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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Nov 27. 2024

벌써 밤이다

feat. 폭설 & 당근라페

밤이다. 종일 악보를 하다 오후에서야 창밖을

보게 되었다. 햇빛을 받으며 좀 걷고 싶었는데

폭설이라더니 한국치곤 정말 러시아같이 온다.

꽤 아름다웠지만 우리나라는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 아니다보니 폭설에 취약한 부분이 많더라.

우리집 근처의 눈, 한국

철들기 전 모스크바에 갔기 때문인지 한국에서

눈이 오는 날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전혀

몰랐다. 귀국 후 운전연습을 할 때 아빠가 내게

"그렇게 빨리 가면 안 되, 눈에 보이지 않아도

 지금 도로가 살짝 얼어있기 때문에 미끄러워"

라고 하셨는데 내 반응은 "빙판길도 아닌데 이

정도로 느리게 가야 한다고..?!" 의아함이었다.


일단 아버지 말씀을 들었지만 이해를 하는데엔

시간이 살짝 걸렸다. 모스크바에서는 이것보다

훨씬 눈이 많이 내려도 일어나 보면 작업 차가

도로의 눈을 싹 치웠고(녹였고) 인도 대부분도

치우고 녹였기 때문에 특별히 조심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운전하지 않아서인가.

그런 얘기는 들었다. 러시아에 살면 신발이 잘

닳는다고. 염화나트륨을 뿌린 바닥을 걸으니까.


아, 물론 가끔 그늘 빙판 구간에서 미끄러지면

창피해서 빨리 일어난 적은 있지만 ㅋㅋㅋㅋㅋ

뭐랄까, 예를 들어 현대나 기아가 러시아 쪽에

수출하는 차에는 뭔가 더 손을 본 게 분명하고..

그래서 영하 2~30도라고 해서 차에 문제가 막

생겼다거나 특별히 사고가 더 났다거나 그런 건

딱히 보지 못한 것 같다. 실내 난방도 빵빵하다.

중앙난방 시스템이라 난방비 더 낼 걱정도 없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메인 뉴스 기사 제목에

[오늘 춥다. 영하 3도]를 보고 비웃은 적이 있다.

그 시기 모스크바는 평균 -20 아래로만 갔는데

"영하 15~18도 정도가 딱 좋은 것 같아요."라는

선생님 말씀에 "그러게요~" 고개 끄덕이던 나.


시베리아에 견줄 수는 없지만 시내 전광판에 뜬

현재 온도에서 가장 낮은 숫자를 본 것은 -36로,

딱 한 번 옛날에 내가 스키복을 입고 ㅋㅋㅋㅋ

학교에 간 날이 있었다. 그런데 별로 안 추웠다.

바람이 없어서.. 다만, 눈을 깜박일 때마다 뭔가

느낌이 '찹찹' 하는 것 같았는데 밖에서 걷다가

동네 가게에 들어갔더니 내 속눈썹에서 물이 좀

흐르면서 깨달았다. 속눈썹 위 얼음이 녹은 것.

크레믈과 붉은 광장 눈보라 데이, Moscow 폭설이라고 외출을 자제할 리는 없다

한인교회 게스트룸에 살 때는 부실공사의 여파로

방 안의 창문 아랫쪽에 고드름이 얼어 손으로 다

떼어내곤 했다. 보통 아파트는 난방도 훌륭해서

지금 한국집보다 얇게 입고 생활했는데, 그 한인

교회는 한국인이 따로 세운 건물이라 좀 달랐다.

러시아 음악가 중 길을 걷다 건물에서 떨어지는

고드름을 맞고 죽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막상 러시아의 고드름 스케일을 보니 가능할지도.


러시아인들 말로는 건물은 스탈린 시절의 건축이

가장 튼튼하고 좋았다고 했다. 방음도 잘 된다고.

그 다음에는 막 지은 모양이다. 목숨이 걸려있는

건축이었기에 잘 지은 것인가. 감히 추측해 본다.


외곽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학교는 크레믈 동네라

아마 모스크바 중에서도 가장 빠른 처리가 될 듯.

