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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딱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by Essie

단언컨대 존경을 바란 적 없었다.

내가 바란 것은 존중일 뿐이었다.

사람에 대한 예의, 기본적인 존중.


경험해 본 적 없는 일을 겪어오며

계속되어지는 강타에 휘청이다가

쓰러졌다. 난도질된 마음을 붙잡고

소리 없이 울었다. 그리고 또 맞았다.


존경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한 것은 하나도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신은 나에게 참으라 하였다.

참아라. 무엇이든 네가 참아주어라.

그러면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흐르고,

너를 존경하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주님, 나에게는 존경이 필요 없습니다.

한 번도 바란 적 없습니다. 불필요하니

이 재난에서 저를 구출하여 주십시오.


존중을 잘 모르는 악의 없는 인물로부터

존경까지 받자고 패대기 쳐지기에 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를

그리로 끌고 가지 말아 주십시오, 말했다.


영안이 열리지 않은 악의 없는 인물들은

매번 본의 아니게 악역을 맡아주고,

나의 혼과 육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그때는 늘 중요한 때이고, 반드시 치명적

순간이다. 내가 연주하지 못하게, 그리고

그토록 오랫동안 원하던 노래하지 못하게

짓밟는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주님, 저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제가 언제

존경을 바란 적 있었습니까? 존중도 이제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따지지 않을 것이니

그들로부터 피할 수 있게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신은 나에게 계속해서 말해왔다.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당하는 시험 외에

네가 당한 시험은 없다. 네가 감당치 못할

시험은 허락하지 않았고 피할 길을 주어서

결국 감당하게 한다. 나는 또 얻어맞았다.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고 싶습니다, 주님.

당신에게 가고 싶습니다.


악의 없는 오만한 자의 죄를 내가 용서하지

못할까 봐, 이토록 드문 분노를 키울까 봐,

영으로 주기도문을 반복 또 반복만 하였다.


끊이지 않는 눈물에 베겟닛이 젖어들어가고

감당해 내기 위하여 감사를 적어 내려가면서

역겨움을 감사로, 분노를 감사로, 그럴싸한

정당, 정의감 따위 내버리고 감사만 하였다.




감당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감당하고 있다.

천국에, 예수 당신에게,

딱 한 걸음, 가까워졌다.


잊을 뻔했다.


종이 주인보다 크지 않다.

주인이 모욕당했다면

내가 당함은 마땅하며

심지어 날 위해 당했으니

나도 당함이 마땅하다.


사람이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하나님을 의식함으로 고통을 견디면 이것은 감사할 일이나 너희가 너희 잘못으로 인하여 매를 맞고 참으면 그것이 무슨 영광이냐? 그러나 너희가 잘 행하고도 그것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고 참으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참으로 너희가 심지어 그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나니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남기사 너희가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 1Peter2: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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