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설마에 선 사람들
빛의 뿌리 #01 존경
8화▲
설마에 선 사람들
크리스마스엔 사랑과 희망이 가득하다. 한쪽에선 사랑하는 연인들의 포개진 입술에서 하트가 피어오르고, 다른 한쪽에선 아이들의 끝없는 상상 속 루돌프가 밤하늘을 수놓는다. 이 축복의 날, 아이들의 마음에 노래가 울려 퍼진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주신대~♬
산타행사를 하면서 즐겁지 않아 보이는 아이를 볼 때가 있었다. 수업 때 그 누구보다 활발한 아이였다. 의아했다. 확신할 순 없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니, 어린이날이 아니라 크리스마스라 그러는 듯했다. 크리스마스만 되면 아이들에게 '울면 선물을 못 받고, 착한 일을 해야 선물 받는다'라는 애매한 조건이 따라붙는다. 착한 일을 유도하는 의도는 좋으나 조건부 선물 같아 마음에 걸린다. '어떤 아이에겐 치명적일 수 있구나. 자신은 울어서, 착한 일을 하지 않아서 선물을 못 받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있을지도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에 계획안을 수정했다.
'야호! 크리스마스다. 아! 그런데 나 엄마, 아빠 말 잘 안 들었는데... 어제 동생하고 싸웠는데... 혼나고 속상해서 울었는데... 설마... 선물 못 받을까?'
이런 아이에게 기회를 주자는 의도였다.
11월이 되면 크리스마스에 맞춰 착한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려고 엄마, 아빠를 도울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 후 작품사진과 함께 아이의 좋은 생각을 글로 작성한 계획안을 원장님 메일로 보냈다. 12월 계획안이 각 가정에 도달했을 때, 파일철에 잘 보관되는 것보다 거실에서 돌아다니길 바랐다. 그래야 무심코 치우려다 다시 한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성스럽게 정리한 파일은 나중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지만, 현재는 크리스마스가 중요하다. 계획안은 또 출력하면 된다. 크리스마스에 '착한 일을 안 해서 난 선물 받을 자격이 안돼'라는 생각을 하는 아이가 없었으면 좋겠다.
한 유치원 수업 때 있었던 일이다. 본활동인 조립이 들어가고 한 아이 한 아이의 사소한 생각마저도 다 담으려 했다. 계획안 글에 녹여내야 하기 때문이다. 분주하게 돌아다니다가 한 여자아이 앞에 앉았다.
"엄마, 아빠 위해 뭐 도와드릴 거야?"
아이는 해맑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빠는 하늘나라에 가셨어요."
아이의 대답에 미안함, 안타까움, 그리움, 사랑, 감사 등 많은 감정이 교차되었다. 마음이 뭉클했다. 이 날은 나의 아버지가 오랜 투병생활을 끝마치고 하늘나라에 간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몇 초동안 감정이 복받쳐서 멍하니 있었다. 잠시 후 난 미소 지으며 화답했다.
"선생님 아빠도 얼마 전 하늘나라에 가셨는데..."
뭐라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그 순간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려 했다.
잠시 후 화제를 바꾸며 엄마를 도와드릴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이는 설거지하고 힘들어 보이는 엄마를 위해 안마도구를 만들거라 한다. 이 아이의 따뜻한 모습에 울컥해서 다른 아이들 몰래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아이와 함께 하며 행복했을 아버님의 모습, 아빠를 그리워할 아이의 모습, 이 아이를 바라보며 힘낼 어머님의 모습이 그려지니 가슴이 먹먹했다.
아이의 생각이 작품에 잘 녹아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조했다. 작품은 간단했다. 긴 플라스틱 막대모양에 구멍이 뚫린 프레임형태 교구였는데 끝에 넓적한 모양의 부드러운 고무를 연결했다. 부드럽게 엄마를 안마해 주려는 것이다. 고무 색상도 따뜻한 주황색이다. 또 울컥한다. 그 작품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위대한 예술작품이 되었다. 그 아무리 복잡하고 정교한 기술이 녹아든 장인의 작품이라도 이 순간 아이 작품보다 나은 것은 없었다.
이 날, '이 어린 나이에 부모가 다 있겠지.'라는 생각이 사라졌다.
빛의 뿌리 #01 설마에 선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바라본 발 밑에 존경이 뿌리내린다
설마... 하는 예기치 않은 상황은 인생에 언제든지 올 수 있다. 난 이들을 '설마에 선 사람들'이라 표현한다. 고개를 살짝만 돌려도 그 설마에 서있어도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는 이들이 보인다. 전임 산타인 체육선생님의 울퉁불퉁 근육 앞에 주눅 들어 떨궜던 고개는, 이들의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마음 근육 앞에서 숙였어야 한다. 첫 번째 빛의 뿌리는 설마에 선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바라본 발 밑에 존경이 뿌리내린다.
▲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