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놀이터-Viva la Vida
일원화의 시작
가상 놀이터
부정적 사용: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줄어드는 곳
긍정적 사용: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는 곳
부정적 사용
핸드폰이 0%가 되어가면 걱정할 때가 많다. 머릿속에 폰 충전 할 생각으로 가득 찬다. 충전이 내가 할 일의 0순위를 차지한다. 유튜브 시청을 못한다. 전화를 못한다. 카톡을 못한다. 이런 결과가 뻔히 보인다. 불안해진다.
지금 그때 날 바라보니 다른 이유도 있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날 찾는 연락을 못 받게 될까 봐.'라는 마음도 많이 있었던 거 같다. 지인에 대해 기피하면서 그들은 원하고 있는 모순된 마음 상태였다. 한마디로 난 외로워했었다. 정작 난 누군가가 날 먼저 찾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편에 자리 잡아있었다. 톡소리에 누구인지 기대하면서 봤다가 아니면 실망한 기억들이 난다. 내가 먼저 하면 되는데 연락을 하진 않았다. 그만큼 외롭고 감정표현에 서툴렀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내 곁엔 그 틈을 인터넷과 게임이 친구로 자리 잡았다. 이젠 지인들이 연락 안 해도 된다. 내겐 연중무휴 날 기다리는 친구들이 생겼다. 이젠 지인들 톡이 화면에 뜨고 전화표시가 뜨면 짜증 날 때가 있다. 전화를 끊어주길 바란다. 이젠 지인들이 날 방해하는 느낌마저 든다. 두 눈과 두 귀 그리고 손가락 하나 까딱댈 힘만 있으면 된다. 이제 이곳이 나의 놀이터가 되었다. 이렇게 쉽고 재미있는 놀이기구가 있을까. 0%가 되는 것만 신경 쓰면 된다.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고 웃게 만들어주고 재밌게 만들어준다. 또 많은 정보도 주니 너무나 좋다.
밤새 본 후 피곤해서 다음날 활동에 지장을 준다. 게임 내내 계속되는 짜증, 남 탓을 한다. 한참 놀다 보니 이 친구들은 날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지치는 걸 걱정도 안 한다. "미안해!" 한마디 안 하는 이 친구들과 난 늘 같이 논다.
누군가와 소통을 할 때가 되면 내 표현은 5G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버퍼링이 걸린다. 즉각 반응하던 인터넷에 익숙해져 있는 난 예상치 못한 상대의 반응에 당황하기까지 한다. 난 상대의 반응에 갈피를 못 잡는다. 소통이 너무나 힘들다.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불편하고 힘들다.
그러나 난 또 인터넷과 게임을 하루종일 한다. 나한테 질문할 시간이 없다.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없다.
감정 놀이터
내면
많은 감정들이 있는 곳
연속화의 시작
어느 날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다. 연속화를 열심히 내면화하고 있던 중이라 그 나뭇잎의 연속됨을 그리며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지나가는 개, 달리는 차, 스쳐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했다. 내가 집중해서 보고 있는 이 모든 장면들이 내 실재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나의 지금 이 순간은 내가 바라보던 모든 것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서 완성된다." 심지어 느껴지는 바람마저 그래야 한다. 그리고 그 장면은 과거로 사라지고 미래의 장면이 나타난다. 우주만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그때 내 나름대로 해석하게 되었다. 그 순간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그 이유는 세상이 너무나 경이로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원화가 시작되었다.
내 생각의 변화 흐름
1. 일체화 나는 나
2. 이분화 나를 너로 부르기 시작함
3. 연속화 무수한 나를 보기 시작함
4. 일원화 내가 보는 실재 세상에 우주만물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기 시작함
그러다가 온 곳이 감정의 놀이터였다. '우주만물이 연결되어 있다면 감정도 연결되어 있다.'라는 생각을 해봤다. 행복과 불행에 대한 숨바꼭질 생각을 뒤집어 보았다.
숨바꼭질
행복과 불행 사이
무게가 달라도 균형을 맞출 수 있다.
내 안의 두 감정과 숨바꼭질 놀이를 한다. 불행은 나의 술래이고 난 행복의 술래이다. 행복과 불행사이 어딘가 위치해 있는 내가 이 놀이에서 이기려면 행복을 먼저 찾아야 하는데 잘 안된다. 더군다나 난 이 놀이를 못한다. 초등학생 때 했던 거 보면 안다.
그런데 내 위치가 어디지?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놀이터는 내면이다. 내면의 내 위치를 잡아야 한다. 카카오택시, 내비게이션처럼 자동으로 위성이 잡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불행이 날 잡거나 내가 행복을 잡을 땐 그곳이 내 위치이기 때문에 알게 된다. 내 위치는 그렇게 불행 끝이거나 행복 끝에 가야만 알 수 있다. 중간 위치일 때일 때는 잘 안 보인다. 그걸 알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이 놀이를 잘할 수 있을 텐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삶이라는 시소는 대부분 불행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다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소의 가운데로 모이면
무게가 달라도 균형을 유지하기 쉽다.
.
.
.
.
그러면 이 숨바꼭질을 끝낼 수 있다.
행복을 부르는 주문을 외우자!
ㅡ따르르릉! 따르르릉! 핸드폰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20OO 년 O월 OO일..... 드디어.... "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내가 늘 떠들던 게 재미있으셨나 보다.
"하 하"
잠시 누워 노트를 편다. 5분 타이머를 시작한다.
20OO 년 O월 OO일 나는 드디어 행복을 찾았다.
2023 년 10월 19일 오호. 축하! 축하! 고생했고 애썼어.
이어폰을 꽂는다. 노래를 재생시키고 춤을 추며 계단을 내려간다. 횡단보고 앞에 도착한다.
신호등이 방금 빨간불이 된 거라 행복을 느낄 시간이 충분하다. 주문을 외운다.
'행복 한 번 느껴볼까!'
눈을 감으며 양팔을 벌리고 숨을 들이마신다. 모든 손가락들을 서로서로 비비기 시작한다. 그리고 상상한다. 연탄가스 마시고 몸이 굳을 때 날 어루만져주시던 어머니의 손길과 버스정류장에서 뼈와 살을 내주며 발을 떼어낸 어머니의 마음을 느낀다. 손가락의 움직임이 연속되는 걸 상상한다. 눈을 서서히 뜨며 눈앞에 펼쳐진 나의 실재 세상을 바라본다. 이 장면에 보이고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나의 바로, 지금, 이 순간임을 알아차린다. 모든 것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금 자리에 존재해야 이 장면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내 세상과 연결됨을 생각한다. 내가 시소의 가운데-세상의 중심-라 생각한다. 난 오른쪽을 본다. 미래라 생각하며 말한다. "가자! 행복아!" 다시 왼쪽을 본다. 과거라 생각하며 말한다."가자! 불행아!" 주먹을 세게 쥔다. 동시에 심호흡을 하며 몸 쪽으로 끌어당긴다.
초록불이다. 앞이 열렸다.
난 벅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어느새 벅참에 눈시울은 젖어있다.
이어폰에 즐겨 듣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Viva la Vida~~~♬ ( 인생이여 만세! )
출근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의 목적지는 나의 지금 놀이터 중 하나이다.
Se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