생각나는 사람 중

J라는 스포츠트레이너가 있다. 탑 연예인들이나

재벌가 등 그를 거친 유명인이 많은 유명인인데

대학생 때 마침, 바로 옆에 앉아 밥을 먹었다.

(같은 식탁을 뜻함) 당시의 나는 특히 잘 모르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는데 이 사람은 어우,

어느정도였냐면, sns를 물어볼 때 내가 부담없이

알려줄 정도였다. 남자로 그랬다는 것은 아니고

사람이 대단했다. 인격이 말이다.


'세상에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 싶게 환하고

밝고 기쁘고 편하고 친화력 탑인, 몸짱이 아닌

정신건강의 원탑이었다. '보나마나 이 사람은

부모님이 훌륭한 인품, 특별한 가정일 것이다'

생각해야 할만큼 인상깊은 인품의 소유자가

식탁에서 했던 말들 중 이런 부분이 있었다.


- 저는요, 어릴 때 학대를 많이 받았습니다.

 많이 맞고 자랐고요, 아버지도 아버지인데

 형이 그렇게 때리더라고요. 얼마나 맞았는지..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듣다 놀랄만했다.

일반적인 수준은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밥을 먹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다른 어른들도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


- 그래서 저에게 '하나님 아버지'라는 게

 처음에는 잘 와닿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을 정말로 만나고 나니까, 이제는

 하나님이 정말 제 아버지가 되셔서요,

 그러고나서 제 삶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그 말이 진실이라는 건 그냥 다 보여졌다.

이 사람이 만난 하나님은 대체 어떠했길래

나조차 가지지 못한 저런 기쁨과 행복함과

반사광 들고 다니듯 밝은 얼굴로 다닐까,

속으로 생각할만큼 세상을 다 가진듯했다.


- 제가 유명인들도 많이 만나보고, 국내

 연예인들이나 S가 재벌가 사람도 자주

 보면서 느끼는 건데요, 행복하지 않아요.

 그사람들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행복하다는 걸 저는 너무 느껴요.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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