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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복잡할 땐 청소를 한다

by 여울

어딘가에서 읽었는데 출처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마음이 복잡하다는 것은 정리를 해야한다는 신호라고. 실제로도 그렇다. 빼곡한 하루 일정 속에서 여섯 명의 식구가 밥 먹는 일정이 다 다르다. 주로 신랑과 막둥이가 먼저 먹고 밥을 차려주고 나면 정작 나는 기운이 빠져서 같이 먹기가 힘들었다. 셋째가 훈련을 마치고 오면 그 때 같이 먹거나 차려주고, 다음에 둘째가 학원에서 돌아오고 마지막으로 큰 아이가 돌아온다. 큰 아이는 도시락을 싸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가끔 배가 고프다. 이렇게 하다보면 몇 번 찬을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하고 새로 밥을 푸고 따뜻하게 데워서 옮기고 하는 과정 속에서 아무래도 힘이 빠지게 된다.


그 사이 집은 또다시 어지러진다. 받아온 학습지, 과제물, 장난감, 책, 벗어놓은 양말과 마시고 올려놓은 컵...내 공부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하루 일도 정리해야 하는데 집안 일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가끔은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하루 10분이라는 것을 삼아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풀어놓은 문제집들이 정신없이 뒤엉켜 있는 탑을 아이별로 분류해주고 내 공부 책들도 정리를 해 주었다. 지난 번에 장난감들을 대강 정리해 놓았기에 바닥은 금새 깨끗해졌다. 아이들 불러다가 각자 어지른 물건들 치우게 하고 마무리로 청소기를 쓰윽 돌리니 이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제 하루의 루틴이 조금씩 잡혀가는 것 같다.

식단 일기와 사용한 돈을 적는다. 거창한 양식도 예쁘고 깔끔한 꾸미기도 없다. 그냥 줄 공책에 간단하게 적는다. 그 자리에서 영어 공부를 한다. 책을 읽을 때도 있고 문장 스터디를 하고 있을 때는 소리내어 읽고 바로 녹음해서 단톡방으로 보냈다. 보통 10분에서 30분이 걸렸다. 책은 그보다는 좀 더 오래 걸린다. 그렇게 밤에 정리와 공부를 하고 나서 아이들과 시간을 조금 보내고 밖에서 잠시 걷는다. 머리가 아플 때는 더워도 바깥 바람을 쐬는 것이 마음을 진정 시켰다. 그 다음에 필라테스를 한다. 예전에는 두 세트를 반드시 채워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했더니 어느 순간 짐이 되기 시작해서 지금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한 세트에 동작을 추가해서 40~50분 정도 한 후 샤워 후 잠시 책을 보다가 잔다.


어제는 지친 상태에서 어느 사이 쌓여진 물건들을 보는 마음이 불안했다. 그래서 청소를 했다. 시야가 편해져야 마음이 편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여유가 있을 때는 어지러워도 넘길 수 있지만 그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비워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면서 다음 일을 할 수 있었다. 돈이 없기 때문에 미니멀을 한다는 말. 삶의 여유를 찾기 위해 미니멀을 한다는 말. 나를 찾기 위해 미니멀을 한다는 말. 다 맞다. 그리고 나에게 평안과 호흡을 가져오기 위해 미니멀을 하기도 한다. 무엇을 비울까 책장을 둘러보고 있으니 둘째가 엄마가 번역한 책들도 당근에 팔라고 했다. '아니 그래도 내가 번역한 책들인데 소중히 세트로 가지고 있어야지...!!!' 라고 생각을 했다가 '뭐 팔아도 되지.' 라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집에는 좋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 그 가치들을 너무 잘 알아서 쉽게 내놓지 못하고 계속 가지고 있었는데, 아무리 좋은 책들이고 귀한 가치들이라도 지나치게 많으면 무감해진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서 더 아껴서 챙겨주지 못한다는 사실도. 한 세트를 내보내면 다음에는 무엇을 내 보낼까 고민한다. 더디지만 진행 중이다. 이번 주말에는 내가 번역에 참여했던 또박또박 이야기 시리즈와 누리세계문화전집을, 그리고 웅진 인물이야기와 호롱불 전래동화 시리즈를 내어 보내야겠다. 물론 정리한다고 바로 나가는 것은 아니다. 책은 보통 두 달 정도는 걸리는 것 같다.


어지러진 집안과 가득 쌓인 물건들이 나의 정리되지 않은 상태와 불안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래서 조금씩 비우기 시작했다. 들여오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비우는데에는 한참이 걸린다는 사실을 마흔이 넘어서 제대로 깨달았다. 옷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고 악세사리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쁜 옷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스티브 잡스처럼 간단하게 하고 다른데 신경을 쓰는 것보다 다양하게 예쁘게 나를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 정도 소화할 자신도 있다. 하지만 구입에는 더더욱 신중해지기로 했다. 있던 옷들을 조금 더 보낸 후에 정말 딱 필요한 옷을 두어벌 더 사면 될 것 같다. 지금은 스퀘어넥 민소매 블라우스가 너무나 사고 싶지만 있는 옷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입을만하게 좋지만 안 입을 옷은 내놓거나 선물하고 팔리지 않을 것 같은 옷은 천이 좋아도 과감하게 옷상자로 보낸다. 운동이 평생 과제인 것처럼 비움과 정리도 평생 과제라고 생각하고 지금 바로 되지 않는다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고...나에게 한 번 더 이야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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