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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Nov 23. 2024

조기유학이 낳은 양면성

feat.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

길다. 시간 없으면 뒤로 가자.
공감 없이 하트를 남발하지 말자.


나라별로 따로 있는 자아


늦은 밤 찾아온 언니와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났는데

언니 뒤에 앉아 짧은 키스를 하는 커플을 보게 됐다.


불편했다.  여전히, 한국인의 키스를 직접 보는 게.

외국은 괜찮은데. (보기 훈훈하다는 뜻은 아니다)


러시아 에스컬레이터에서는 내 바로 앞에서 그래

그런가 보다 생각이 들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여전 적응이 안 된 것이다. 나의 단련된 무심함

외국인 또는  인종에게만 적용된 것이 틀림없다.


가위 바위 보


- 누나, 우리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이 뽀뽀하기

 할래?!


들어본 중 가장 황당한 가위 바위 보의 제안.

나는 대학에 입학한 고딩, 상대는 중학생이었다.

참 착한 아이였는데 미국학교에서 여자친구를

만나더니 급변하여 부모의 걱정거리가 되었던.


뭐라고 대답했냐고? 당연히 싫다고 거절했다.

그 애는 '에이, 역시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다.

알면서 왜 물어보지? 무려 야외 예배 시간에.

그땐 무시하느라 틈이 없었는데 나중에 룸메가

의문을 제기했다.


- 그런데, 가위바위보 하면 누군가는 지잖아.

 한 명은 무조건 지니까.. 누가 이겨도 결론은

 같은 거 아니야?

- 듣고 보니 그러네. 어이없네...

 근데 안타깝지. 자애 만난 뒤 버렸어...

- 그러게.. 걔 처음에  괜찮았는데. 아깝지.


엄격한 아버지


- 걔가 그런 게 꼭 여자친구 때문만은 아니야.


영국학교에 다니던 친구가 내게 알려주었다.


- 무슨 뜻이야?

- 걔 여친이 그런 애인 건 맞는데... OO이 집에

 가 봤어?

- 응, 한 번. 부모님들이 초대해서 다 같이 갔어.

- 걔네 아빠 어떤지 알아?

- OO이 아빠? 사람 좋으시잖아. 내 룸메는 그분

 멋있다고 엄청나게 좋아해. 되게 다정하시던데.

- 여자애들한테만 그런 거야. 걔네 아빠, 집에서

 진짜 무서워. 저번에 S, J랑 셋이 집에서 게임을

 했나 봐. 그걸 보자마자 어떻게 했는 줄 알아?

- 어떻게 했는데?

- 문제집을 바닥으로 확! 세게 집어 던지면서

 "풀어!!!!!" 그랬대.

- 정말?!!

- 응. 남자들만 있으면 걔네 아빠 장난 아니야.

 OO이 엄청 맞고 지낼 걸. 근데 소용 없어.

 걔네 집은 그냥 군대야.

- 아... 그래서 그랬구나....

- 뭐가?

- 걔네 엄마가 저번에 날 붙잡고 글쎄 부탁을

 하시더라고. OO이가 누구의 말도 안 듣는데,

 나는 따르는 것 같으니 얘기 좀 잘 해달라고..

 도와달라는 식으로 막 손 붙잡고.. 너무 불쌍해

 보여서 저번에 OO이한테 이멜 쓰고 생명의 삶

 큐티 책 선물로 줬더니, 그거 읽느라 머리카락

 500개 빠졌다며 답메일 오고 뭐 그랬거든.


평안한 자녀의 Key


그 애는 한국식 가정교육과 엄격한 군인 아버지

밑에서 받아온 어떤 억압을, 미국 문화에 노출된

동시에 잘못된 방향으로 분출해 '내놓은 자식'이

돼버렸고, 외교관 자녀 중 가장 안타깝게 되었다.


물론 둘째 아들은 형과 달리 바르게 자라긴 했다.

그러나 상담심리학과 치유를 통해 수많은 가정을

회복시킨 전문가의 강의를 어릴 때부터 엄마덕에

들어온 나는 알고 있다. 첫째는 아버지 책임인 걸.


엄격하기만 한 한국형 아버지가 본의 아니게 자기

아들을 망치는 데에 일조한 경우는 여러 번 보았다.

엄하게 키우는 것은 필요하나, 사랑과 친밀감이 그

바탕이 되며, 아버지가 따뜻할수록 자녀가 오히려

성품과 실력에 있어 둘 다 잘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무엇보다 그런 人은, 분노 없이도 유능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이런 이상적 경우가 더욱 드물다.

뒤늦게 깨닫고 배워 실천 후 회복되는 경우는 많다.

테마가 다른 곳으로 새는듯 하니 이것도 넘어가자.


맞춤형 인간


어쩌면 나는 유난히 맞춤형 인간 것도 같았다.

