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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Aug 28. 2023

당신은 오늘 우리 가슴에 두 번째 못을 박았다

9월 4일을 앞두고

오늘은 유쾌한 월요일이었다.


아침에 더 일찍 출근해서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같이 웃었다. 우리 반은 학급화폐제도(단위 콩)를 시행하고 있다. 아이들은 월급도 받고 수당도 받고 벌금도 내고 재화나 용역을 구입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일기 면제권으로 20 콩을 내면 일기를 안 써도 된다. 매주 이어서 사용할 순 없고 격주로 쓸 수 있다. 그런데 미리 구입하지 않고 일기를 써 오지 않았을 경우는 30 콩의 벌금을 내야 한다. "선생님! 저는 오늘 벌금을 내겠습니다!"라고 당당하게 ㅇㅂ이가 말했다. "그래?" 그렇게 내 책상에는 30 콩의 학급화폐가 놓였다. 그런데 잠시 후 같은 모둠원인 ㅁㅅ이가 등교해서 이 사실을 알았다. "뭐야! 너 일기 안 쓰고 벌금을 내겠다고?" 우리 반은 모둠원이 일기를 모두 다 쓰면 모둠 점수를 1점 얻을 수 있다. "그럼 자석을 못 붙이잖아!" 쭈글 해진 ㅇㅂ이는 조용히 일기장을 꺼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선생님. 벌금 환불도 되나요?" 원칙상은 안 되지만 아이들 모습이 귀여워서 그러라고 했다.


3교시에는 비가 와서 교실체육을 했다. 세 번을 패스하고 상대편 진영으로 공을 넘기는 쓰루 볼 게임을 했는데 자꾸 ㅅㅁ이가 세 번을 네 번으로 세서 공격 찬스를 흘려버렸다. 같은 팀 아이들의 원성에 진심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아니 이렇게가 세 번이잖아?"라고 말을 했다. 게임이 끝난 후 아이들과 곰곰이 세어 보다가 "아!"하고 탄성을 지르며 "얘들아. 진짜 미안하다. 왜 나는 그게 세 번째라고 생각했을까."라고 머쓱해했다.


수업이 조금 길어져서 점심을 늦게 먹는다고 징징 거리기도 하고 제발 심부름 좀 시켜달라고 할 일 좀 달라고 하는 우리 반 아이들. 6학년 치고는 조금 더 귀여운 것 같은 건 콩깍지가 쓰인 나만의 착각인가... 그렇게 웃고 있었다. 아이들이 하교한 후에는 행정실에 갔다 오는 복도에서 교장 선생님도 만났다. 너무 좋으신 우리 교장 선생님. '사비를 들여서라도 변호사를 사서 지켜주겠다'던 교장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1학기 때 정말 몸과 마음의 병을 얻었을 정도로 힘든 사건이 있었다. 잘 지내냐는 물음에 잘 지내고 마음에 편해서 그런가 살도 좀 쪘다고, 아이들과 새로운 활동도 많이 하고 재미있게 보내고 있다고, 그리고 하나하나 몰랐던 아이들의 사정과 아픔을 알게 되어 거기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우리 교장 선생님..... 마르셨다. 원래도 날씬하셨는데 얼굴이 정말로 반쪽이 되셨다. 잠도 못 주무시고 밥도 못 드신다고 하셨다.




수없이 회의가 있었다. 동학년회의는 물론이고 부장회의는 정말 밥 먹듯 열렸다. 교장 선생님은 9월 4일을 앞두고 재량휴업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면서 가능하면 학부모들을 직접 설득하겠노라고 하셨다. 그런데 교육부 발표가 나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본인은 이제 곧 퇴임이라 괜찮지만 교감 교무 연구 부장님들께 차마 해가 되는 일은 못하겠다고 하셨다. 교육감이 지지해 주겠다고 했다. 교장 선생님은 그 선언에 다시금 고민을 하셨다. 그러나 결국 교육부가 해임 파면과 같은 징계를 들고 오자 정말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 두 달도 안 되는 사이 바싹 여위어 버린 교장선생님의 호소에 나는 눈물이 났다. 한 분이 격앙된 목소리로 병가 연가를 내는 선생님이 10퍼센트가 넘어가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자 그 부분은 어떻게든 노력해 보겠노라고 하셨다.


