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시기 : 2022.7)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로마에 도착한 후 “세상의 중심에 왔다”라고 썼다. 유럽중심주의의 극치인 발언이지만, 서구 문명으로 범위를 한정하면 굳이 반박할 필요는 없는 말이겠지. 무엇보다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유럽 전체에서 그런 인식이 보편적이었다는 거니까. 이탈리아 여행은 전 유럽 교양인들의 로망이자 필수코스였던 것이고.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는 솔직히 너무 재미없어서 읽다 말았지만(아니 소설가 맞아요?), 실제 로마에는 배경 지식이 없더라도 괴테의 말에 동의하게 만드는 아우라가 있다.
공부를 하다 보면 유럽인들이 지닌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에 대한 동경은 엄청난 수준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그리스 문화가 과거에 남겨졌다면, 로마 문화는 이후 유럽 세계로 이어졌다는 자부심이 있기에더 주목을 받는다. M. 칼리니스쿠는 바로 전 시대의 문화를 부정하기 위해 먼 고대의 문화를 소환했던 최초의 시대가 르네상스였다고 썼다. 하지만 르네상스인들이 ‘암흑기’라고 불렀던 그 중세를 이야기할 때도 사실 이탈리아 안의 성당 건축이 대표작으로 소환된다. 고딕 건축의 가장 화려한 정수는 프랑스에 있지만(샤르트르 대성당으로 대표되는), 시작은 이탈리아니까.
이탈리아엔 가장 초기 양식(원형 돔이 있고 외벽에 모자이크가 있는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성당)부터 가장 후기 양식(‘불꽃같은’ 과장된 장식이 있는 밀라노두오모)까지 유럽 성당 건축의 모든 역사가 다 있다.영국이나 독일에 있는 고딕 성당들은 솔직히 거대하기만 하고 아름답지 않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모든 건축물이 나름의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양식의 흥망성쇠라는 관점에서는 우열이 있다.
서양건축사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디테일한 지식은없지만..
한편으로는 괴테와 유럽인들이 몸담고 있는 서구문화가 철저히 ‘시각의 제국’이라는 걸 이탈리아 여행에서 자주 느끼게 된다. 고딕 성당의 거대한 첨탑이나 스테인드글라스도 그렇지만, 특히 환영의 극한을추구하던 바로크 예술은 ‘보이는 것’이 서구 문화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실감하게 한다. 성당이나 궁전 천정 어디나 빼곡히 그려진 천정화들을 보면 눈이 건물을 뚫고 무한히 상승하기를 원했던 유럽 문화의 욕망을 이해하게 된다. 그냥 쳐다보는 것도 목 아픈데 어떻게 저걸 다 그렸을까.
‘시각의 권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감각을 추구하자는 식의 글을 읽을 때마다 과연 특정한 감각에 특정한 정치적 의미가 있나 하고 시큰퉁했었는데,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그 말에 부지불식간에 동의하게 되는 것 같다. 그들의 도시에서는 삼차원의 현실이 원근법 속에 포괄되어 거대한 스펙터클로 변한다.
그 극단적 사례 중 하나가 로마의 산티냐시오 성당(Chiesa di Sant'Ignazio di Loyola a Campo Marzio)이었다. 이 성당이 유명한 것도 안드레아 포초라는 화가(이자 수도사)가 그린 천정화 때문. 예전 여행에서는 여력이 없어서 못 갔던 이곳을 이번에 방문할 수 있었다.
천정화는 고개를 들고 봐도 잘 보였지만, 더욱 잘 보기 위해 성당의 중앙 홀에 위를 향한 거울이 설치되어 있었고 은근히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줄을 서 있었다. 거울에 도착하니 1유로를 넣으면 조명이 밝혀진다는 안내문이 보였다. 성당 출입 자체는 무료니까 뭐 이 정도는. 돈을 넣으니 과연 천정이 더 환하게밝혀졌고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도 이때를 놓칠세라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 성당은 반종교개혁의 선봉에 섰던 예수회에서 설립한 곳으로, 포초의 천정화는 프로테스탄트의 반이미지주의와 대립되는 화려한 원근법적 환각의 극치를 보여준다. 건축물의 일부인 평면 공간이 트롱페이유 기법으로 그려진 그림 때문에 삼차원의 입체보였다. 지금의 시각으로 봐도 어디까지가 그림이고 어디까지가 아닌지 살짝 구별하기 힘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