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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Sep 24. 2024

절대음감

가짜 말고 진짜

입장 전 주의

1. 절대음감에 대한 컴플렉스 또는 미묘한
입장을 가진 분은 읽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2. 길고 자세할 수 있음을 예고드립니다.

 사람에 따라 지루하거나 재미있을 수 있음.

 미리 말했으니 딴지걸기는 정중히 사양한다.


절대 음감(絕對音感, absolute pitch, perfect pitch)은 기준이 되는 다른 소리의 도움 없이 소리의 높이를 음이름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하나의 소리에 비해 다른 소리가 얼마나 높거나 낮은가 하는 상대적인 음감이다. 이에 대해, 소리 높이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인식 능력을 가지는 경우, 특히 "절대음감"이라고 부른다. - 출처 : 대한민국 위키피디아 (그 페이지의 모든 설명에 동의하는 바는 아니나 정의는 정확하므로 그대로 가져옴)


합격 입장권


영재학교(Moscow Central Music School)에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내가 지은 곡을 외워가서

연주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스꽝스러웠을 듯.

부끄러움을 모른 채 진지하던 나에게 학교 교장은

한 가지만 테스트했다.


그는 나에게 돌아서게 했고, 아무 음이나 눌렀다.


"무슨 음인지 아나요?"

"네, 파."

"이건?"

"도 샾이요."

"이건?"

"아래부터 도, 시 플랫, 레, 파 샾"


교장 선생님과 몇 어른이 자기들끼리 눈빛 교환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를 받아주면서 얘기했다.

현재 실력은 부족하나, 재능을 보고 받아주겠다고.


크면 다르지만 다소 어린아이일수록,

일단 절대음감이 있으면 어느 정도 날로 먹는 걸까.


교수님의 첫 질문


처음 만난 작곡 선생님의 첫 질문은 이러했다.


"너, 악보를 보면 소리 없이도 속으로(뇌로) 이

음정들을 들을 수 있니?"


"네, 가능해요."


선생님의 안심하던 표정이 어렴풋 기억난다.


작곡 선생님은 1년 동안 나에게 시창청음을 직접

지도하셨는데 내게 청음은 듣기 훈련이라기보다는

기억력 훈련에 가깝다. 듣는 즉시 음정을 아는 것에

훈련이나 노력은 필요치 않으나, 연속 10~20개의

음정, 그것도 한음이 아닌 화음의 연속 다발을 듣고

외워서, 즉 아까 들은 것들을 뇌로 기억해 리플레이

시켜 순서대로 말하거나 적는 일은 기억 훈련이다.

이 훈련은 할수록 늘고 안 할수록 줄어들 수는 있다.

음정 말고 숫자 기억으로 대치해도 마찬가지이니까.


시창은 바흐의 3성부 피아노 곡의 한 성부는 부르고

나머지 성부만 피아노로 치는 것을 시키곤 하셨는데

(소프라노 알토 베이스라 3성부라면, 소프라노 내가

부르고 알토 베이스 피아노 치기, 소프라노 베이스를

치고 내가 알토 부르는 식의 123 132 312 뒤집기)

이것도 청음도 1년이 되자 안 해도 된다며 그만두고,

고 2되기 조금 전부터 대학에 그냥 들어오라 하셨다.


제 나이에 간다고 미리 안 갔는데, 나중에 2년 휴학..

그때 말 들을 걸. 그러면 나이에 맞게 졸업했을 텐데.

나중에 베프 된 애도 4~5년, 나보다 먼저 대학 갔고

Pletnev도 이 학교 다니다 결국 일찍 음악원 갔던데

나는 참 그때부터 인생 설계라는 개념이 없었던 듯.

그리고 청음훈련 그만두신 바람에 음은 물론 알아도,

기억력 쇠퇴 아니 원점으로 돌아와 내심 아쉬웠던 적.


일상의 난관


친구와 작은 교회에 방문했다.

귀마개를 차에 두고 와서 당황했는데 참을 만했다.

내 청력은 어릴 때보다 많이 손실되어 20대 평균치.

그런데 교회에 가 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부분

괴로워하지 않는다. 즉, 대중의 청력이 손실된 시대.


