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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도 선택이다

모두가 사는 길

by Essie

이 글이 나에게 딱히 유익할 리 없어도 적기로 했다.


대학원생 시절 같은 기숙사에 살던 H라는 일본애가

있었다. 한 손엔 보드카, 다른 손엔 담뱃갑을 쥔 채

1층 복도에서 흐느적거리며 지나가다 마주칠 때면

솔직히, '한심하다'라는 딱 한 문장이 떠오르곤 했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담배는 냄새마저 끔찍하다.


그런데 일명 '걸어 다니는 라이터'에, 보드카를 병째

들고 다니는 인물이 나에게 어떤 설득력이 있겠는가.


H에게는 늘 연주를 같이 하는 일본인 룸메가 있었다.

룸메는 학생들 사이에서 젠틀하기로 소문나 있었고

mutual friends 연결고리로 점점 친해지게 되었다.


내 일본 친구는 H가 아니라 그 애의 룸메 N이었다.

N은 칭찬받을 면모가 많아서 다수의 호감을 샀다.

H는 '만취일장'하여 입 떡 벌어지도록 만드는 주사,

때론 도른자, 때론 ㅂㅌ 같은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일본인 사이에서도 H는 N과 다른 식으로 유명했다.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전공에 뛰어나다는 그것 뿐.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난 H와 매우 가까워졌다.

물론 N과도 좋은 친구 관계였지만, H는 의외였다.


H는,


흡연석에서 흡연 중이다가도 멀리에서 내가 오는 게

보이면 피우던 담배를 즉시 재떨이에 떨궈 꺼버렸고

함께 카페나 레스토랑에 들어갈 때면 자신이 스스로

먼저 "금연석이요"라고 하며 직원에게 안내 받았다.


수업 후 기숙사에 돌아가는 30여분의 도보 중에도

물론 담배를 꺼내지 않았다. 옆에서 피우지 않아도

그 애에게는 늘 담배냄새가 났다. 담 배 쩐 내 .......

골초에게는 모든 것에 그 냄새가 깊이 베어있더라.


기숙사에 도착하자 굳이 먼저 들어가라며 머뭇해서

왜 그러냐, 너도 네 방 가야지, 같이 들어가자 하자,

민망한 얼굴로 "사실 여태 담배를 계속 참아서.."


그런 면이 나로 하여금 '그 냄새'를 참게 했을지도.

여자친구도 아니고, 따로 부탁한 적 한 번 없는데,

"난 담배 냄새 매우 싫어해." 내 한 마디를 기억해

그렇게 참고 배려하기를 친구로 지내던 내내 했다.


다른 일본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도대체 H를 어떻게 구워삶았길래 H같은 사람이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심지어 샤워실로 내려가서

머리를 감고, 정장 재킷을 걸치고 악기 들고 한인

교회에 가냐고, 뭘 어떻게 한 거냐 마미가 흉 봐."

"그랬구나...ㅎㅎ" (남의 평가에 별 관심 없음)

"둘이 사귀어?"

"엥? 그럴리가."

"안 사귄다고?"

"절대 그런 관계 아니고 완전 친구야."

"근데 어떻게 H가 그렇게 잘 따라? 너는 아니라

해도 걔는 널 좋아할 수 있잖아."

"걔 나보다 7살 어리다. 나한테 등짝도 맞았어"

"7살 차이가 뭐."

"아무튼 친한 건 맞는데.. 음.. 날 잘 따르나?

근데 아마 H는 마미한테 호감 있지 않나?"

"그건 너 알기 전이잖아."

"마미가 그방에서 술 좀 마신다고 들었어.

마미 남친 없고, 난 원래 사귈 생각도 없고.

아무튼 H랑 N이랑 우리는 똑같이 베프야."


생각해 보니 내 말을 잘 들어주는 건 맞았다.

평소 머리가 떡졌다든가, 주말은 밤새 마시고

일요일 점심 쯤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었으니

'무슨 약을 먹였냐'는 말이 나올만 하긴 했다.


무슨 약을 먹였을까. 간식은 내가 받았는데...

생각해 보게 되었다. '뒷담화' 덕분에 말이다.


칭찬이었다.

칭찬과 존중.


나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칭찬에 전투적이다.

기본 스탠스가 그렇게 오래 자리잡혀 있다.


물론 모든 일에 입만 열면 칭찬일 리 없으나

상대의 장점을 하나라도 보면 놓치지 않는다.

적어도 그러려고 항상 노력한다. 습관적이다.


10개 잘못하는 에게도 1개의 장점이 있다.

반드시 있다. 보장한다. 뭐 하나라도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이 너무 힘들어서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참아온 세월,

겪어온 고난, 이를 악물고 견뎌온 절규까지,

당신에게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야 한다.

찾아내어야, 기필코 찾아내고 말아야 한다.


그것이 첫째, 당신이 사는 길이고

둘째, 부부 또는 이 관계가 사는 길이며

마지막으로 자녀 또는 가정이 살 길이다.


나는 포착한 장점을 웬만하면 표현한다.

말이든 글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전한다.

역효과가 일어날 때도 있지만 감안하고도

유익함이 더 크기에 그만둘 생각은, 없다.


기질적인 것도 있다.

INFP는 평화주의, 이상주의자이기 때문에

나쁜에게조차 좋은 면을 보려고 '애쓴다'.


