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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프롤로그_1.1

결석 게임 25_悲

by 이별난

따스하게 불던 바람이 멈추자,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툭, 툭'


그날도 이렇게 비가 내렸다.


1988년 그날밤

'우르르, 쾅쾅'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이었다.

천둥(雷) 소리에 하늘이 깨져버릴 것만 같았다.

백열등은 당장이라도 꺼질 듯 깜박거렸다.

난 그 아래 쪼그려 앉았다.

바닥과 벽에 그림자 괴물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엉덩이 밑에서는 귀신이 올라오는 듯했다.

그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날 이후, 난 집 안에 있는 연탄광에서

신문지를 깔고 쪼그려 앉기 시작했다.


'뿌지직'


지금, 저기에

그 재래식 화장실 문이 보인다.


저기 서 있던 과거의 나 하나

.
그리고 지금 이 자리의 나 하나

.

사이에 서있었던 내 모습들

.

그 시작점은 삶의 어딘가에 찍혀있다.


1.1

'투둑, 툭툭'


빗방울이 제법 굵어지기 시작했다.


난 그대로 비를 맞고 서서,

여전히 화장실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밤 화장실에서의 기억이 더욱더 선명해졌다.


그리고 비 맞고 서있던 많은 날들이 떠올랐다.

잠시 스치기도, 하염없이 계속 맞기도 했다.

그중 선명한 기억 주변으로,

흐릿한 기억들이 빗줄기 따라 흘러내렸다.


1111


'쏴아아'

폭우가 쏟아지던 하루가 쓸려간다

.

이 비가 그치지 않는다

.

'콰과광'

천둥이 치고, 나는 맞고, 참는 울음을, 하늘은 대신 흘려준다

.

이 비가 그치지 않는다

.


1111


그렇게 난 비와 비 사이에 서있었다.


1.1


비에 대한 기억들이 선명하던, 흐릿하던,


난 가슴에 내리던 슬픈 비(悲) 사이 어딘가,

늘 작은 점 하나로 존재했다.


푸른 눈빛 4-1.1권


재래식 화장실 문


개미굴 같이 생긴 이 동네에 존재했던 화장실.

저 안에 내가 숨어있다.


내가 삶에 파놓은 여러 길중 하나,

그 길의 모양이 저 네모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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