강대상 마이크와 반주 볼륨이 거의 80대 20이던데

사운드 엔지니어의 입장, 아니 요리로 가정한다면

고든램지가 신박한 욕을 한껏 해도 될 밸런스였지만

교회의 어떤 소리라도 인내할 운명이므로 잘 견뎠다.


그런데 곧 다른 난관이 찾아왔다.


'어.. 조를 다르게 치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흔히 겪어오던 일이다.


음 틀렸어


- 응?

- 아! 음(音) 이거 아니에요. 조가 달라요.

- 그래?

- 내림 나장조인데 지금 다장조잖아요.

- 그러면 네가 시작해. 우리가 따라 할게.


우리 집 가정예배에서 늘 찬송가 음정을 잡았지만

자라나면서 '이 짓' 안 하는 배려(?)를 깨달아갔다.


- 네가 음 잡아야지.

- 그냥 아무렇게나 부르세요.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클라리넷 포기


목관악기 중 클라리넷 소리를 가장 좋아해서

두어 번 레슨을 받아 보았는데, 아랫입술이

아프리카 사람처럼 마구 불어나는 것이었다.


- 입술이 왜 이러지!? 아, 나랑 안 맞나...


더 난감한 문제는, 악보와 음정이 달랐다.


- 아, 헷갈려.. Mi치겠네...


입술도 부르트고 악보도 헷갈려 그만뒀다.

클라리넷은 (trans)조 악기이다.



오케스트라 총보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누른 그 음정 소리가 난다.

하지만 전혀 다른 음정을 내는 악기들도 꽤 많다.


예로, B flat 클라리넷이 악보에 적힌 '도'를 불면

실제 들리는 음은 '시 플랫'이다. 헷갈리게 된다.


절대음감 아닌 사람들은 어차피 음을 모르다 보니

그놈이 그놈(?) 일 수 있지만,  입장이 다르다.


작곡가는 오케스트라 악보를 쓸 줄 알아야 하기에

그 부분도 훈련받아 transposition - 실시간 뇌로

이조를 한다지만, 본능적으로 편한 방법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도움이 좀 된 것은 한국식 교육이었다.


한국은 상대음감처럼 교육한다


지금 어떤지 모르나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적 분명

계이름을 상대음감의 방식으로 부르도록 배웠다.


도레미파솔라시도는 음이름이다.

도여야 도, 레여야 레인 것인데, 한국 시스템에서는

노래가 사장조라면, 사장조의 으뜸음이 '솔'이므로

솔이 도가 되었으니 이제부터 솔을 도라 부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럼 이제 도미노처럼 다 밀린다.

도 = 솔
레 = 라
미 = 시


절대음감의 귀에, 솔은 솔이고 도는 도로 들린다.

그러나 '사장조'라는 위 논리 하에 으뜸음이 솔임을

인정한다. 으뜸음은 다른 표현으로 그 조의 '도'이다.


우리 집은 장동(C), 친구집은 장동(F).

도장동에 나의 진짜 엄마가 살지만 파장동에 갔을 때

나도 잠시 친구엄마께 "엄마"라고 부르는 방식이랄까.


어릴 때 한국에서 이렇게 계이름 부르도록 배웠는데

러시아 음악학교에 갔더니 오직 우리 엄마만 엄마로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머리로는 음정을 모두 알아도

달리 습관이 되었으므로 시창 수업 시 약간 집중했다.

원래 집중 따위 없이 바로 부를 수 있는데(다 아니까)

습관 때문에 실수할까 봐 은근 신경 써 부르곤 했다.


러시아에 있다 독일 음대로 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 친구도 절대음감) 시창청음과 이론 대학 수업이

러시아에서의 예고 수준보다 쉬워 지겹다는 것이다.

급기야 교수님이, 넌 산책 다녀와라 한 적도 있다고..

그런데 딱 한 가지 너무 헷갈리는 것이 있다고 했다.

- 그게 뭔데??
- 노래할 때, 한국이랑 러시아는 똑같이 도레미
 하잖아. 그런데 독일은 알파벳으로 해. 헷갈려.
 음을 알면 뭐 해, 입에 계이름이 안 붙는데...


