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2022년 7월 4일, 비엔날레를 보러 베네치아에 도착.
어째서 이곳은 이렇게까지 그대로일까? 유럽의 도시들은 원래 잘 변하지 않지만, 베네치아의 ‘변함없음’에는 어떤 극단성마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묘하게도 거의 7년의 간격을 두고 베네치아에 세 번 오게 되었는데, 처음 왔을 때와 달라진 게 없다(배를 탈 때 마스크를 쓰라는 요구가 예외적으로 눈에 보이는 변화랄까… 그외에는 코로나의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이 지금 이곳에 떨어지더라도 차이를 거의 모를 것 같다. 바포레토가 삐걱거리면서 힘겹게 선착장에 정지하는 소리, 좁은 적갈색 골목에 널린 빨래들, 두칼레 궁전의 분홍빛 벽, 산마르코 광장의 날개 달린 사자상에 날아와 앉는 갈매기까지, 영원히 반복 상영되는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비현실적인 느낌.
하지만 밤의 베네치아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아침에는 아늑하다고 생각했던 호텔 주변 골목에 밤에 들어서려니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밤에 바포레토를 타고 운하를 지나가니, 낮에는 그토록 화사하게 보였던 건물들이 갑자기 무섭게 느껴졌다. 전에도 분명히 이랬을텐데 잊고 있었구나. 밤낮의 차이가 너무 커서 순간 혼란이 온다. 어둠 속의 발코니와 기둥들이 갑자기 마분지로 만든 것처럼 보일 때, 문득 깨닫는다. 이 도시는 매순간 건물이 낡아가고 땅이 침식되는 현실의 공간이다! 물에 가라앉고 있는 베네치아… 이곳은 변하지 않는 장소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것처럼 꾸민 연극무대인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도시 전체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마술사의 공연장처럼 느껴졌고, 묘하게 마음이 어두워졌다.
그렇다면 결국, 환상의 필터를 통하지 않고는 시간을 정지시킬 수 없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토마스 만이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 영원한 아름다움의 장소로 베네치아를 고른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원하다는 것은 곧 삶의 부정이고 죽음의 동의어니까. 토마스 만도 이 도시에서 어쩌면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토마스 만은 리도 섬에서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썼다고 한다. 그가 묵었다던 호텔, 그리고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이 동명의 영화를 촬영했다던 Hotel des Bains 앞에, 7년 전에도 갔었는데, 이번에도 가게 되었다. 일부러 찾아간 건 아니고 베네치아에 처음 온 T에게 리도섬을 보여주는 길에. 호텔과 해변이 바포레토 정류장에서 가까워서 가기가 어렵지 않다. 바로 7년 전에도 이렇게 석양 무렵에 리도섬에 갔는데, 역시나 반복되는 영화 속에 있는 느낌이다. 그때 문 닫힌 채 방치되어 있던 호텔이 아직도 그 상태인 걸 보고 놀랐다. 이곳에서는 폐허조차도 정지되어 있구나. 베네치아를 시간이 멈춘 도시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그대로 두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베네치아 본섬에서는 모든 것이 물 위에 흔들리는 느낌이어서, 리도 섬에 발을 디디면 상대적으로 안정감이 느껴진다. 여기도 섬이긴 마찬가지지만, 길이 널찍한 데다 차도 다녀서 일반적인(?) 육지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리도섬에서 배를 타고 리알토 다리 근처에 내려서 잠시 구경하다가, 다시 산타 루치아 역 근처의 호텔로 돌아왔다.
- 예전엔 시간이 빠듯해서 가보지 못했던 두 장소,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과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이번에 가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하얀 벽과 장식 없고 조용한 내부 공간은 몰아닥치는 자극에 지친 여행자의 신경을 쉬게 해 주었고, 종탑 위에 올라서 본 풍경은 고요하게 아름다웠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간 것은 조르조네의 <폭풍>을 보기 위해서였다. 생각보다 크기가 작았고, 다른 작은 크기의 조르조네 작품들과 함께 있었다. 이 시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작품은 어쩐지 베네치아와 안어울린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