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플레이리스트
https://on.soundcloud.com/Po9wRxPLcWHXNtz99
피아노 연습 시작한 지 1년 된 기념으로 올려보는 연주 파일.
작년에 “나도 쇼팽을 칠 수 있을까”라는 매거진을 만들어 연습일지와 연주파일들을 올렸다가 삭제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연습일지란 게 딱히 오래 남겨둘 가치가 없는 글인 것 같기도 했고, 아무리 혼자 재미로 하는 거지만 수준이 너무 낮은 연주를 올려두는 것도 좀 아닌 것 같았고, 무엇보다 피아노 조율이 제대로 안 돼 있는 걸 몰랐다는 게 황당해서였다. 앞으로도 연습일지를 다시 쓸 것 같지는 않지만 연주파일과 함께 그간의 상황을 잠시 메모해 둔다.
피아노를 당근마켓에서 나눔 받을 때 조율을 받았는데도 계속 뭔가, 왜 내 피아노 소리는 전문 연주자들 소리와 다르지, 싶었다. 그냥 내가 못 쳐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자세히 비교해서 들어보니 음 자체가 확실히 낮은 거다. 알고 보니 애초에 조율이 제대로 안 된 거였다는… 물론 그 사이에 시간이 지나서 약간 소리가 낮아지기도 했겠지만, 다시 수소문해서 모셔온 찐 전문 조율사님이, 처음에 제대로 조율을 못한 것 같다고 하신다. 이 조율사님은 음악학과에 30년이나 나오신 분으로 한눈에 보기에도 포스가 범상치 않으셨다. 이 분이 한번 더 조율하시고 나니 소리가 달라졌다! 이젠 음이 낮지 않다. 물론 이 분 왈, 어차피 겨울 지나면 또 달라지니 봄에 다시 한번 오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피아노 주변이 건조하지 않게 물수건 같은 걸 놓아두라고 하신다. 악기를 건사하는 일이 쉽지 않구나. 아기 돌보듯이 해야 하는 거였다.
그 후에 세 번째 곡인 비창 2악장에 도전해서 현재까지 연습하고 있다. 그렇게 꾸준히 열심히 하지는 못했지만 나름 짬짬이 피아노 앞에 앉는다. 바쁜 시기가 지나고 최근 시간이 좀 나서 집중할 수가 있게 됐다. 비창은 녹턴보다 훨씬 어렵고 물리적으로 내 손으로 짚을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이런 부분은 할 수 없이 자체 편곡?을 한다) 칠수록 약간씩은 늘어가는 게 보여서 의욕이 생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비창을 한참 치다가 다시 쇼팽으로 돌아오면 전보다 더 잘된다. 한곡만 줄곧 연습하지 않아도 다른 곡을 치다가 돌아오면 더 나아질거라는 유튜브 강의가 맞았다. 비창에서는 내성을 아주 작게 쳐야 하는데 이게 너무 어렵다. 이 연습을 계속하는 것이 왼손을 쿵쾅거리지 않게 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아주 어마무시한 코드들을 짚어야 하는 게 레가토나 프레이징 연습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고.
더불어, 나는 언제나 틀리지 않게 칠 수 있을까, 그런날이 오기나 할까 라는 의문이 있었는데 이것도 결국 연습량이 해결해주는 거였다. 답은 연습 또 연습이라는 말이 맞았다. 이제는 용을 쓰지 않아도 틀리게 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있어도 그럭저럭 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왕초보 수준이지만 대충 버벅대지는 않고 끝까지 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창은 아직 이렇게 못치지만 차차 가능하게 되겠지. 올해의 목표는 비창과 함께 또 다른 곡 하나를 칠 수 있게 되는 것. 아직 뭘로할지 고르지는 못했다.