하긴, 미국도 계이름을 CDEFGABC로 부르지.

'도레미'는 이탈리아, 러시아, 한국 등인 것 같다.


왜 한 곡도.. 악보대로...


작은 교회에서의 반주자는 조를 조금 낮춰줌으로

편히 부를 수 있게 배려하는 것 같아 그런가 했다.


그런데 당혹스럽게도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곡은

원래 악보가 f minor인데 무려 반음 높인 fis-moll

즉 f sharp minor로 반주하시는 것이었다.

- 뭐, 뭐지... 왜 조가 계속...!
  배려가 아니고 그냥 마음대로 치는 거였..
- 그러니까ㅎㅎㅎ 어휴, 힘들어~~
- 나도 힘드네...


미묘한 웃음을 교환하며 공감이 가능했던 유일한

'동지'. 과하게 표현하면 98명의 프랑스인 가운데

두 한국인의 한국어 대화 같은 절대음감만의 공감.



딩~ 맞춰 봐, 무슨 음이야?


다시 떠올려도 내면의 욕이 나올 뻔했던 에피소드.


Virsaladze라는 피아니스트이자 저명한 교수님이

예뻐하시는 제자의 생일 축하로 저녁 사주시던 날,

생뚱맞지만 고맙게도 그 제자가 나도 데려가 주어

얼결에 그 클래스 제자들과 내가 둘러앉게 되었다.


그 교수님 클래스는 막말로 아무나 안 받아준달까.

소위 '센 클래스' 중 하나. Virsaladze는 6~7개의

언어까지 구사하여 자부심이 꽤 높은 인물이었다.

조금은 부담스러운 자리였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 당신은 누구 클래스 제자이죠?


내 교수님 성함을 듣더니 '거기라면 인정' 표정

분명히 보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I형내가

취할 태도는, 최대한 조용히만 있다 나오기였다.

나를 끼워준 한국인 친구, 원래 친했던 일본친구와

먹으며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데, 앞의 폴란드 애가

절대음감 이야기를 속사포처럼 늘어놓기 시작했다.


Yuho(일본친구) 속삭이듯 물어왔다.


- 너 절대음감이지?

- 응. 너도?

- 응, 나도.

- 그렇구나~


뭐, 역시 그렇군 하고 밥을 먹는데 갑자기...



너!! 절대음감이야?
절대음감이라고?!?!


왜 하필  가리키는 건데... 폴란드 녀석 질문에

열댓 학생과 '교수님' 시선이 전부 나에게 쏠렸다.


당황한 채 작게 "응" 답하자, 정말 음이 들리냐,

너 진짜 절대음감 맞냐 정신없이 몰아붙이더니



자, 이 잔을 칠 테니까 맞춰봐!
딩~~~~ 이거 무슨 음이야!?!?


하.. 제일 싫어하는 행동. 심지어 이런 자리에서...

딱 이렇게 주목받는 것 극혐인데 청음 시험 보냐.


그 애는 포크로 자신의 와인잔을 '뎅~'하고 치며

날 쳐다보았다. 모두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와... 진짜.....

내가  여기에서 dictation-청음을 해야 하는지,

지가 뭐라고 증명해 줘야 하는지는 모르겠다만ㅎㅎ

pp (피아니시모 : 매우 여리게)로 음정을 말했다.


- 뭐라고? 안 들려. 뭐라고????


ㅁㅊㄴ... 속으로 욕하는데, 참 고맙게도 Yuho가


- 맞아.


맞췄다고 말하며 내가 말한 음정을 대신 전달했다.


- 맞아? 오, 맞춘 거야? 듣자마자 바로 아네?

 난 모르는데!


E인 폴란드 남자애의 호기심이 곧바로 풀리며

답이 확인되자 유심히 지켜보던 교수님 및 전원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하.....


재미있는 것은, 이 일 이후 Yuho와 내가 저절로

서로를 더욱 친밀하고 가깝게 느꼈다는 점이다.



어릴 때 절대음감인지
어떻게 구분하는데?


언젠가의 룸메가 해온 질문이다.


- 악보를 배웠을 때에는 악보와 음정이 같은지

 아닌지 알 수 있지만, 아직 악보도 모르는 애가

 절대음감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분하는데?


