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khah: Lamentatio III
생애 가장 괴로운 한 달을 보냈다.
정해진 연주에 할 곡은 없고 난 무력했다.
"네가 나에게 곡을 새로 지어주는 줄 알았어"
7년 전의 편곡 악보를 보내자, 실망했는지 친구가 말했다.
"내가 요즘 작, 편곡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야. 새로 지을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라고. 곡도 신이 주셔야 쓰는 거고."
전화를 끊고 잠시 피아노 앞에 갔다. 이유는 무의식적인 양심 때문이었다. 피아노 앞에 마음을 먹고 앉으면 신이 영감을 주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악기를 외면한 채, 처한 "비극"에 충분히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두 걸음만 가면 도달하는 나의 피아노 앞에 한 번은 다녀와야, "새로 지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곡도 신이 주셔야 쓰는 거고" 라는 자신의 말에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피아노 앞까지 갔다. 딱 1초만 앉았다 곧바로 일어날 생각이었다. 내 마음을 나보다 먼저 파악한 신은, 1초가 되기 전, 앉자마자 즉시 멜로디를 들려주기 시작하였다. 명확히 들려오는 소리를 도저히 외면할 수 없어 받아 적게 되었다. 이런 날들에 작곡이라니. 이토록 비참하고 비통하여, 있던 곡도 연주하지 못할 지경인데 새로운 곡이라니. 기 막힐 심정이었으나, 차마 부정할 수는 없었다. 신이 들려주면 청음을 하듯 악보에 정확히 받아 적을 수 있다. 이것을 위해 신은 나에게도 절대음감을 주었다. 나의 모든 음악은 전부 이렇게 시작된다.
신이 들려주는 음악은 늘 예수와 같이 아름다웠으나, 나는 여전히 괴로웠으므로 곡의 마무리가 지체되었다.
"혹시나 하고 피아노 앞에 앉았는데, 앉자마자 멜로디를 주셔서, 아무래도 우리가 할 곡은 새로운 곡이 될 것 같다. B minor이고 네 파트는 멜로디 위주가 될 거야. 내가 인내를 가지고 앉아 있으면 바로 다 지을 수도 있는데, 지금 인내심이 없어, 집중력이. 어떤 곡인지는 다 알아들었거든. 근데 악보 정리를 해야 할 것 아니야. 악보를 네게 써 줘야 되고 나도 반주를 해야 되니까.. 그래서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
제목도 몰라 묻자, 신은 내게 예레미야 애가 3장을 주었다. 읽지 않았고 읽고 싶지 않은 애가 3장 전체는 바로 나의 이야기였다. 뼈가 지속적으로 산산조각 나 으스러지는 히브리어 표현, 모욕과 치욕, 억울함과 파멸, 황폐와 멸망으로 눈물이 강같이 흐르기까지, 하나도 나의 이야기 아닌 것이 없었다. 나는 그의 "진노의 막대기를 본 자"였다.
몸까지 아팠다. 이렇게 앓기는 십여 년 만이었다. 결정적으로 의욕이 없었다. 아니, 분명 나는 절대 작곡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신이 일방적으로 나에게 들려주었을 뿐. 결국 악보를 늦게 완성했고, 연주 디테일 요구를 연주 하루 전 오후에 보내자, 친구가 물었다.
"다른 사람하고 할 때도 이렇게 하루 전에 요구해..?"
"미안하다. 그런데 나도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22년 베프와의 첫 연주가 이런 모습일 줄은 누구도 몰랐다.
온종일 몸과 마음이 앓다 전쟁을 치르듯 교회에 갔다. 전날 오후에도, 거실바닥에 누워 울 정도로 나는 무기력하였다. 친구는 패턴이 달라져 늦을까 봐 아예 밤을 새우다 30분만 자고 나왔다. 연주 직전까지도 서로가 원하는 부분을 요구해야 할 정도로 준비가 미흡했다. 영혼육의 고통으로 인해 연주자에게 연습할 시간을 거의 주지 못했으므로 나의 책임이나, 그 순간조차 나는 아직 앓는 중이었다. 둘 다, "예배"가 아니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상황이었고,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연주는 아닐지라도 아마, 예배에 성공했으니 애가는 "애가"로 남기기로 하였다.
음악가로서 "음원은 아니니까" 합리화하면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가득 남긴 연주였음에도
진심으로 좋다고 말하던 이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나의 눈물을 좋아한 것일까
아니면 나의 고통 속에서
자기 안의 감춰둔 고통을 본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