다만,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에는 학교에 가기

힘들었다. 눈이 너무 많이 쌓이고 바람이 세니까

바람을 뚫고 발을 허우적대면서 30분 넘게 걷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학교에 가야 하나' 싶었던 적

있었다. ㅋㅋㅋ 날씨 좋을 때도 빠진 적 많아서...

(나는 집순이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당근라페가 문제였다.


최근 본의 아니게 여러 번 당근라페 샌드위치를

주문해 먹었는데, 먹을 때마다 의문이 들긴 했다.

이거 뭘로 절이는 거지..?


나는 요리에 설탕을 사용하지 않는다.

파는 요리에 어차피 항상 들어가니 나까지 그걸

쓸 필요도 없거니와, 백설탕은 구매한 적도 없다.

어차피 단 것보다 신 것, 심지어 쓴 것도 좋아하고.

대체 감미료는 생각보다 검증의 세월이 더 필요한

경우가 많고 허점이 존재하니 비정제 설탕이 낫다.


설탕은 주제가 아니다.

식초가 문제였다.


당근라페 레시피에 너도나도 식초를 넣는 것을 보고

기겁했다. 어떻게 요리를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기본지식 없이 음식을 해먹고, 팔고, 자녀에게 주지?


당근이 몸에 좋다고 하는 대표적 이유는 단연

베타카로틴의 함유량 때문이다.

케일에 가장 많지만 당근에도 상당히 높은 편.


그러나 베타카로틴은 식초와 상극이다.

당근에 식초를 붓는 것은 영양을 파괴하겠다는 거다.

그럼 왜 먹나. 그냥 배만 채우려 먹는다면 굳이 그리

애써 당근라페까지 만들거나 사먹어야 하진 않을 듯.


내 몸은 둘째치고, 특히 가족의 식탁을 담당한다면

요리를 배우거나 열심히 만들어 주는 데에 할애할

시간의 절반 아니 3분의 1을 영양에 대한 지식으로

채우는 것도 매우 유익한 방법이라 생각된다.


나의 무지함과 열심으로 남편이나 자녀가 천천히

병에 걸리는 데에 한 몫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참

비극이라는 인식을 하지 않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사랑스러운 자녀에게 과당이 들어간 이름만 유기농

포도쥬스를 사먹이거나 추파춥스를 물려주는 그런

엄마들을 자주 목격하면서 사실 속으로 안타깝다.


애들이 무슨 죄인가.

사람의 몸이 돌아가는 기본 원리와 면역체계, 또는

음식별 상극은 알아야, 사랑의 결과가 사랑일 텐데.

안다고 다 지키는 경우는 드물고 나도 못 그러지만

무지한 경우와, 알고 노력하는 경우는 차이가 있다.


그나저나 당근은 원래 달아서

꿀도 넣을 필요가 없다. (나에게는)

 쌉싸름한 생민들레도 즐겁게 씹어먹는 사람.


혀가 많이 화학적으로 중독된 사람일수록

본연의 맛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엄마는 드레싱 없는 샐러드를 힘들어 했는데

요새는 "네가 말하던 채소 하나하나의 그 본연의

맛이라는 것이 뭔지 알겠어"라고 하신다. 그렇게

되는 데에 기간이 꽤 걸렸다. 사실 소스는 본연의

맛을 다 덮어버린다. 야채에는 각각의 맛이 있다.


배달앱을 지우고 주말에 당근라페를 만들어야겠다.

루꼴라, 적양배추, 영양은 적지만 흔하게 양상추도

곁들이고, 소스는 창의적으로 생각하든지 빼든지,

만들어 먹을 여유를 먼저 만드는 것이 순서일 듯.



어차피 밖에서 먹는 것으로 데미지는 충분하니

가족으로서 요리하고자 한다면 조금은 공부하자.

솔직히 마스터쉐프 시리즈에도 몸을 망가뜨리고

영양을 파괴하는 레시피 범벅이 다수이기는 하나

그저 쇼이자 창의성, 그리고 램지 때문에 봤을 뿐

가족의 건강을 위해 좀 더 지혜로울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가족에게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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