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난생처음 병가를

by 여울

정확하게 난생처음은 아니고 두 번째이지만, 첫 번째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법정 전염병 때문에 억지로 낸 것이었으니 처음이라고 하자. 아파도 학교에 가야 한다는 개근의 정신이 박힌 한국인으로서 아파서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동일하게 여겨졌다. 더군다나 나는 담임선생님이지 않는가. 오매불망 나를 기다릴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파도 무조건 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고 우리 부모님의 지론이었다. (뜬금없이 부모님이 왜 나와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부모님의 생각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라 아파도 무조건 학교를 갔다. 학생시절이든 교사가 되어서든.)


금요일 2교시까지 어떻게든 수업을 하고 나서 조퇴를 하고 토요일 일요일 집에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 급기야는 어지러움에 귀가 먹먹하고 소리까지 잘 들리지 않아서 이 상태로는 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밤 11시에 교감선생님께 병가를 써야겠다고 문자를 보내고 나서 새벽에 확인하니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좀 늦게까지 잘까 싶었는데 7시에 셋째가 열도 나는 것 같고 목도 아프다고 한다. 아이고야.... 그래.... 너랑 나랑 병원에 같이 가자. 8시 정도에 둘이 같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다행히 열은 없었고 셋째는 단순 감기 같고 나는 축농증이라고 하셨다. 어쩐지 하얀색 코가 많이 나더라니.... 집에 있는 비염약을 먹은 것이 오히려 안 좋은 거라고 축농증과 비염은 약을 반대로 쓰는 거라고 하셨다. 네에...? (밥오ㅠㅠ) 보통 콧물이 좀 날 때 비염약 한 번 먹으면 나아서 그렇게 한 것이 이번에는 병을 키운 꼴이 되어 버려서 착잡했다.


오전 내내 셋째와 둘이서 자고, 배고프다는 아이 말에 비몽사몽 일어나 밥을 해 주고 다시 정신 못 차리다가 나도 밥을 좀 먹고 다시 둘이서 또 잤다. 아이들 올 시간이 되어서 저녁을 차려주고 또 잤다. 그러고 나니 이제 좀 나아진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쿠키를 구워주고 산책을 잠깐 했더니 또 몸이 호소를 한다. 제발!


처음 병가를 쓴 기분은 어색하지만 나쁘진 않았다. 아마 이 상태로 학교에 갔으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을 것이 뻔하고 또 더 오래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지 않은 상태를 잘 유지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너무 아플 땐 하루 정도 쉬면서 잘 회복하고 아이들을 보러 가기. 내일까지 쉬면 더 좋을 것 같지만 학교 일정상 힘들다는 것을 안다. 이번 주의 목표는 잘 자고 몸 빨리 회복하기이다. 아프니까 공부고 자기 계발이고 다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족. 셋째가 아프다고 하니까 사실은 두 가지 마음이 교차했다. 나 혼자 아픈 것도 힘든데 왜 너까지 아프니...하는 귀찮은 마음과 그래...그나마 엄마 있을 때 아파서 병원도 같이 가고 시중도 들어줄 수 있구나...하는 다행이라는 마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잠, 잠, 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