상대가 살아온 환경상 내면이 한국적이지 않다,

10 어린애가 나에게 ''라도 불러도 반감이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자란 3살 차이 한국인이 동의 없이

어미를 흐린다면 내가 반응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관계의 척도에 따라 차별이 심하지만 대개 그러하다.


싸가지 없는 친구들


최측근 중 소위 싸가지가 없는 친구가 두 명 있었다.

둘 다 초딩 저학년 때부터 러시아와 유럽, 미국 등에

이리저리 살게 됐고, 한국에 대한 환상까지 가졌던.

성별만 달랐지 둘의 공통점은 한 인물처럼 많았는데

예를 들면 나에게 ''라고 한다든가 전화 예의가 영

없다든가 한국 어른을 만나도 어딘가 어색한 태도

전체적으로 '예의 없다'라고 인식되는 애들이었다.


기본적으로는 가정교육의 부재를 짚지 않을 순 없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이 애들이 어쨌든 나와 오래

친하게 지내기는 했다는 사실이다. 종종 싸가지 없다

인식은 되었지만 난 맞춤형 인간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둘에게만은 나도 날선 검과 같은 면을 나타내었고

그들에게 난 한편 가장 친하나 가장 어려운 人이었다.


그들의 버릇없는 점을 내가 좋아할 리는 없다. 게다가

예의 없는 행동은 나에게 극혐이다. 다만, 한국적이지

않은 면이, 나로 하여금 저절로 양해하게 한 것이다.


외국 생존 가능 유형


그렇다면 이 두 명이 외국인들과는 어떻게 지냈을까.

잘 지냈다. 물론 가끔 토로하는 외국인도 있긴 했다.

"난 그녀의 음악성을 아주 높이 평가해. 매우 훌륭해.

 하지만 사람으로서는 아니야. 난 정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학교 사무가 나에게 심정을

토로했을 때 미소만 지을 수 밖에 없던 게 생각난다.


사무가 만일 한국인이었다면, 저러고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인간대 인간으로서'만

생각하고 딱 그만큼의 입장과 감정만 토로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튼 결론은, 친구의 인격이나 예의범절이

어떻건 비례적으로 한국보다 외국인들과 안전한 것.


그래서인지 그들은 지금도 외국에 거주한다. 차라리

외국에서 외국인들과 일해야 본인 커리어 및 평판에

타격 올 확률이 낮아질 것이다. 한국에 안 오는 것이

낫다. 나처럼 맞춤형 인간이 되지 않는 한 말이다.


대학생 때 화장 안 했는데 사진 보니 정말 하얗긴 한가. 신기하네

위는 파일 찾다 쏟아져 나온 옛날 사진 중 하나로,

알고보니(?) 나는 스위스 심사위원의 팔짱을, 독일

심사위원은 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의식도 안 됐다.

그러나 만일 한국인 심사위원이 사진 찍자고 하면서

 팔짱을 낀다면 이 아저씨 뭐 하는가 싶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문화의 차이는 그간 게 여러 자아를

제공해 왔고, 그래서 한국어, 영어, 러시아어로 각각

MBTI 문답을 작성할 때 큰 틀은 같아도 어느 정도의

수치에 있어서는 차이가 존재하게 된 것이라는 결론.


러시아 택시에서는 능글맞은 놈도 넘길 수 있지만

한국 택시에서 그런다면 공포심을 느낄 것 같은 건

한국에서의 자아가 10대에서 멈춘 뒤 공백을 갖고

성인이 되어 점프해 돌아왔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이 든다고 해서 다 자연스러워지는 건 아니더라.


그 옷을 못 입는 이유


러시아는.. .. 최근 새삼 다시 느낀 것이지만....

다르긴 다르구나 싶었다. 내가 한국화 됐을 수도.

계산대 직원 두 명의 차림에 당혹스러웠다.

나는 여자다 ㅋㅋㅋ 여자인데도 놀랐다 ㅋㅋ


과연 옷인지 속옷인지 정의 내릴 수 없으나, 절대

한국에서 입을 수 없고 내 평생 입지 못할 뭔가

아무렇지 않게 입고 대화하던 순수했던 그녀들...

마치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느라 나름 노력했지.

맞춤형 인간으로 사는 것도 가끔 난이도가 있다.

이건 무슨 벌거숭이 임금님 안데르센 체험판인가.

나올 때 보니 마네킹이 (속)옷을 착용했더라.


러시아에 살 때, 또는 러시아에서 유럽에 오갈 때

입었던 옷들을 못 입는 이유는, 지금이야 어차피

옷이 안 맞아서이지만, 조금 과한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외국에서는 그런 생각이

든 적 없으니 입은 것인데 한국에 살다가 꺼내보니

그때와 느낌이 너무 달랐다. 내가 한 옷을 입고

다녔을 리 없는데 말이다. 한국화 된 게 분명하다.


