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요법하는 엄마가 딸의 생일을 맞이하는 태도
오늘은 둘째 아이의 열세 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오늘로써 우리 집에는 제대로 된 10대가 두 명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나이가 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제 식탁의 역할과 음식의 메시지도 한 단계 바뀌어야 하는 시점이라는 뜻처럼 느껴집니다.
저희 집에서는 생일만큼은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 위주로 식단을 구성합니다. 제가 평소에 먹지 않는 재료라도, 선택하지 않는 메뉴라도 그날만큼은 기쁘게 사고, 정성껏 만듭니다.
저는 홈메이드라도 케이크도 먹지 않고, 크림이든 토마토 소스든 밀가루 파스타를 먹지 않습니다. 식이요법 때문에 끊었거든요. 오늘의 홈메이드 바닐라 케이크와 연어 크림 파스타는 생일을 맞이한 아이를 위한 음식이었습니다. 다만 에피타이저로 준비된 양고기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저를 위해 조금 파스타에 쓸 연어를 떼어서 연어 구이도 함께 준비했지만, 양고기를 먹고 나니 연어는 굳이 손이 가지 않더군요.
여기서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설명은 "부모가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상황을 조금 다르게 해석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 선택은 식단 이탈이 아니라, 엄마의 좋은 선택입니다.
식단은 단순히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느냐에 대한 반복된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항상 고정되어 있을 때보다, 의도적으로 흔들릴 때 더 강하게 각인됩니다. 아이의 생일에 제가 먹지 않는 음식을 식탁의 중심에 둔 것은 제 식단 철학을 버린 것이 아니라, "이 식단은 가족과 아이들을 중심에 둔다"는 엄마의 마음으로 한 선택이었습니다.
10대는 통제에 예민하고, 설명보다 경험에 반응합니다.
"엄마는 늘 자기 방식만 고집해"라는 인식 대신 "엄마는 중요한 날엔 나를 중심에 둔다"는 경험을 남기는 것. 이것은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위한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365일의 식단 중 단 하루를 의도적으로 열어두는 경험은 아이에게 이렇게 전달됩니다. 원칙이란, 사람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기 위한 기준이라는 것. 그리고 그 기준에는 예외를 설계할 수 있는 힘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저는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지만, 그 식단이 가족보다 위에 놓이게 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음식이 관계를 무너뜨리는 순간, 그 식단은 더 이상 건강하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1년에 한 번, 아이의 생일에는 저희 가족이 먹지도 않고 사지도 않는 음식이 식탁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 하루는 제가 흔들리는 날이 아니라, 제가 어떤 부모인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식단은 규칙을 지키는 능력이 아니라 가족과 아이들을 중심에 두는 능력에서 완성되는게 아닐까요?
십대가 두명에다가 아직 5살 7살 아들들까지 저는 아직도 갈길이 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