- 알 수 있지.


- 어떻게?


- 나의 경우, 미취학 아동일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본 적 있거든. 그때 흑인들이 흑인영가를

 불렀는데 곡 하나가 아주 마음에 들었어. 제목도

 가사도 전혀 모르지만 그 음정은 성인 돼서까지도

 기억을 했지. 조는 c minor. 근데 광림교회 한인

 성가대에서 어느 날 그 곡을 부른 거야! 진짜 놀람.

 그때 제목도 알게 됐지. 물론 c minor 맞더라.


- 아~ 그러니까 조 명칭이나 계이름을 몰라도..


- 아이가 기억하는 음을 불러보게 하면 알 수 있지.



동질감


타지에서 만난 한국인처럼, 절대음감끼리는 대충

서로 알아보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관상 말고,

같이 연주를 해 보거나 지내다 보면 알 수도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그때 와인잔 두들긴 폴란드 애.

피아노 치는 것을 한 번 봤는데 옥구슬 굴러가듯이

잘 쳤고, 우리학교에, 폴란드에서 후원받아 유학 온

비르살랃제 클래스 정도이면 당연 절대음감이겠지

싶을 수 있는데 막상 자기는 아니라니 당황. 그애가

현악기를 안 하고 건반악기를 하는 것은 유리한 일.


어떤 경우에는, 굳이 서로 확인해 보지 않아도

무조건 절대음감이다 싶은 경우도 꽤 많이 있다.


절대음감과 음악성이 완전히는 아니나 어느 정도

분명 비례한다는 것도 아주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다만, 비율적으로 노래 잘하는 사람 중 상대음감에

음악성 뛰어나고 끼도 많은 사람은 좀 더 많아 보임.

(그 카테고리에 반드시 우리 엄마를 포함한다..ㅎㅎ)


어쨌든, 우리(절대음감)는 대부분 동질감을 느낀다.

가깝게 느껴지고, 서로 소통이나 이해가 더욱 쉽다.

사람과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어느 정도 그러하다.



자칭 절대음감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은 적 있다.

- 나도 원래 절대음감이었는데 사라졌어.
- 네..???
- 절대음감이 있었는데, 안 쓰니까 없어졌어.

내가 고든램지라면 욕을.. 아닙.. 죄송합..

참고로 저 말은 나에게 이렇게 들린다.


- 나도 원래 옛날엔 여자였는데 지금 남자야.

- 네??

- 여자였는데, 바지만 입다 보니 남자가 됐어.


절대음감은 타고나며 말 그대로 절대적이다.

절대음감들에게 물어보라. 무슨 노력했냐고.

노력해서 얻었다면 절대가 아닐 가능성 높다.

데려와서 테스트 해 보면 착각이었을 가능성..


흰건반은 맞추는데 검은건반은 못 맞추는 것은

absolute가 아니다. 열 번 중 아홉 번만 맞추고

한 번은 엉뚱한 음을 말한다면 '절대'가 아니다.

오늘은 맞추고 내일은 틀려도 '절대'가 아니다.


오래전 TV에서 유명 여가수에게 물 잔 여러 개

딩딩딩 치면서 음을 맞춰보라고 하는 것을 봤다.

그녀는 여러 개 중 여러 개를 틀렸다. 엉터리인데

방송인들이 "우와~! 우와~~!" 하고 반응하더니,

자막에 "절대음감 OOO" 이런 식으로 나오더라.


보기도 창피해 채널을 돌려버렸던 기억이 어렴풋.

가수도 진행자도 모르니, 벌거숭이 임금님 의상이

멋지다며 손뼉 쳐주고 흐뭇해하는 우화 같은 장면.


절대음감이 아니면서 절대음감이라고 우기는

경우가 간혹 있더라. 궁금하다. 왜일까?

음감에 컴플렉스가 있어 믿고 싶은 것일까 혹은

절대음감이 아니라서, 구별 못 해 한 착각일까.



신의 영역


음을 맞추는 것이 신의 영역이라는 뜻이 아니다.

재능의 종류를 탑재시키는 영역이 신의 것이란 뜻.


