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석 게임 24_개미굴
대문을 닫았다.
초등학교를 졸업 때까지 살았던 곳이
35년 만에 눈앞에 펼쳐졌다.
늘 같은 거리를 두고 서있는 담벼락들.
이리저리 제멋대로 뻗친 것 같지만,
결국 돌고 돌아 연결되어 있는 골목길들.
이 좁은 골목길 따라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순식간에 동네 구석구석까지 보이는
한 장의 개미굴 마을지도가 그려진다.
이곳에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과 나의 발자국이 이 길 위에 얽히고설켜있었다.
그해 재개발이 되며 허물어지던 그 순간까지 그랬다.
늘 기억과 감정의 시작엔 초등학교 1학년인 내가 서있다.
7세 전은 사진을 아무리 봐도 기억이 안 난다.
여기에 내가 걷던 길과 먹고 자던 방 한 칸이 있었다.
그 길과 방의 형태가 서서히 내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그 골목의 결이 그대로 마음속으로 이어져,
내 안에도 또 하나의 개미굴 마음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에 뻗는 여러 감정의 길들.
그 길 따라 놓인 감정의 방들.
여기서 뻗어나간 삶의 기억.
그 길 따라 머물던 이 방 저 방이 보인다.
기억과 감정의 많은 모양들이 그 곳곳마다 묻혀있다.
난 들어가고만 싶은 방을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얽히고설킨 이 골목길 사이 어딘가 서있을 때면,
난 새벽에 기대 서서 아침이 오길 기다린다.
그러나 밤은 좀처럼 끝나지 않고,
어둠은 더욱더 짙어만 간다.
당장이라도 꺼질 듯 깜빡이던 가로등마저 꺼지면,
어떤 기억과 감정을 이 어둠 속에 영영 파묻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파고 또 파서 깊숙이 묻는다 해도,
아무리 덮고 또 덮어 안 보이게 가린다 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어느 날,
어둠을 먹고 자란 검은 싹의 모양은
결국 내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저 하늘 아래, 이 땅 위에,
내가 서있는 한,
난 그 모양을 끌어안고 살 수밖에 없다.
삶의 골목길과 머물던 방의 모양을
정성을 다해 되돌아보며 그려보려 한다.
비록, 정성을 다해 그리는 게 소용없다 할지라도,
설사, 모양을 보아도 바뀌는 게 없다 할지라도,
설령, 내 삶이 아주 짧고 좁은 골목길에서 끝난다 할지라도,
더 늦기 전에,
삶의 지도 위에 놓여 있던 9가지 모양을
조심스레 이어 붙여 나아갈 길을 매만진다.
그 순간 대문 안 쪽에서 소리가 났다.
희미했지만, 분명히 들렸다.
알 수 있었다.
어린 도중이가 부엌창문으로 들어가 뛰어내린 소리다.
난 애써 뒤돌아보지 않았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가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 첫 모양인 네모가 저 앞에 보인다.
지금 이 순간,
예전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