제아무리 '나쁜ㄴ'에게도 '선에 대한 갈망'은

대개, 보통의 경우, 숨어있기라도 하다는 것.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상대를 다시금 보면

나쁜ㄴ도 사실 나와 크게 다를 바 없었고

그 어리석은 자, 도른자, 웬수아닌 웬수에게

장점 또는 장점의 싹이라도 볼 수 있게 된다.


약점을 발견하면 물고 늘어지는 게 아니라

장점을 발견하면 월척, 심봤다는 심정으로

외쳐보자.


"어머! 세상에! 훌륭하네! 대단하다!" (상/박수치면+3)


양심의 가책이 올 땐 난이도를 낮추면 된다.


"잘 하네~" (중/고개를 끄덕이면 +2)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꽈서라도


"잘할 때도 있네...." (하/역효과 주의)


이건 진짜 아니라서 뜯어 말려야 할 때에는

문제의 앞, 또는 앞뒤에 다 칭찬을 붙여보자.


"일단, 당신의 이런 점은 참 좋은 것 같아.

감사히 여기고 있어. 참, 혹시.."


10년 전 잘한 일이라도 끄집어 내야 한다.

10년 전 잘못 말고 말이다. 이것이 전투다.

이기는 싸움. 둘 다 이기는 싸움 말이다.


H가 아직 뻘짓(?)하고 다닐 때, 대해 보니

소위 말빨이 세더라. 나는 놓치지 않았다.


"너 말 되게 잘한다. 언어 능력이 보통 사람이랑

차원이 다른듯. 아직 언어가 자유롭지 않은데도

이 정도면 너 원래 말솜씨 장난 아니겠는데?"


칭찬만 남발한 것은 아니지만 돌아보면 난

분명 일상에서 작은 장점들을 항상 보았고

상대를 좋은 사람, 귀한 존재로 북돋았다.


중요한 건 진심이다. 나는 진심으로 한다.

그런데 이 진심도, 노력하면 더 생겨난다.


문제의 언급을 피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는 없다.

꺼내되, 상대 특히 남자를 '우스운 꼴' 만들면

공든 탑은 폭파된다. 왜 어려운 길을 가려 하는가.

남자를 고쳐쓰기 위해 싸워 온 길고 치열한 전쟁의

끝에서, 귀하가 원해왔던 그 결실이 열매를 맺던가.


여자보다 (대개의) 남자는 훨씬 복잡하다.

즉슨, 여자의 카테고리, 여자의 사고방식 속

전략은 남자들에게 '외국어'가 될 수 있단 것.


하고 싶은 말을 하라. 다만, 칭찬을 더 하라.

칭찬은 모국어이다. 남녀노소 불문 모국어.

찾고, 없으면 만들어라. 귀하는 할 수 있다.


아직 담배를 못 끊었고, 가끔 도른자여도,

상대를 향한 긍정적인 시선과 일관적 격려

그리고 믿어주는 마음의 신뢰는 그 관계는

물론 상대를 건강하고 단단하게 만들더라.


그러면, 내 (정신)건강에도 좋더라, 이 말.

나는 귀하와 가정이 평화롭기를 바란다.


고집불통일수록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옳은 말과 논리가 사람을 깨닫게 할 수는 있으나

옳은 주장과 논리로 여성이 남성을 변화시켰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고, 있을 지언정,

알고 보면 그 방법이 칭찬보다 고된 길이다.


결혼하지 않았다 해서 겪어보지 않는 건 아니다.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다양한 방법으로 겪는다.

처참하고 개탄스러운 심정이라면, 나도 안다.

그보다 더하지만 차마 적지 못하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칭찬을 권한다.


칭찬하라.

생일에는 나이만큼 장점을 편지로 쓰고,

내용이 정 없으면 남들 다 하는, 인간이라면

다 하는 그 내용이라도 적는 투지를 보여라.


너무 간 것 같지만, 그 정도의 투지가 있어야

귀하의 오랜 숙원을 끝낼 방향으로 턴이 된다.


만일 칭찬을 들었다면 귀하도 상대에게 꼭

칭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보자.


나는 얼마 전, 이재명씨의 지지자를 만나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실 이재명 목소리도 잘 모르지만

누가 그러던데, 이재명이 말을 그렇게 잘

한다면서요? 우파인 친구가 하는 말이,

'히야~ 이재명이 말을 너무 잘해서 나도

혹하겠더라. 그렇게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우파에도 있으면 좋겠더라' 하더라고요.

그 정도로 말솜씨가 굉장히 좋은가봐요?"


그것 말고는 이재명씨의 장점을 나는 모른다.

많은 단점과 단 하나의 장점을 들은 적이 있고

그 장점을, 상대에게 꺼내 대화를 시작하였다.


누구와든 서로 심각한 문제를 다룰 수 있다.

(정치를 뜻한 것은 아니나 적용은 다 될 듯)


다만,

칭찬으로 시작하여 칭찬으로 끝낸다.

모두가 사는 길이다. 마음이 사는 길이다.



이런 표를 만들어 붙이는 방법도 있다.

당신은 지금까지 잘 애써왔고

현재도 정말로 잘 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더욱 잘 해낼 수 있다.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매우 특별한

당신은 진정 존귀한 존재이므로


자신을 아끼는 방법을 선택하며

칭찬과 감사와 용서를 택함으로


귀하의 마음과 생각, 모든 관계와

온 삶이 아름다움 속에 거하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당신이 생명 안에 거하기를 소망하며.


율법을 주시는 이가 한 분 계시는데 그분께서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남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James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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