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10대 후반, 모스크바에서 가장 힘들던 시기, 쥴리아드에 다니고 있던 한 오빠가, "무슨 일이든 네가 살며 겪는 모든 일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원천(source)에 불과해." 라고 말해왔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아니, 좀 나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얼마나 힘든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생각하고 넘겼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그 말"을 하며 인정하고 있었다.
얼마 전, 상대의 모순이 뒤늦게 나로부터 분을 불러일으키려 하여 주기도문을 반복하던 중 문득 "그 말"이 다시 떠올라, 평정심 되찾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꽤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특히 엄마를 보낸 이후부터 줄곧. I acknowledge that everything I experience is a source of knowing God.
사람은 마음을 사랑이라 말하나, 신은, 예수의 십자가를 가리켜 "사랑"이라 일컫는다.
예수는 나를,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상태일 때" 사랑했다. 그러므로 나도, 나에게 잘못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만일 감정과 느낌만 사랑이라면, 이 땅은 필시 가장 추잡한 곳일 거다. 사람은 마음을 사랑이라 말하나, 신은, 예수의 십자가를 가리켜 "사랑"이라 일컫는다. And this is the greatest love I've ever experienced in my life.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해내는 것"이다
그에게 받은 "사랑"을 행하는 과정에, "자아의 죽음"은 필수였다. 어쩌면 의도치 않게 나는, "불편하고 좁은 그 길"을 걷게 되었다. 사랑할 수 없는 내가 사랑함은, 사랑받을 수 없는 내가 그로부터 사랑받았기 때문이다. 도저히 사랑할 수도 사랑받을 수도 없는 나를 그가 사랑했다. "그 사랑" 없이 난 아무도, 누구도, 결코 사랑해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해내는 것"이다.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화해 후 사랑한 게 아니라, 죄인 원수일 때 사랑했다"
이것을 말씀하셨다, 나도 알라고. 안다고 생각했으나
겪고 나니, 이번에야 깨달았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의 아름다움이란, 자격 없는 나에게 주시는 영감(inspiration) - 나와 어울리지 않게 너무 아름다워, 들려주는 곡을 받아 적다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리는, 그런 것과 흡사하다.
Jesus - 그는 아름답다. 죄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