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놀이 -기억과 상상력

#1 i'm 변화한다.

by 이별난

'이곳은 어디지?' 처음 보는 곳이다. 마치 영화 *앤트맨에서 보았던 양자영역 안 같다. 몽환적이다. 한 갓난아기가 뒤집더니 기고 걷고 뛴다. 이 과정이 몇 초 안에 이루어졌다. '뭐야? 영화에서 엄청난 괴생명체들이 나오던데 진짜 그 안에 온 건가?' 순식간에 성장한 이 아인 성인이 된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등을 보이고 있다. 나를 감지했는지 뒤돌아본다. 집중하며 바라보는 그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난 그 즉시 온몸이 굳어버린다. 아름다운 성인의 몸에 5살쯤 된 아이 얼굴이다.


*앤트맨 : 마블코믹스 캐릭터. 신체를 크고 작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핸드폰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20OO 년 O월 OO일 드디어 해냈다. 나는......" 주절 주절대며 출근준비를 한다. 씻고 나와 잠시 침대에 누워 노트를 편다. 핸드폰에 설정한 5분 타이머를 켜고 일기를 쓴다. 그 일기의 날짜는 항상 같은 날이다. 일기장 제목 자체가 20OO 년 O월 O일 미래 일기장이다. 타이머가 종료될 때까지 쓴다. 끝부분엔 오늘 날짜를 쓰고 미래의 나를 응원하는 글을 쓴다. 미래의 내가 줄~줄 쓰고 현재의 내가 몇 줄 쓴다. 5분 타이머는 0초가 된다. 그 순간 쓰던 문장을 마무리하고 마침표를 찍는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그렇게 만나게 한 후 출근길을 나선다.


집을 나서며 이어폰을 꽂는다. 노래를 재생시키고 춤을 추며 계단을 내려간다. 이 새벽엔 사람이 없어서 춤추기 참 좋다. 06시에 어김없이 버스가 도착하고 올라탄다. 버스 안에서 6년 전 보았던 저 장면을 생각해 본다. '저 꿈같은 장면들은 나에게 무엇을 의미했던 걸까?'를 생각한다. '초등학생 때 찰흙으로 내가 원하는 모양을 만들었고 레고도 내 마음대로 만들었잖아. 앤트맨은 크기도 마음대로 조절하잖아. 심지어 난 Ant City 출신이잖아.' 그런데

나는 왜 안 바뀌지? 사람은 왜 쉽게 안 바뀌지?


기억 ( Memory )


일하는 내내 나만의 결론을 내리려고 생각했다. 내린 결론은 이 문장이었다.


무언가 바꾸려면 이전 형태가 보여야 가능하다.
사람이 변하려면 기억이 존재해야 가능하다.


이 결론을 내리고 있는 사이에 드디어 퇴근 시간이다. 오늘은 인터뷰가 있는 날이라 좀 서둘러서 그런지 여유롭게 정시퇴근을 할 수 있다. 인터뷰하는 분도 나도 처음 하는 인터뷰이다. 약속을 안 해도 늘 만나던 장소에 가면 그분을 만날 수 있다. 역시나 그분은 그 자리에 계신다.


일하면서 난 '나를 바꾸려면 나의 이전 모습을 알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런데 내가 기억 못 하는 나의 모습을 알고 계신 분이 이 세상에 한 분 존재하고 계셨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는 이미 이미 돌아가셨다. 이젠 지구상에 딱 한 분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나의 발길질마저 느끼셨던 분이니까 말이다.


난 기자가 되어 인터뷰 놀이를 시작한다. 난 준비한 인터뷰를 하기 전 긴장을 풀어드릴 겸 인터뷰의 목적을 설명드리고 어떤 질문을 드릴지 짤막하게 설명드린다. 어머니는 이런 상황극을 굉장히 멋쩍어하신다. 그 모습이 좋아 보였다. 어머니는 이 상황극의 주인공이시다.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첫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뱃속에 있을 때 어땠습니까? "

"발길질은 많이 했나요? 셌나요?"

"특별히 드시고 싶으셨던 음식은? 감정상태는?"


갑작스러운 나의 폭풍 질문에 말문이 막히신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였다. 난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을 잘하시는 분인지 그때 알았다. 내 질문보다 그냥 당신의 이야기보따리를 푸는데 신나 하셨다. 그때 알아차렸다. '어머니야말로 당신의 모습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구나.' 어머니가 보따리를 푸시는 동안 난 목적을 바꾼다. 난 더 이상 질문드릴 필요성을 못 느낀다. 난 목적을 '그냥 듣자.'로 바꾼다. 그렇게 인터뷰장은 연설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날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감사함이다. 힘들었던 어머니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날 얼마나 지켜주고 계셨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한 인간으로서 가지는 인생의 무게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은 그날 연설 중 인상 깊었던 두 가지 이야기이다.


갓난아기였을 때 난 연탄가스를 마시고 온몸이 굳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옆집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다 오셔서 엄청 난리가 났던 적이 있다고 하셨다. 어머니께선 날 어루만지고 어루만졌다고 하셨다.


한 번은 떠나가시려고 보따리를 싸서 버스정류장에 서 계셨다고 한다. 버스정류장에서 이도저도 못 움직이며 가녀린 여자의 힘으로 지구 중력을 온전히 다 받고 있으시던 어머니를 그려보았다. 난 그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앞에 아무 말 없이 치맛자락을 끌어 잡던 내 모습에 어머니는 그 엄청난 중력을 이겨내기 위해 뼈와 살을 내주며 한 발을 떼어내셨다.


그렇게 저녁식사가 끝났다. 첫 번째 목적을 기억하고 바꿨더니 내 삶에 더 큰 것을 얻게 되었다. 어머니는 누구에게도 말 못 하는 얘길 하시며 신나 하셨고 난 어머니의 사랑을 맘껏 가지게 되었다. 난 그 후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고 싶을 때 저 두 이야기를 기억하며 상상한다.


상상력 ( Imagination )


근력, 시력, 청력 등의 능력들은 인간의 한계치가 있다. 제아무리 청력이 좋다 한들 지구 반대편 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제아무리 시력이 좋다 한들 우주를 볼 수는 없다. 인간의 힘만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상상력-이 경이로운 능력-의 한계치는 실로 어마하다.


변화는 모습을 봐야 가능하다. 상상력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상상력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변화를 가능케 한다.


언젠가 한 번 지인에게 이런 말을 했다."자, 지금부터 내가 공기로 토끼를 만들게."라며 마법사 흉내를 냈다. "보여?"라는 말에 보인다고 하길래 "자! 그러면 이제 이걸 기린으로 바꿔봐." 하면서 조심스레 건네주었더니 지인도 마법사가 되었다. 인간의 특권을 사용하고 키우면 못 보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는 거 아닐까?

'기린 만들어야지'라고 하면 뭐가 이리도 쉬울까!
'날 바꾸고 변화시켜 봐야지'라고 하면 왜 그토록 잘 안될까?


내가 뱃속에 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기억할 수 없는 그 10개월을 난 상상 해본다. 수정이 이루어진다. 난 생성된다. 생존하려고 발버둥 친다. 진화하려 한다. 난 생존과 진화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상상력을 키우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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