하극상 또는 꼰대라떼


가장 큰 차이로는 역시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겠다.

러시아는 반말과 존댓말의 차이가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른 기준을 가졌지만 아무튼 확연히 존재해

미국의 느낌과는 굉장히 다르다. 언어로부터 오는

문화는 매우 큰 방향을 좌우한다. 직장에서 상사의

이름을 부르냐, 직급에 님을 붙여 부르냐는 다르다.

러시아는 호칭에 있어서 아주 독특한 법을 가졌다.


한국어에 능통한 러시아 지인이 MBC 및 대기업에

근무하다 나중에 다 그만두고 이런 식으로 말했다.

한국 회사와 한국 남자들, 그 상하관계의 문화를

자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대하는 것도

어처구니 없고 동등하게 대하지 않아 때려쳤다고.


그리고 미묘하게도, 그 러시아 지인을 두고 말하던

그 대기업 관련 한국인이 나에게 한 말도 기억한다.

어이가 없다고. 겸손함은 찾아볼 수도 없고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잘났다는 듯 그런 태도이더라고.


이렇게 차이가 있으니 내가 맞춤형일 수 밖에..ㅎㅎ


낯선 사람을 대하는 태도


아무튼 나를 돌아보자, 명확히 국내와 외국에서의

차이점이 비례했다. 유럽의 호스텔에서 체크인 시

한 미국여자가 거대한 배낭을 멘 채 체킨 중이었다.

나는 캐리어를 끄는 한국인이고, 미국인들은 대개

배낭인 것을 알긴 하지만 막상 보고 입을 떡 벌리다

이렇게 말했다.


" Isn't it too heavy for you? "


나는 영알못이지만 귀 때문에 발음만 바람직한데

그래서인지 체킨 맡던 직원이 엉뚱한 대답을 했다.

너는 어째서 영어를 그렇게 잘 하냐고 ㅋㅋㅋㅋㅋ

그뒤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ㅋㅋ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내가 낯선 이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는 그것.


요새 생각을 해 보았는데, 한국이었다면 같은 상황

속에서 내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을까, 에

아니오 로 답했다.(내면의 상상팀이) 왜일까.


D vs R


최근 사정상 남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다.

예배는 참석해야겠고 최대한 눈에 띄진 말아야겠고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말아야겠으며 끝나자 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는 순서가 잡혀져 있었다.


예배 후 교회를 빠져 나가는데 출구에서 교역자들이

밝은 미소와 상냥한 목소리로 나에게 인사하는 것을

절대 쳐다보지도 않고 몰래 뭐라도 훔쳤다 도망치듯

혹은 ㄱ무시하듯 투명인간이 되어 외면하고 나왔다.

왜였을까. 자신이 훌륭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스크바에서 잠시 다니던 국제교회는 미국 침례교

흐름의 예배였는데 그냥 참석하는 자체는 꽤 편했다.

다만 문화상 중간에 서로 돌아다니며 인사와 안부를

묻는 시간이 짧게 존재하며, 처음 오면 지가 알아서

손 들고 일어나 백여 명에게 소개인사를 해야 한달까.


우리나라는 대체로 어색하고 수줍게 손을 반만 들면

사람이 찾아와서 안내해 주거나 끝나고 모이는 방식.

미국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문화권 아니겠는가.

1시간 동안만 그 좁은 미국맛 문화권에 진입했을 때

나는 일어나 대충 인사를 했고, 한때 반주도 맡았다.

이것은 마치, 운전의 D와 R의 차이와도 같은 것인가.


친구의 나이


수 년간 친하게 지내던 대사관 관계자 영국인 부부의

나이를 알게된 건 친구가 된 지 5년도 더 지나서였다.

그 집에서 대화를 하다가 문득, 오직 그날만 내가 참

한국인다운 질문을 두 개나 했는데 나이와 혈액형을

물어본 것이다. ㅋㅋ 흥미로운 얼굴로 말해줬지ㅋㅋ

그때 알았다.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네. 내 친구인데.


외국인과는 그것이 된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외국인

에게는 외국인의 자세로 적용이 되기에 그 부부를

친구로 인식하지, 어르신들로 인식하지는 않게 되고.


- 내가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었어.

- 누구?

- 우리 일본에서 유명했던 가수야, 나이 많은.

- 아.. 아빠 친군가? 너네 아빠 아나운서라며.

- 그렇긴 한데, 내 친구였어. 그런데 세상을 떠났지.


듣자 하니 아빠보다 가수 나이가 많은 것 같았다.

7살 어린 내 일본친구는 그래서 나를 대할 때에도

연장자의 느낌으로 인식하던 순간이 전혀 없었고

그럼 나도 외국인 마인드가 적용되니 동등해졌다.


