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베프는 치과의사가 되었다. 치과의사의 길도 엄청 험난하다는 것을 친구를 보면서 알았는데 보철과 교정을 놓고 고민을 하다가 교정과 전문의가 되었다. 본인은 보철이 더 재미있는데 주변에서 다들 교정을 권한다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교정과의 길로 들어섰다.
서울대 상위권을 졸업한 친구라서 여기저기 취직도 잘 되었다. 모든 병원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친구는 몇 군데 면접을 보고 서너 곳의 병원에서 요일별로 진료를 했다. 그중 새로 오픈한 곳에서 개원 이벤트처럼 지인에게 스케일링과 치아 점검을 해 준다며 십만 원 상당의 쿠폰을 주었다. (당시만 해도 스케일링은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았다.)
신랑과 나는 정말 오랜만에 무료 쿠폰이라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정말 수백이 깨졌다. 친구 말로는 자기가 민망할 정도로 치아가 12개? 가 썩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심각해서 신경치료까지 했고 사랑니 발치도 하고 등등 둘이서 몇 달간 치아 치료를 받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둘이 치아 보험도 하나 없이 치아를 그렇게 치료하고 나니 치아 보험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직원공제회에 전화를 걸어 간단한 보험으로 들었는데 정작 그다음부터는 정기적으로 치아 검진을 받으면서 지냈기 때문에 치료를 받을 일이 별로 없었고 있어도 간단하게 때우는 정도로 끝났다. 매달 나가는 금액도 많지 않아서 2만 원이 채 못되어서 완전히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일 년에 한두 번 스케일링받으러 갈 때만 ㅎ아. 맞다. 나 보험 있는데 치료할 이 없나? 이 정도 생각만 하고 끝.
그러다 지난주에 우연히 전화가 왔다. 보험 설계사 분이셨는데 지금 보험은 보장이 이 정도만 되고 심지어 20년 만기로 끝이니까 100세 만기에 훨씬 더 보장이 많이 되는 5만 원 중반의 보험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이번 주에 스케일링받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일단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스케일링받으면서 확인하니 정지된 우식치아가 하나, 잇몸이 좀 파여서 약간 시리니까 원하면 때울 수 있는 치아가 둘. 그것으로 끝이었다. 최근 3년간 진료받은 내역도 스케일링이 전부였다. 그래도 사흘 정도는 고민했다. (사실은 뭔가를 해지하는데도 용기가 좀 필요했다.) 직접 해지를 하면 담당하시는 설계사분에게 불이익이 있을까 싶어 홈페이지와 앱을 들어가서 해지 부분을 찾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납입한 금액은 200만 원에 가까운데 환급금은 32만 원 정도였다. 그래도 앞으로 10년간 또 200만 원 정도 더 내고 90만 원 정도 환급받는 것보다 낫지 싶어 바로 해지해 버렸다. 왜냐면 이 보험은 임플란트 한 개만 100만 원 보장, 그리고 일부 뭔가가 있었는데 정말 임플란트 포함 세 가지 보장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극히 보장 내용도 적었고, 내가 임플란트를 하게 될 시점에 이르면 노인 복지의 일환으로 임플란트 혜택도 받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후에 4세대 나이스와 씨름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바로 전화를 걸고 해지를 신청했다. 홈페이지를 아무리 둘러봐도 찾기 힘들었던 해지 항목이 전화 한 번으로 바로 해결이 되었다. 언젠가 필요할지도 몰라 라는 마음으로 가지고 있는 이 보험. 뭔가 한편에 찜찜한 마음으로 남아있던 이 보험을 해지해서 사실 마음이 좀 홀가분하다. 그리고 이 돈으로 저축을 하거나 주식을 사야지.
업그레이드를 권유해 주신 분께는 좀 죄송하지만 전화를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계속 이 찜찜한 마음으로 10년을 더 가서 아쉽기만 했을 테니까. 이렇게 정리한 것도... 미... 미... 미니멀리즘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