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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프롤로그_모양

결석 게임 24_개미굴

by 이별난

프롤로그


'덜컹'


대문을 닫았다.


초등학교를 졸업 때까지 살았던 곳이

35년 만에 눈앞에 펼쳐졌다.

늘 같은 거리를 두고 서있는 담벼락들.

이리저리 제멋대로 뻗친 것 같지만,

결국 돌고 돌아 연결되어 있는 골목길들.

이 좁은 골목길 따라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순식간에 동네 구석구석까지 보이는

한 장의 개미굴 마을지도가 그려진다.


이곳에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과 나의 발자국이 이 길 위에 얽히고설켜있었다.


그해 재개발이 되며 허물어지던 그 순간까지 그랬다.


늘 기억과 감정의 시작엔 초등학교 1학년인 내가 서있다.

7세 전은 사진을 아무리 봐도 기억이 안 난다.


여기에 내가 걷던 길과 먹고 자던 방 한 칸이 있었다.


그 길과 방의 형태가 서서히 내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그 골목의 결이 그대로 마음속으로 이어져,

내 안에도 또 하나의 개미굴 마음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에 뻗는 여러 감정의 길들.

그 길 따라 놓인 감정의 방들.

여기서 뻗어나간 삶의 기억.


그 길 따라 머물던 이 방 저 방이 보인다.

기억과 감정의 많은 모양들이 그 곳곳마다 묻혀있다.


난 들어가고만 싶은 방을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얽히고설킨 이 골목길 사이 어딘가 서있을 때면,

난 새벽에 기대 서서 아침이 오길 기다린다.

그러나 밤은 좀처럼 끝나지 않고,

어둠은 더욱더 짙어만 간다.


당장이라도 꺼질 듯 깜빡이던 가로등마저 꺼지면,

어떤 기억과 감정을 이 어둠 속에 영영 파묻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파고 또 파서 깊숙이 묻는다 해도,

아무리 덮고 또 덮어 안 보이게 가린다 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어느 날,

어둠을 먹고 자란 검은 싹의 모양은

결국 내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저 하늘 아래, 이 땅 위에,

내가 서있는 한,

난 그 모양을 끌어안고 살 수밖에 없다.


삶의 골목길과 머물던 방의 모양

정성을 다해 되돌아보며 그려보려 한다.


비록, 정성을 다해 그리는 게 소용없다 할지라도,

설사, 모양을 보아도 바뀌는 게 없다 할지라도,

설령, 내 삶이 아주 짧고 좁은 골목길에서 끝난다 할지라도,


더 늦기 전에,

삶의 지도 위에 놓여 있던 9가지 모양을

조심스레 이어 붙여 나아갈 길을 매만진다.


□ ○ . 8 ∞ ● = ∩ ≠


'턱'


그 순간 대문 안 쪽에서 소리가 났다.

희미했지만, 분명히 들렸다.

알 수 있었다.

어린 도중이가 부엌창문으로 들어가 뛰어내린 소리다.


난 애써 뒤돌아보지 않았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가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 첫 모양인 네모가 저 앞에 보인다.


지금 이 순간,

예전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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