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의 문제
Madeline was that kind of child - the kind who could hum a Bach concerto but couldn't tie her own shoes; who could explain the earth's rotation but stumbled at tic-tac-toe. So being first isn't special - it's just annoying.
Madeline understood this. Once at school she pretended to be like all the other kids: basically illiterate. To Madeline, fitting in mattered more than anything. And her proof was irrefutable: her mother had never fit in and look what happened to her.
매들린은 그런 유형의 아이였다 - 바흐 콘체르토는 흥얼거릴 수 있지만 신발끈은 묶지 못하는 유형 그리고 지구의 자전은 설명할 수 있지만 틱택토에는 서투른 그런 유형 말이다. 그래서 앞선다는 것은 특별하지 않고 그저 성가실 뿐이었다.
매들린은 이것을 이해했다. 일단 학교에 가면 다른 아이들- 기본적으로 글을 읽지 못하는 - 과 같은 척을 했다. 매들린에게는 다른 아이들과 동화되는 것이 가장 문제시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증거는 확실했다. 매들린의 엄마는 절대로 어울리지 못했고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면 된다.
영어에는 fit in이라는 표현이 있다.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비슷한 표현인 adjust, adapt 등등을 생각하면 쉽다. 보니 가머스의 소설 레슨 인 케미스트리에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톡톡 튀어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주인공 엘리자베스 조트와 그의 남자 친구 캘빈 에반스. 그런데 캘빈의 독특함은 남성이고 천재 과학자이기 때문에 용인이 된다. 엘리자베스는 이상한 여자로 취급되고 무시당한다. 이것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와 캘빈 사이에서 태어난 매들린 역시 천재적인 두뇌를 지니고 있는데 아이는 이러한 독특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남들 사이에 fit in 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일어난 일들을 보건대 삶이 매우 험난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재성이 감추어지겠는가. 은연중에 등장하는 아이의 책 읽기 습관과 말하는 습관은 담임교사를 매우 성가시게 만든다. (이 교사에게도 문제가 많다.) 적응이 문제라는 이 부분은 보면서 몇 해 전 우리 반에 있던 한 아이가 생각났다. 1학년 때부터 정말로 유명했다. 전교에서 이 아이가 우는 모습을 목격하지 못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였고 가끔씩 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찾아보면 신발장 선반 사이에 누워서 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코로나가 터졌고, 3학년이 되던 해 내가 그 아이의 담임이 되었다. 나는 아이들의 사전 정보를 미리 아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름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고 마침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앞에 앉아계시더니 명부를 쓰윽 보셨다. "많이 좋아져서 괜찮을 거예요." 정말 희망을 걸었다. 그래. 사랑으로 보듬고 열정으로 노력해 보자. 사랑으로 보듬고 열정으로 노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그 해 완전히 절절하게 체험하고 왔다.
아이는 ADHD였고 불안증세가 있었고 극도로 예민했다. 작은 소리에도 귀를 막았고 누적된 경험들로 인해서 혹은 축적된 감정들로 인해서 사소한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체육 수업이 있는 날은 항상 이 아이의 울음으로 끝났다. 지면 져서 울면서 통곡을 했고 이기면 이겼는데 거기서 끝났으면 참 좋았으련만..... 이긴 고양감에 내가 잘해서 그렇다고 으스대는데 다른 아이들이 반응을 해 주지 않으니 화가 나서 울면서 계단에 주저앉아 또 울았다. (물론 '그래 네가 잘해서 그래'라고 대답은 해 주기도 하지만 같은 자랑이 수없이 반복하면 아이들도 대답을 해 주기 싫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아이의 공은 미미했고.)
우리 학교 원어민 선생님은 이 아이를 fit boy라고 불렀다. He threw a fit. 에서 나온 표현이었다. throw a fit은 발작처럼 화를 내는 것을 말한다. 발작을 일으킬 때도 쓴다. 처음에는 throw a fit이 적응하는 fit을 내던져 버려서 그런 것인가 싶었는데 have a fit도 같은 의미인 것을 보니까 그 fit이 이 fit은 아닌 것 같다.