멘델스존은 소년 시절, 노인 괴테와 우정을 쌓았다.

나도 초딩 중딩 때, 20~50대 어른들과 교회에서 잘

놀거나 스스럼없이 대하는 편이었다. 고딩 때부터는

초딩과 스스럼없는 대화가 이루어졌고, 대학원생 땐

아예 서로 진지하게 친구로 인식하는 초딩이 둘이나

있었다. 다만 한 명은 러시아인, 한 명은 러시아화 된

한국인이었다는 점. 완전히 한국식 교육을 받았다면

초딩이 대학원생을 친구로 생각하기에 무리가 있지.


소위 '위 아래' 문화는 일제시대에 들어왔다 들었다.

본래 조선시대에는 호칭도 그렇고 뭔가 글을 읽은 적

있는데 설명할 만큼 기억나진 않으나 그런 게 있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거의 전부라 할 만큼 언어에서 오는

존중의 표시가 막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웃긴 건

극존칭을 해도 속으로 무시하는 것이 가능하며, 서로

반말을 하더라도 존중하는 것이 불가한 것은 아닌 점.


그러나 역시, 한국에서 한국인과 한국어로는,

도저히 배제하거나 무시할 수 없다. 문화인 것이다.


어느 나라 사람이야?


미국은 love 단어를 자주 남발할 수 있는 나라이다.

부모님을 따라와 미국학교에 다니던 남자애들 중에

착한 소년이, 수련회 강사님이 시키는 대로 옆을

보며 그 말을 따라 인사하고 있었다. 옆은 남자였고

뒤를 돌아보더니 나에게도 똑같이 웃으며 말해왔다.


" 사랑합니다~ "


나는 조금 당황했다. 물론 강사가 시킨 인사라지만

굳이 뒤를 돌아 나에게까지 실천해야 했나, 저 애는

정말 속이 완전 미국인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됐다.


한국말로 외국인이 말했거나 외국어로 외국인이

같은 말을 한다면, 나는 아마 당황하지 않았을 것.


다만 이 세상에는, 겉은 한국인이지만 속은 외국인

그 잡채인 인물이 많다는 함정과, 나 같은 경우에는

이도저도 아닌 매우 미묘한 문화의 집합체 같은 점.


"저한테 이제 반말 하지 마세요" 내가 보낸 답에,

반박 또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이메일이 다시

도착했는데 읽다가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글에는

'' 대신 '현성님'이라는 호칭이 들어가 있었다....

상대는 미국 시민권자인 교포였다. 한국말을 잘 해

나도 모르게 한국인으로 대하다, 아니란 걸 깨달음..


- 너는 네가 어느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해?

-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


미국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브라질, 중국 등을

오가다 러시아에 왔던 외교관 자녀의 대답이었다.


그애는 나보다 2살 어렸는데 초기에는 호칭을 '너'

또는 내 이름을 넣어 문장을 완성하기도 하다가, 곧

한국 형에게 빡센 가르침을 받고 '누나'로 굳혔다.


한국인 vs 미국인


언젠가 한국의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만난 주인(?)

생각이 났다. 굉장히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는데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한 문장을 온전히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얼굴도 눈도 깜빡이며 장애라 할 수

있을 만큼, 말로만 듣던 ''이라고 누가 귀띔했다.

(한국어를 못 하는 게 아니라 말 도중에 계속 반응)


그날 함춘호 기타리스트도 오셔서 녹음하시는 것

보다가 내 순서는 아직이라 잠시 복도에 나왔는데

그 주인 분이 다른 인물과 대화 중이었다. 그리고

나와 내 동생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입을 벌렸다.


- 뭐야, 영어 그냥 미국인인데? 교포였나 봐.

- 어, 그런가보네, 둘 다. 근데... 말을..!

- 그러니까..!!!


영어로 말할 때는 틱 장애가 단 한 번도 없었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나와 한국어로 소통할 때 보인

겸손함, 수줍음, 부족함, 어색함 따위가 증발됐다.

다시 말하지만 그의 한국어 자체는 한국인과 같아

교포인 줄 몰랐고, 오직 틱 증상만 장애물이었다.


긴 영어대화 시간동안 눈 깜박임도 표정의 변화도

없이 세상 편안해 보이던 그. 무엇이 그로 하여금

불편한 한국어를 하도록 만들었을까 알 수 없지만

다시 한 번 문화와 내면에 대하여 생각하게 했다.



이미 충분히 긴 글이 되었으므로 이만 맺는다.

문화와 교육, 성향, 심리, 가정 등에 대하여는

저장해 둔 글이 많은데 오늘 이미 3~5인분이다.

악보에 집중하러 간다. 주말 햇빛은 쐬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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