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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Jan 30. 2019

두바이, 은빛의 탑

아랍에미레이트

부르즈 할리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경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 밖에서 보면 은빛으로 빛나는 납작한 바늘을 닮았고 기묘하게도 무게감이나 입체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아찔하게 솟아오른 이 탑은 수평이동이 계속해서 똑같은 풍경을 보여줄 뿐인 이런 공간에 잘 맞는 건축양식일지도 모른다. 굳이 루돌프 아른하임의 지각 심리학 이론이 아니더라도, 무한히 수평적인 이 사막에서는 수직으로 솟아오른 무엇인가를 반사적으로 만들어내고 싶은 욕망이 생길 법도 하지 않을까. 물론 아랍 에미레이트 곳곳에서 본 '짝퉁 서구' 문화처럼 그런 욕망을 속물적이고 자본주의적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믿을 수 없는 온도의 열기가 지배하는 사막의 끝없는 침묵 앞에서 그 정도의 사치는 애교에 불과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사막에서는 연회색 말고는 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태양은 강렬하지만 사막의 모래먼지는 세상을 온통 희뿌연 색으로 덮는다. 내가 갔을 땐 모래폭풍의 계절이 아니었지만 폭풍이 시작되면 모든 것이 삼켜진다고 한다. <미션 임파서블>의 그 장면처럼... 여기서 문명의 존재를 표시하기에 가장 적절한 색채는 결국 은빛이라는 점을 납득했다. 바다의 등대처럼, 빛나는 무엇이 필요하다.

전망대에 올라가 보니 역시나 모래먼지가 시야를 가로막아 먼 곳까지 볼 수는 없었다. 너무 높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지 저 아래의 풍경이 레고 월드의 장난감처럼 보였다. 해가 지면서 바람이 불어왔지만 거대한 열풍건조기를 돌린 듯 뜨거운 바람이라 더위를 식히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았다.


8월 초의 두바이와 아부다비. 이런 극단적인 기후에서도 인간이 살 수 있다니. 처음엔 전철이 있길래 아무 생각 없이 그걸 타고 다니면 되겠다 싶었다. 유럽에서처럼 보행자 여행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냉방이 잘 돼 있는 건물 밖으로 나가서 1분이 경과하기 전까지는... 과장이 아니라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왜 이 나라 사람들이 극한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긴 팔 옷을 입고 다니는지 금세 이해했다. 살이 타는 듯이 뜨거웠다. 오븐 속에서 구워지는 것 같았다. 결국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택시도 쉽게 잡히질 않았다. 두바이 크릭(Dubai Creek) 골프 & 요트 클럽에 갔을 때, 온다던 택시가 한 시간을 기다려도 안 와서 우리는 할 수 없이 입구까지 걸어서 나갔다. 열기와 모래먼지로 반쯤 탈진 상태가 되었을 때 극적으로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사막에 세워진 거대한 원형 돔 - 쇼핑몰 - 은 공기 없는 행성에 세워진 생존의 기지처럼 느껴졌다. 두바이 몰(Dubai Mall)은 길을 잃을 정도로 거대한 공간이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하루 종일 여기서 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게가 있었다.



이런 날씨에 바깥에서 건물을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일은 외국인 노동자 차지라고 한다(이 대목에서 중동에 가라던 어느 분의 말이 떠올라 새삼 경악). 그들 말고는 밖에 나와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널찍한 길들은 종말 이후의 지구처럼 텅 비어 있었다. 건물이 계속 새로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두바이는 어쩐지 폐허를 연상시키는 도시였다. 전철을 타고 조금만 나가니 도시 외곽이었는데, 은빛 바늘 같은 부르즈 할리파와 다운타운의 스카이라인이 마치 스러져가는 문명의 마지막 흔적처럼 보였다.  도시의 건설현장을 "역전된 폐허(ruin in reverse)"라고 불렀던 로버트 스미드슨(Robert Smithson)의 글이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여행시기 : 2015. 8)

-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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