나는 '노력 없이' 음정을 분별해 왔다. 10살때까지

'절대음감'이라는 단어도 모르는 집에서 지내왔고

동네 합창단 지휘자가, 쉬는 시간에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이거 뭔지 아는 사람~?"하길래 음을 전부

맞췄더니 그분이 그 용어를 알려주신 것뿐이었다.


가정예배 때 가족들이 나와 분명 다르기는 했지만

별 생각이 없었으므로, 지휘자 선생님이 말해주기

직전까지는 무심코 '모든 사람이 나와 같다'라고

인식해 왔기에 조금 당황했다. 왜 그렇게 신나게

맞췄냐고? 친구들도 다 아니까 빨리 맞추기 게임

같이 느꼈던 것 같다. 심심풀이 땅콩 같기도 했고.



언니는 이게 무슨 조인지 다 들려..?


처음 모스크바에 가서 함께 살던 유학생 룸메와

가정예배를 드릴 때마다 악기는 없이 늘 동시에

같은 음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찬송가 악보대로

음정을 스스로 잡을 줄 알아, 서로 편리했던 것.


한창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에 매료되던 때,

A4용지 한 장당 알파벳 하나씩 적어서 벽에 딱

붙여놓고는 그 곡을 듣는데 룸메가 들어왔다.


- 아, 이 부분 좋지 않아? 아~ 진짜 잘 지었다!

 

나는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어도 '이 맥치킨 진짜

맛있지 않아? 씹을 때 겉은 바삭하고' 이랬달까.


- 지금! B flat minor, 조 또 바뀌네, 여기!

 C major, a minor!! 이 부분도 좋지!!???


크게 기뻐하며 공감을 기다리고 있는데 룸메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왜 그러지...?

대답도 안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을 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 언니.. 언니는 이 음악 들으면서 무슨 조인지

 전부 다 들려..?


- 어! 너도 들리잖아. 당연히 들리.. 안.. 들려..?


깜짝 놀라 당황했다.


- 나는.. 이렇게 빨리, 복잡하면.. 다는 안 들려..


그 뒤 다시는 음에 대해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아직도 그 친구의 음감은 나에게 미스테릭한데

실례가 될까 봐 더 묻지 않아 거기에서 끝났다.


어쩌면 가정예배에서도, 내 음정을 들으며 줄곧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시작해, 나 혼자 그 애도

절대음감이겠지 착각했을지 모르고. 그러니까

그때까지도 난 여전히 자기중심적이었던 거다.

다 나 같은 줄 아는 어린 생각 또는 착각 말이다.



제발 그만 좀 해!


- 이건 미~~ 미 맞지?

- 어, 그러네..

- 라샾~~ 라샾이랑 시 막 왔다 갔다 한다. 그치?

- 알면서 자꾸 확인해... 물어보지 마.


베를린에 살던 친구가 나를 동물원에 데리고 가서

들리는 새소리의 음정을 모두 다 맞추고자 하였다.


- B플랫~ 아, 저건 너무 높아서 어려운데. 시?

 시플랫?? 도미도미 파파파샾, 맞아? 응? 말해 봐.


- 어, 맞는데.. 이제 그만 쉬자..


- 도도도샾~ 도플랫, 아니 시! 솔샾 파파파파!!!


- 그만하라고! 새소리는 최대한 새소리로 듣자!

 너무 이러면 싫어해. 안 그러려 노력한다고.

 청음 하러 동물원 왔냐. 제발 좀 쉬자!!!


- 알았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이해는 하는데.. 미안했다. 역정내서 ㅎㅎ



전동칫솔 음정


폴란드에서 여럿이 잠시 머문 숙소에서 한

연주자가 전동칫솔로 이를 닦기 시작했다.


< 지이이이이이잉~~~~~ >

- 미~~~~ 이거 '미'네.
- 그러네요. '미' 맞네요.


전동칫솔로 서로의 음감을 확인하듯 ㅎㅎㅎ

혹은 같은 처지(?)끼리 공감 한 번 더 하듯,

자기 칫솔 음정 말하던 연주자가 생각난다.


자랑도 아니고, 별 것도 아닌, 일상인 거다.

