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육아의 마지막 반복, 그리고 시작된 빈 시간

오늘 막내가 처음으로 학교에 갔다.

15년 동안 네 번 반복해온 일을 마지막으로 한 날입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학교에 보내는 일.

한명만 키우는 사람이라면 5년 안에 끝낼 일을 저는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긴 했지만 거의 쉼 없이 15년 동안 해왔습니다. 아이 낳고, 기르고, 먹이고, 씻고, 가르치고 보내는 일로 정말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혼자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손 씻고 친구들과 어울릴 막내를 떠올리니 이상하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아이들의 인생도 내 인생도 한 챕터가 지나갔구나."


남편과 둘이서 한 팀이 되어 참 잘 키웠습니다

시댁도 친정도 다 한국에 계십니다. 아이가 아플 때, 급하게 일이 생겼을 때, 도와줄 사람이 근처에 없었습니다. 남편과 저 둘이서 한 팀이 되어 지금까지 네 아이를 키워왔습니다. 때론 힘들었고, 때론 지쳤지만, 그래도 우리 참 열심히 잘 키워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만큼은 우리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진짜 잘했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오늘

남편과 저는 그동안 "아이들 학교 가면 이거 하자, 저거 하자"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왔습니다. 가까운데 산행도 가고, 운동도 하고, 취미도 찾고, 둘이 데이트도 하고. 그렇게 미뤄뒀던 리스트가 꽤 길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날이 온 오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뭔가를 '시작'하기보다는 그냥 멍하니 앉아 쉬면서 집에서 둘이서만 있고 싶었습니다. 지난 15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펼쳐질 시간이 막연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8시 45분부터 오후 4시까지, 이 시간을 어떻게 채울까

앞으로 아침 8시 45분부터 오후 4시까지. 이 시간 동안 40대가 넘은 부부는 어떻게 시간을 살아가면 좋을까요? 저희는 돈도 많지 않고, 시간적 자유가 완전히 생긴 것도 아닙니다. 남편은 다쳐서 지금 병가 휴직 중이고 치료도 계속 받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할 때보다 지금은 조금 더 함께 집중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을 글로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단기, 중기, 장기 계획을 세워 봅니다.

[ 단기 계획 - 1~3개월 ]

✤ 신체적: 무리하지 않는 운동, 산책, 공기 쐬기

남편은 치료 중이고 저도 체력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창한 운동 계획보다는 매일 조금씩 걷고, 공기 쐬고, 몸을 움직이는 시간을 만들려고 합니다. 일단 3개월 동안은 매일 30분 이상 함께 산책하는 것을 목표로 하려고 합니다.

✤ 정신적: 공부, 기록, 배우는 시간

늘 미뤄뒀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기록하고, 배우고, 쓰는 루틴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 영적: 말씀과 기도, 조용한 사색

매일 묵상을 하지만 정신없이 살다 보니 깊게 하지 못하고 더 깊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조용히 앉아 깊은 대화의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사색하는 시간을 다시 찾고 싶습니다.

✤ 가족·부부: 대화, 함께 걷기, 관계 회복

15년 동안 아이들을 중심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부부 관계를 다시 돌아볼 시간입니다. 함께 걷고, 대화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만들려고 합니다.


[ 중기 계획 - 6개월~1년 ]

✤ 경제적: 당장 돈이 되지 않아도 가능한 작은 비즈니스 공부

지금 당장 돈이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작은 비즈니스를 공부하고, 시도해보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배워가려 합니다. 6개월 안에는 최소한 하나의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 집: 정리와 청소, 공간 재정비

아이들이 자라면서 집도 달라져야 합니다. 공간을 재정비하고, 정리하고, 저희 부부에게 맞는 집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1년 안에 집 전체를 정리되고 깨끗해진 가족 중심의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 목표입니다.

✤ 자연: 워싱턴주의 산과 숲을 조금씩 걸어보기

저희가 사는 워싱턴주에는 아름다운 산과 숲이 5천개가 넘습니다. 그동안 바빠서 못 갔던 곳들을 천천히 걸어보려고 합니다. 1년 안에 워싱턴주의 명소 20곳을 가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 장기 계획 - 2~3년 ]

✤ 영적 성장과 내면의 안정

2~3년 후에는 제 내면이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되고 성숙해져 있기를 바랍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고,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고 싶습니다.

✤ 부부만의 라이프스타일 완성

아이들 중심이 아닌, 저희 부부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완성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 우리가 편안한 것, 우리가 행복한 것을 찾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SNS: 유튜브, 인스타를 소비가 아닌 '공부'로, 그리고 영향력으로

SNS를 무작정 소비하는 대신, 배우고 기록하고 성장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2~3년 후에는 제 기록이 쌓여서 절실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작은 영향력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로 적어야 계획이 됩니다

이 모든 계획을 머릿속에만 담아두면 흐릿해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 적어봅니다. 단기, 중기, 장기로 나누어 보니 조금 더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대단한 계획은 아니지만, 이 시간들을 넷플렉스와 함께 정신없이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부부가 함께 이 시간을 고민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참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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