아이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우리 반은 그 어떤 수업도 할 수가 없어서 나중에는 교실 문 앞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마음을 진정시키고 들어와서 다시 수업을 겨우겨우 이어서 했다. 줌 수업을 할 때는 그나마 조금 나은 것이 소리 지르고 울면 음소거라는 편리한 기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좋아졌다는 2학년 담임 선생님의 말씀은..... 코로나 기간 동안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기에 충분히 그 fit을 보여주지 않아서였다. 겨우 적응했던 학교 생활이 낯설어진 아이는 오히려 코로나 기간 동안 다시 후퇴했었고 나와 함께 1학년을 다시 다닌 셈이었다.
만약 우리 반에 이 아이 한 명뿐이었다면 그 해 학급 생활은 그래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하여 발견되지 않았던 다른 ADHD 아이가 한 명 더 있었고, 전학을 온 다른 친구는 가정의 불화로 욱 하는 성미로 욕설과 폭력적인 행동을 보였다. (4학년으로 올려볼 낼 때는 또 분반을 해서 조금 나아지기를 바랐지만 우리 반에만 반짝이는 별들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4학년 담임 선생님들도 또 엄청난 한 해를 보내셨다고 들었다.)
그래도 옆 반 선생님과 "귀여운 면이 있어요."라고 말하면서 보냈다. 아이는 아이인지라 인정받고 싶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잘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내 맘대로 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얼마나 치열한 갈등을 하는지 그 과정이 눈에 선명하게 보이기도 했다. 아직도 생각하면 마음이 안쓰럽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외부 자극이 너무나 크게 들어오면 감당이 안 되는 것이다. 그 내 마음을 선생님과 친구들이 알아주면 좋겠는데, 그리고 나름 노력하는 내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는데 충분치 않은 것 같으니 알아달라고 호소하고 싶다. 그런데 조금으로는 잘 먹히지 않으니 더 크게 울고 소리를 질러야 듣는 것 같고 이제는 이 마저도 잘 통하지 않는다. 일단 울고 봐야겠다. 내 억울한 마음이라도 표현해야지. 이런 것을 알고 있으니 나도 충분히 안아주고 달래주고 싶은데 너 말고 두 명이 더 있고, 그리고 또 스무 명이 더 있어서 그럴 수 없었다.
교과선생님과 특수선생님 보건선생님까지 다 모시고 의논을 해서 나온 결과는 보조 선생님을 한 분 구해서 아이를 곁에서 도와주시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어머니는 들으시더니 사비로는 할 수 없고 학교에서 구해 주는 분은 자격증이 없으면 안 되겠노라고 하셨다. 학교에 한 공간을 마련해서 아이가 분노가 치밀 때면 거기서 스스로 삭이고 올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면 좋겠다고도 하셨는데 당시만 해도 상담선생님이 따로 계시지 않아 아이를 혼자 둘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어머니를 설득하면서 한 해가 지나갔다.
나는 전근을 갔고 4학년이 된 그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너무나 고생을 하신다고 들어서 커피를 보내드렸다. 얼굴도 모르는 분이지만 어떤 심정이실지 너무나 이해가 되어서. 이제 5학년이 되었는데 들리는 소식은 애매하다. 좋아졌다고 하길래 안심하고 있으면 다시 threw a fit을 했다고 하고, 그래서 모두 너무나 화가 났다고도 하고.... 아직도 이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슬아슬하다. 많은 장점이 있는데 그 장점을 잘 살릴 수 있기를 제발 바란다. 기질을 접고 숙이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내년에는 6학년이 되어서 이제 좀 더 성숙해졌노라고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그래서 잘 fit in 해서 너의 별명인 그 fit boy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