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굴 놀이터-Ant City
행복 찾기 출발
개미굴 놀이터
어릴 적 살던 동네
"친구야, 놀자!" "친구야, 놀자!"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동네 골목길은 또 어찌나 구불구불했던지 모른다. 세탁기, 자동차 등이 부의 기준이 되는 시절이다. 아파트 및 고층빌딩 보기가 하늘에 별따기이다. 만약 있었다면 고층 주민들은 이곳을 개미굴로 보았을지 모른다. 사계절이 몇 십 번을 돌고서야 지금 난 그곳을 개미굴로 본다. 대문을 나서면 앞집대문이 보이고 살짝 걸으면 옆집대문이 보인다. 눈을 감고 잠시 떠올려보니 집문 나서자마자 보이는 대문만 다섯 개다. 몇 발자국만 걸으면 바로 한 개가 더 보인다. 빨강, 초록, 파랑 문들이다. 복도식, 계단식처럼 형태에 따른 어휘가 있는데 이 동네를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딱히 꽂히는 어휘가 생각이 안 든다. 그냥 개미식이라고 해야겠다. Ant City라 해야겠다. 인구밀도면에서는 도시라 지칭해도 손색없는 거 같다. 몇 발자국 걸을 때마다 어른 흑개미들과 백발의 흰개미들께 인사하기 바쁘다. 개미굴 한쪽으로 흐르는 하수도 소리와 악취냄새는 코를 찌른다.
그렇게 모든 감각이 머물러 있던 도시였다.
여기가 나의 첫 놀이터였다.
"친구야, 놀자!" "친구야, 놀자!"
대문 밖에서 친구가 나를 부른다. 햇 병아리인 황개미 둘이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 나라는 존재를 찾아준다는 건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이것이 행복이란 걸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듯싶다. 이 이야기는 그런 나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행복은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옛날 그곳에도 행복은 존재했다. 그 행복을 난 어디에 버렸는지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이 도시에서부터 그 행복 찾기를 출발한다.
흑백으로 존재하였던 나의 과거에 온갖 색들로 채색을 시작하며 그 행복의 싹을 틔우려 한다.
학교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천천히 걸어도 고작 10분이다. 집과 학교의 중간 위치에 있는 작은 동산이 있다. 잠시 들러도 큰 지장이 없다. 그 초록 동산에 올라 개미굴을 바라본다. 동산이 높진 않다. 그래도 살짝 높은 곳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제법 개미굴처럼 보인다. 따뜻한 햇살이 그땐 마냥 좋았다.
사람 세 명 정도 다닐 수 있던 좁은 앞마당에 큰 다라통이 있다. 물을 가득 채운다. '풍덩!' 빠진다. 담벼락은 세상이 벌거벗은 나를 못 보게 해 준다. 앞마당보다 뒷마당이 넓다. 작은 화단도 있다. 그곳에 사루비아가 빨갛게 피어있을 때면 '쪽! 쪽!' 뽀뽀를 한다. 비가 온다. 숨을 쉬러 나온 지렁이들은 비가 그친 뒤 다시 집으로 찾아가기가 쉽다. 뒷마당 뒤로는 바로 산이다. 어머니께선 장마 때마다 산사태가 날까 봐 늘 걱정하신다. 그러나 난 비 오는 날 더 신난다. 근데 어머니만큼이나 장맛비를 걱정하셨을 분이 있다. 그 산 중턱에도 개미굴 길이 있고 그곳에도 집이 있다. 그 집엔 대문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이분들의 걱정은 안중에도 없던 그땐 마냥 좋았다.
담벼락이 날 지켜주었던 걸까? 내가 세상을 못 보게 나의 벽을 쳤던 걸까?
요즈음 지렁이들은 갈 집이 없나? 갈 방향을 잃었나?
내가 자는 방엔 비밀의 방이 하나 더 있다. 짙은 갈색의 여닫이 문을 열면 갈색의 계단이 보인다. 그곳을 오르면 나타나는 비좁은 다락방. 온갖 장난감들과 관심도 없는 물품들이 가득한 곳이다. 다락방 끝에 작은 창문이 있다. 그 사이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빛이 들어올 때가 있다. 그 빛줄기는 눈에 보이지 않던 먼지가 존재함을 알려준다. 쥐들은 뭐가 즐거운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천장을 놀이터 삼는다. 쥐가 뛰면 천장을 향해 테니스공을 던진다. 적외선 안경이 없던 난 소리로 쥐의 위치를 감지하여야 한다. 테니스공은 그런 용도로 쓸모 있다. 어느새 뒷마당에 쌓인 낙엽들은 사루비아의 이불이 되어 준다. 뜨거웠던 여름날 열정의 붉은빛은 깊은 잠을 든다. 먼지를 마셔도 그땐 마냥 좋았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걸까?
무엇이 쓸모를 결정지을까?
이 도시에 함박눈이 '펑! 펑!' 쏟아진다.
누군가는 그 순간 눈물을 '펑! 펑!' 쏟아내고 있을지 모른다. 난 눈이 와서 좋고 그 누군가는 힘들어서 눈물을 흘린다. 내가 힘들 땐 그 누군가가 웃고 있길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동네사람들의 빛이 되어주던 가로등불이 몇 개 있다. 그중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가로등으로 나간다. 어느새 바닥에 눈이 쌓였다. '와! 아무도 안 밟았다. 내가 처음이다.'라며 그 도시에 발도장을 찍는다. 새하얀 바닥에 내 어린 시절 발자취를 남기며 가로등 곁에 도착한다. 그 해 겨울 그 장관을 바라본다. 난 충분히 만끽하고 들어가 몸을 녹인다. 세상은 내가 들어갈 때까지 내 발자국을 다 지우지 않으며 배려해 주었나 보다. 다음 대기순번자에게 경험의 기회를 주려고 다시 하얗게 색칠한다. 모두의 순서가 끝났다. 다음날 다른 색들로 색칠을 다시 한다. 다 타버린 연탄재와 간혹 소변의 파임이 보인다. 하얀색을 긁어내기도 하며 모두가 하나 되어 동네를 색칠한다. 우린 그렇게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추워도 그땐 마냥 좋았다.
세상의 배려, 하나 된 우리, 연결된 우리
그렇게 봄은 또다시 찾아왔다. 그 동네에 늘 울려 퍼지던 "친구야, 놀자!"는 초6학년이 될 때부터 들리지 않았다.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면서 Ant City는 무너졌다. 개미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골목길은 부분적으로 끊겼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길은 새로운 길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졌다. 그 개미들은 또 다른 도시에서 열심히 살아간다.
노랑은 검정이 되고 검정은 하양이 된다. 그리고 하양은 내 마음속에 무지개색으로 된다.
아무도 못 보던 개미굴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 복잡한 골목길들처럼 내 안이 구불구불했다.
그걸 엉킨 실타래라 생각하여 풀려고만 했다.
그러나 복잡해 보이는 개미굴은 꼬여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