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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일기를 써 본다

by Essie

브런치에 오랜만에 들어와 글을 적는다.


그동안 나는 또,

영적인 꿈을 꾸었고 악보를 여럿 마쳤고

열심히 먹었으며 부모님을 돕기도 했다.


그 사이 나에게는 또,

악한 영이 어떤 두 인물을 이용해 공격했고

혼과 육이 며칠 동안 박살 나 너덜너덜해질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어딘가에서 "화교 패자" 문구를 보았는데

그것은 역시 나의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나는 누군가를 패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만일 상대가 나를 패고 있다면

그래서 내가 얻어맞다 위험해진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화교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화교는 비유적 예시일 뿐)


그런 일들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면서

흐름이 보였다. 꿈에서도 미리 보았고

역시 그 일은 기어코 일어나고 말았다.


나는 필사적이었다.

부모님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나를

보호하고 싶었으나 숨을 수는 없었다.


신은 나에게 지금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종이 주인보다 크지 않다, 원수 갚는 게

나에게 있다, 때를 기다리라는 메시지가

부정할 수 없이 정확하고 자세히 왔기에

나는 함께 팰 수 없었다. 얻어맞았다.


사람이 사람을 패는 방법은 다양한데 물론

'구타'라고 표현되는 경험은 나에게 없으나

혼이나 영적으로라면 셀 수 없이 많이 있고

그것은 곧 신체에 실제로 데미지를 남긴다.


그리고 애매한 것은, 나를 패는 상대방이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니라는 그 부분이다.

항상 인식하고 있고, 생각하려는 그 부분.

또한 나 역시 몽둥이 역할을 할 때가 있고.


이 모든 것의 저울질은 신만 온전히 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옳다 믿고 싶어 할 뿐이나

확실한 것은 최근 내가 신이 하라는 것을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악한 영들의 공격 1순위 대상이 된 점이다.


아무튼,

어떤 식으로든 가해지는 건강의 악화 또는

작업 특히 나처럼 영성이 요구되는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공격이 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내게 미리 알렸고

내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만큼의 언질을

주었으며, 나처럼 신도, 나를 참아주었다.


연달아 일어난 모든 일들의 공통점으로는,

하고자 하면 같이 혹은 더 팰 수 있었으며

심지어 이길 법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은, 내가 이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누가 한 말이던가.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애초에 싸움 자체도 싫고, 난 이 모든 일에

싸운 적조차 없었지만 맞은 것은 확실했다.


상흔은 짙게 남았고, 실은 거절을 원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하여 돌아서기를 바랐다.

생이 끝나는 그날, 신 앞에서 회계 보고 시

누가 과연 어떠할는지 보아야 끝나는 판단.


어릴 때의 나는 아닌 것을 그렇다, 그런 것을

아니다 하는 행위나, 상대의 완벽한 오해 또는

잘못을 내가 뒤집어쓰고 침묵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일어난 모든 일에서 나의 처지는

뒤집어쓰거나, 두들겨 맞고도 참는 것이었다.

어떤 교만과 오만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무서운

죄를 저지르게 하는가. 나는 더 말할 수 없었다.


오늘조차도 나는 또 한 대 맞아 버렸으나

상대는 나를 때렸다 생각지 않는 것일지도.


줄곧 떠올렸다. 마지막 날을. 신 앞에 설 그날을.

그를 갈망했다. 어차피 그 외에는 알지 못할 테니.


신은 예전에 말한 대로 이제 나를, 내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간다. 나는 원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생명으로 가는 길이라면, 가야만 한다.


예수는 한 번도, 그 길이 편하다 한 적 없었다.

오히려 반대이다.

좁고 불편하여 그 길을 가는 자가 적다 하였다.


넓은 길을 가려는 나를 끌어다

좁은 길로 인도하는 그는 유일한 구원자이자

친구, 인도자, 스승, 조언자, 보호자, 위로자

그리고 영원히 변함없는 사랑이다.


그가 뺨을 맞았다면

나는 양 뺨을 맞아야 하고

그가 모욕을 당했다면

내가 모욕당함은 당연하며

그가 슬픔의 사람이었다면

나도 슬픔의 사람인 것이다.


그가 죽었으니

나도 죽은 것이고

그가 살았으니

내가 살은 것이다.


그것이 예수를 믿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얻어맞고

오늘도 감사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 Galatians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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