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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Jul 31. 2022

마침내, 로마

유럽여행

(여행시기 : 2022.7)


로마는 ‘마침내’라는 수식어를 써야 할 것 같은 도시다. ‘마침내 로마에 입성한다’는 뭐 그런 느낌이랄까. 이번엔 여정 자체가 로마에서 끝나는 순서여서 더 그랬던 것 같다(귀국행 비행기는 비엔나로 돌아가서 타지만). 피렌체를 출발한 기차가 테르미니역에 들어서자 드디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와본 곳이 아닌데도.


로마를 설명할 수 있는 손쉬운 단어는 없을 것이다. 혼돈, 혼돈 그 자체인데 또 너무나 화려하고 장중한 곳. 날아오를듯한 바로크의 호화스러움에 르네상스의 균형감각과 로마제국의 엄격함이 겹치는 곳. 이런 점 때문에 프로이트는 로마가 마치 정신의 층들이 켜켜이 쌓인 무의식의 공간과도 같다고 썼던 것이겠지.



19세기 말 -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거대한 ‘조국의 제단’까지 여기에 가세한다. 베네치아 광장을 굽어보는 이 기념 건물을 여행자들은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자주 만나게 된다. 커다란 이탈리아 국기가 휘날리는 이 ‘조국의 제단’은 그 권위적인 느낌 때문에 어딘지 불편한 구석이 있는데, 생각해보면 콜로세움이나 판테온 역시 당시에는 권위와 권력의 상징이었을 터. 결국 어떤 것을 단지 감상의 대상으로만 삼으려면 거기에 투여된 욕망이 휘발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건지도.



로마에선 북쪽 베네토나 롬바르디아 지방과의 차이를 단번에 느끼게 된다. 일단 신호등이 제대로 달린 횡단보도가 없다. 인파에 떠밀려 걷다 보면 길을 이미 건넌 상태가 된다. 어디나 쓰레기가 나뒹굴어서 내가 젤라토 컵이나 생수병을 거기 보태는데 죄책감 없게 만들어준다(?). 고개를 들어보면 마치 맨해튼의 마천루를 중세로 타임워프 시킨 듯, 깎아지른 벽들의 웅장함이 감탄을 자아내고, 건물들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느라 목이 아프다. 오죽하면 내가 “여긴 눈높이를 기준으로 위는 아름답고 아래는 추하다”라고 했을 정도. 무슨 무슨 성당, 무슨 무슨 궁전이 정말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아서, 나중에는 뭔지 알아보는 것도 지치게 된다. 어쩌다 한 군데 있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도시 전체에 좍 깔려 있다.



이번 여행은 예전 여행과 계절이 같은데도 가는 곳마다 느낌이 달랐다. 고대 로마제국의 필터를 통해서 이곳을 먼저 접했던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바로크 예술을 더 많이 찾아다녀서인지, 곡선의 화려함이 눈에 더 들어왔다. 피렌체에 브루넬레스키가 있다면, 로마에는 베르니니와 보로미니가 있다. 하도 많아서, 이거 독점 업자 아냐? 했을 정도.



그리고 물론, 로마는 카라바조의 도시이기도 하다. 예전, 산 루이지 데이 프란세시 성당과 바티칸 미술관에서 이미 그의 대표작들을 감상한 터라서, 이번엔 보르게세 미술관의 작품들을 본 후 미술관 서점의 책 표지를 향해 간단히 인사만 날렸다. 안녕 카라바조. (보고 싶었던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은 아쉽게도 다른 미술관 전시에 대여되어 자리에 없었지만)



- 관광객들 상대로 사기치려는 사람들은 이번엔 다행히 만나지 않았다. 덩치가 좀 있는 T와 함께 다녀서인지, 그 사이에 민도가 올라간 건지.


- 예전에도 느꼈던 건데, 로마의 물은 깜짝 놀랄 만큼 차갑다. 이렇게 날씨가 더운데도, 수돗물이나 분수의 물에 손을 넣어보면 정말 시원하다. 이번에도 똑같은 걸 보니 내 기억이 맞구나 싶었다. 수원이 지하 아주 깊은 곳에 있는 걸까? 물을 다스리는 능력이 고대 로마의 선진 기술 중 하나였다는 걸 어디서 읽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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