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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Aug 07. 2023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분을 상사로 다시 모셔야 할 때

교직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씩 특이한 분을 만나게 된다. 물론 그분들께는 내가 특이한 사람일 수도 있다. 여기서 특이하다는 것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조금 넘어가는 경우를 말한다. 나는 평화주의자라 지금까지 인생에서 딱 4번 대판 붙어보았다. (물론 정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대학교 4년 생활 중 3년을 데모를 하면서 보내기도 했다. 이것은 또 다른 이야기.) 중학교 2학년 때 반 친구와 한 번, 그리고 교직 발령받아 3번. 오늘은 그중 교직 발령받아 있었던 2번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 발령받았을 때 교감 선생님도 좀 독특하셨다. 이분은 선생님들께 사유서를 가끔 받으셔서 모아두셨다. 학교 건물에는 당연하지만 계단이 많이 있다. 수업 중 잠깐 A4용지가 급하게 필요해서 교무실에 가서 가운데 있는 왼쪽 계단으로 내려갔다가 오른쪽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이 참에 계속 못 가던 화장실도 들려서 왔다.) 그때 교실은 4층 끝자락이었는데 마침 교감 선생님이 교내를 돌아보시다가 우리 반 빈교실을 보고 계단 중간쯤 서서 내가 올라오나 안 오나를 기다렸다고 하시는데 나는 그쪽으로 안 가고 저쪽으로 왔으니 당연히 못 보셨다. 그 일을 놓고 교무실에 불러서 한참을 야단치시더니 사유서를 쓰라고 하시는 것이다. 너무 기가 막혀서 쓸 수 없다고 했더니 다른 선생님들에게서 받으신 사유서를 열몇 통을 보여주시면서 쓰라는 것이다. 젊은 혈기(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도 열받으면 받는 드물지만 받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았다.)에 나는 확 대들었다. "그럼 (지금은 본청 장학사이신) 김 OO 부장님도 지난번에 20분 넘게 교실 비우셨는데 그때도 사유서 받으셨나요???" (물론 다른 선생님 이름을 들먹인 것은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유서를 썼다. 겨우 2년 차 교사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쓰라면 써야지. 그리고 한 달간 눈도 안 마주치다가 그래도 어른이신데 하는 생각에 이렇게 냉랭한 사이로 계속 지내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에 수학여행 가는 날 아침에 "대들어서 죄송합니다."하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교장 선생님이 잘했다고 칭찬하셨다....


오랜 기간의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학교에 새로운 교감 선생님이 오셨다. 하아. 진짜...... 이렇게 쓰고 싶진 않지만 얼마나 쫌생이 같은지 이상한 데서 돈을 아끼려고 들고 이상한 데서 소신을 지키셨다. 그 소신이 한결같았으면 누가 욕하랴. 원래 그렇게 원칙주의자겠구나 하겠지만 강약약강의 전형적인 표본이다. 나도 쌓인 게 너무너무너무 많지만 옆에서 불합리 부조리한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았다.


예를 들면 옆 반 선생님이 부득이하게 병가를 내시는 바람에 교감 선생님이 친히 아시는 분을 기간제 담임교사로 모셔왔다. 그 반은 역시 학부모의 민원으로 너무나 어려운 반이라 그 누구도 맡지 않으려고 했는데 상담교육전공까지 하신 분을 잘 모셔오셨다. 그래서 아이들이 안정도 되고 여러 가지로 학급에 좋았다. 이제 여름방학이 다가온다. 이 선생님은 8월 31일까지로 계약서를 처음에 쓰셨는데 느닷없이 교무실로 내려오라고 하시더니 방학기간을 빼고 다시 계약서를 쓰자는 것이다. 엥??? 그러니까.... 기간제로 근무하는 이 선생님께 방학 동안의 급여를 주기 싫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너무나 황당하시고 속상하셔서 (그간에 있었던 수많은 억울한 사연들은 일단 제외하고) 고민을 한참 하셨다. 원래 다른 계획이 있으셨는데 정말 간절히 부탁해서 그 일들을 다 취소하고, 심지어 1년제 계약도 안 가고 여기로 오셨다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우리 동학년 선생님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결론은 교육청에 문의를 해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문의하기 전에 일단 교감 선생님에게 교육청에 문의를 해 볼까 한다고 운을 띄워보기로 했다.


"교감 선생님. 이러이러한 이유로 제가 다른 것을 다 차지하고 이 학교로 왔는데 그렇게 계약서를 다시 쓰자고 하시니 제가 좀 이해가 가지 않아서 교육청에 문의해 보려고 합니다. 그다음에 다시 계약서를 작성해도 될까요?"

이 말이 끝나는 즉시, 계약서 재작성 건은 없는 일이 되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나 트집이 내 후배, 선배, 동료교사 그리고 나에게도 물론 적용이 되었다. 얼마나 화가 나는지 날마다 집에 와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처음에 듣고 있던 신랑은 나중에 화를 내면서 나한테 하소연하지 말고 교감한테 가서 따지라고 했다. 따지지도 못할 거면 그냥 참고 견디라고. (물론 신랑의 기분도 이해는 되지만 여전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야기가 새는 것 같으니 넘어가자.) 이런 일이 이렇게 3년이 되고 모든 사람을 적으로 돌린 채 그 교감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떠나셨다. 웃긴 것은 나도 후배도 다른 선배 선생님 한 분도 대판 붙고 나니 묘하게 친절하고 결재도 잘해주셨다는 점이다. (이주O 작가님 보고 있나요 ㅋㅋㅋㅋㅋ)


그리고 오늘..... 동학년 단톡방에서 그 교감 선생님이 9월 1일 자로 우리 학교로 발령을 받으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와 헤어진 사이 다른 선생님을 아동학대로 선제 고소까지 하셨더라. (물론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사안이고 아동학대의 당사자 아동 학부모 역시 과했다는 제스처를 할 정도로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다른 기사에도 나왔지만 교장 교감 갑질을 신고하니 해당 교사를 아동학대로 고소했다고 악용하기도 한다는데 그것은 아니지만 학부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태연하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이 소식을 읽은 다음부터 마음이 너무 심란해서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은 방학이 갑자기 회색빛으로 우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 하루 천천히 바쁘게 할 일 하면서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생각했는데.... 아아..... 이 분과 최소 3년을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의 행복했던 1년 반의 이 새 학교의 생활이 갑자기 어두워 보이고 마음이 답답해서 아이들에게도 나도 모르게 채근을 했다. "엄마 왜 우리한테 화내요?!" "아니 너네한테 화내는 게 아니고 그냥 빨리 하라고 말하는 거지." "아니잖아요!"....... 한 가지 희망은 우리 교장 선생님이 너무너무너무 좋으신 분이시니 이 분의 이 성향이 우리 학교에서는 발휘되지 않기를.


*지난 글에도 썼지만, 내가 지난 학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혹시라도 아동학대로 고소를 받게 되면 사비로라도 변호사를 선임해서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하신 분이 우리 교장 선생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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