라면 보고 '신라면이네', '풀무원이네' 하는

그런 것과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Herz


독일어 아니고 '헤르츠' - 주파수.


피아노와 달리 현악기는 낼 수 있는 음의 영역이

조금 더 세밀하다. 내가 잠시 모스크바 영재학교

바이올린 선생님에게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을 때

음을 맞게 그었는데 나에게 다른 것을 요구했다.

- 맞아요, 그 음도 맞긴 맞지만
- 네
- 한 음에도 여러 높낮이가 있는 거 알죠?
- 네, 알죠
- 아~주 조금만 더 높여 내겠어요?
  단조 아니고 장조이니까.
- 아..! 이렇게요?
- 바로 그거예요! 좋아요, 다 그렇게 내요.


학교 선생님 역시 똑똑하네, 마음에 들던

기억이 난다. 내가 낸 음정은 E major의 G#.

그냥, 조율 기준 A 헤르츠 숫자로 표현하자면

내가 440~441 정도를 냈더니 442로 내란 것.

그 얘기를 듣고 즉시 442로 정확히 내는 그것.

절대음감들의 자연스러운 소통 중 하나이다.


와인잔을 치던 폴란드 애에게 피아노가 편한 이유.

피아노는 조율사가 주파수를 한음한음 맞춰 주지만

현악기는 본인이 손가락을 눌러 주파수를 맞추니까.


이 주파수를 가지고 노는 사람이 Lozakovich 이다.

실황을 직접 들어보면 같은 '도레미'도 필요에 따라,

약간 낮은 도나 조금 높은 도 또는 중간의 도 음정을

색까지 입혀 다이내믹과 함께 소리 내는 대가의 기운.


그 테크닉은 먼저, '주파수를 세밀히 잘 구별해 내는

좋은 귀'가 있어야 그다음에 연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귀를 가진 청중은 듣는 중 희열을 느끼는 거고.



음이 안 들리면 어떻게 살까?


- 아.. 아무리 절대음감이 일상에서 힘든 게 있어도

 안 들리는 것보다는 나아. 모르는 것보다 훨씬 나아.

 음을 들었는데 그게 무슨 음인지 모르면 어떻게 해?

 어떻게 살아..?! 나는 절대 못 살 것 같아. 안 들리면

 음악을 '절대' 전공 안 했을 거야. 상상 할 수 없다.


- 난, 내가 듣고 아는 건 당연히 괜찮은데, 남자가

 나랑 똑같은 건 싫어. 상대는 좀 몰라도 되잖아.

 연습하는데 막 다 듣고 알고 이러면 난 별로야.


-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그렇더라도

 상대가 절대음감 아니면 어떻게 소통하지 싶어.

 음을 모르는데.. 내겐 들리는데 쟤는 안 들리고..

 나한테는 음악이 그냥 인생인데... 제일 커다란

 공감비율이 그거라서. 음정을 모르는데 나를

 어떻게 알겠냐, 그 정도로 다가왔던 것 같아.


- 어머, 웬일이야~ 절대음감 만나야겠다~ㅋㅋ


- 근데 또 생각해 보면, 내 동생은 절대는 아니고

 상대음감 정도거든. 우리처럼 100% 늘 음정을

 다 알고 맞추지는 못 해. 근데 일단 부르면 엄청

 잘 부르고 음정 절대 하나도 안 틀린단 말이야.

 그 정도 까지라면.. 어쩌면... 괜찮을 수도...


- 언니 동생은 얼굴도 잘 생겼는데 노래도 잘해?


- 그러네 ㅋㅋㅋㅋ



영역의 차이일 뿐


노력해서 알아내는 것은 절대음감이 아니며

노력하지 않고 신에게서 거저 받은 것들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생각한다. 고마운 것일 뿐.




같은 남자라도 성격이 다르고

같은 한국인이라도 다 다르듯


절대음감에 미묘한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아무튼 절대음감이란 음을 그냥 아는 그거고


나처럼 '음정의 색채' 또는 '빛깔'에 민감해서

강하기도, 동시에 그에 따라 약하기도 한 경우

음정과 함께 음색(color)... 적다 보니 이거 좀

ㅂㅌ 같아서 이만 적도록 하겠다.ㅋㅋ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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