지난 12월부터 나도 내란성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시간은 잠시나마 위안이 된다. 나의 영원한 최애 쇼팽과 함께 하는 시간이 안정감을 준다. 클래식 음악을 지금처럼 자주 듣지 않았던 시절에도 쇼팽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 아름답지만 감상적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피상적이지 않은음악. 쇼팽의 곡들은 심오함이 반드시 불편함과 같은 의미일 필요가 없음을 보여준다. 아니 들려준다.
쇼팽의 곡은 트릴과 꾸밈음이 많고 페달링도 많이 필요한데 그런 것들이 과한 장식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물론 연주를 잘못하면 과해지겠지만 (나같은 초보는 페달링 조절을 잘 못해서 여전히 목욕탕 소리가 난다) 연주 이전에 곡 자체가 과한 경우도 있으니. 페달링에 따라 곡의 느낌이 달라지는 건 모든 피아노곡에 다 해당되겠지만, 쇼팽의 음악은 유난히 그런 것 같다. 페달링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쇼팽의 곡들은 연주자들에게 해석의 자유를 최대한 허용한다. 이 유연함이 쇼팽의 매력 중 하나다. 같은 에튀드라도 임윤찬처럼 락음악인 듯 연주할 수도 있고, 후지타 마오처럼 섬세하게 칠 수도 있고, 디누 리파티처럼 단단하게 연주할 수도 있다. 곡 자체가 꽉 차 있는 라벨 같은 작곡가의 경우는 이 정도로 해석의 폭이 넓지 않다(라벨 자신이 해석을 싫어하기도 했고). 이에 반해서 쇼팽은 비어 있다. (왠지 쇼팽은 P였을 것 같다 ㅎㅎ) 사실 쇼팽의 이런 면이 초보자들에겐 변명거리(?)를 주는 면도 있는 것 같다. 피아노 연습을 하면서 박자를 정확하게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고 있는데, 쇼팽은 루바토라는 이름으로 변형을 허용하니 거기 편승하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물론 루바토가 박자를 안지켜도 되는 게 아님은 알고 있다. 그냥 해보는 소리임).
- 개인적으로는 연주를 ’해석‘이라고 부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단어는 마치 이미 완성된 것을 이차적으로 비평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연주는 악보에 추상적으로만 존재하는 음들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적극적인 활동이 아닐까 -
녹턴 9-2는 쇼팽의 곡 중에서 비교적 치기 쉬운 편이라서 많은 아마추어들이 도전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이후 수십 년간 피아노 앞에 앉지 않았던 사실상의 왕초보인 내가 갑자기 치기엔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어찌 꾸역꾸역 연습해나가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이 곡은 기본적으로 두도막 형식이면서 A 부분의 주선율을 조금씩 변화시키면서 진행되는데 이런 방식은 잘못하면 단조로워질 수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곡은 난해하지 않지만 단순하지도 않다. 마치 천주름이 조금씩 펼쳐지는 것처럼 우아하면서도 다이나믹하다. 트릴과 꾸밈음, 음표 쪼개기로 변주가 진행되는데도 불필요한 장식이라는 느낌이 없다. 옥타브를 넘나드는 왼손의 화음은 오른손의 선율을 단순히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곡의 폭을 확장시킨다. 중간 중간 약간의 불협화음이 긴장감을 자아내고, 반복되는 부분이 돌아올 때마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음들이 조금씩 화려함을 더해가고, 조용히 숨죽이는 부분을 지나 마지막 코다에서 에너지가 최고로 올라갔다가 사라지듯이 해소된다.
이상한 말일 수 있겠지만 쇼팽의 곡에서는 중력에 맞서는 음들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처음부터 무중력의 공간에서 인간의 손길 없이 홀연히 생겨난 것 같다면, 쇼팽은 계속 아래로 떨어지려는 음들을 다시 높이 날려보내려는 것 같다. 이 인간적인 노력의 자취 때문에 쇼팽의 곡들은 아름답지만 슬프기도 한 게 아닐까. 연주자의 역할은 자신의 방식으로 최대한 가볍게 음을 계속 공기 속으로 퍼뜨리는 것이다. (말이 쉽지 당연히 잘 안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