우리는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울었다. 아이들과 행복했던 월요일의 기쁨은 이미 아픔으로 덮였다. 파면이니 해임이니 하는 카드를 들고 형사고발까지도 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교육부가 정말 교육을 위한 부서인가 싶어 마음이 미어졌다. 그 와중에 10월 2일을 대체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의견에 정작 교육부는 이 예정에 없던 대체공휴일 지정에 대한 논의가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한다고 하지 않는 것도 가소로웠다. 아마도 해마다 9월 4일이 되면 우리는 교육부가 교사들의 자존감을 사정없이 짓밟아 내리쳐 버린 그날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미 한없이 상처를 받아 짓이겨진 가슴에 또 한 번 대못을 박으면서 "그래? 한 번 해 봐. 너네가 감히 아이들을 볼모로 수업을 안 할 수 있는지."라면서 조소를 날리는 것 같았다. "기껏해야 찍 소리 내려다 아얏하고 물러가는 너네들. 어디까지 할 수 있겠냐'"라는 비웃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볼모로 잡은 또 다른 대상은 관리자들이었다. 나 혼자라면 괜찮겠지만 결재를 해 준 교감 교장 선생님 및 함께 한 교무 연구 부장 선생님들의 앞길을 막겠다는 협박이었다.




교육부가 이런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년 전. 나는 임용고시를 거부하겠다는 지장을 찍었다. 중초임용이 화두였다. 초등교사가 되기 위해 교대에 들어가 4년의 과정을 거치고 임용고시를 봐야 발령을 받을 수 있는 초등교사를 불과 2주 만에 양산해 냈던 정부에 대한 시위였다. 나이 든 교사에게 가는 급여로 젊고 열정 있는 교사를 몇 명을 고용할 수 있다는 이 말도 안 되는 논리와 명퇴를 하면 1억을 더 주겠다는 말에 중장년층 선생님들은 우수수 명예퇴직을 하셨고 그 바람에 교육 현장에는 공백이 생겼다. 이 공백을 메울 수 없자 중등 교사 자격증을 가진 분들에게 2주간 교육을 시켜서 초등교육 현장에 투입시켰다. 그리고 이를 두고 초등교사들의 밥그릇 투쟁 정도로 언론 플레이를 하며 비하했다. 최소한 2년간의 편입 과정이라도 하면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가차 없이 묵살되었다. 당장 아이들을 맡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처음의 공약은 예체능과 영어교과만 시키겠다는 것이었지만 당연히 2년 정도 후에는 모두 담임교사로 흩어졌다. 체육교육과를 졸업하신 선생님은 '나는 6학년 수학을 가르칠 수 없으니 6학년 담임은 절대 불가하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새롭지도 않았다.


첫 학교 발령받았을 때 중초 임용으로 오신 선생님들이 세 분 계셨다. 물론 너무 좋으신 분들이다. 그분들은 부끄러워하셨다. 당장 직업이 급해 초등교사가 되긴 했지만 옳지 않은 것을 알고 계셨노라고. 하지만 그 기회를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고. 미안하다고. 그 과정에서 우리 교대생들, 임고를 앞둔 졸업반이었던 나는 임용고시 거부하는 각서에 지장을 찍었다. 절대 시험을 보지 않겠다는 각오였는데, 교육부는 우리의 탄원을, 우리의 절규를 가뿐히 무시했다. 생활고에, 나이 제한에 어쩔 수 없이 원서를 먼저 접수한 동기들은 죄인이 되어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나는 정말로 임용고시를 안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전국교대학생회에서는 마지막날을 앞두고 임용고시 원서 접수를 하라고 했다. 나는 그날도 울면서 접수를 했다.


그때의 아픔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선연한데, 또 다른 형태로 이들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고도 태연하다. 거기에 학교 현장체험학습은 또 융통성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은 어이가 없다.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식으로 정말 원하는 바에 대해서 어떤 것은 엄정 대응이고 어떤 것은 융통성 있게 봐 달라는 식이다. 이미 아픈 상처에 소금을 확 뿌려 버리는 당신들. 무엇이 진정 이 나라의 교육을 위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라. 이렇게 글을 쓰는 나..... 결국 9월 4일에 출근할 것 같다.

(뒤에 내린 결정은 다음 글을 참고 부탁드립니다 9월 4일을 앞두고 교장 선생님께 드리는 글 (brunch.co.kr))

 우리 반 아이들. 예쁘고 소중한 너네를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으니까. 내가 맡은 학생들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은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멈춤을 호소할 때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당신들의 잣대로 판단해서 추모는 이렇게 해도 충분하다고 말하지 말아 달라. 우리가 바보라서, 몰라서, 충동에 이끌려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제발.



부연하자면....아이들에 대한 고민과 함께 1학기 때 저를 살려주신 교장선생님의 고뇌에 대한 마음도 큽니다. 교장 선생님의 적극적인 보호가 아니었다면 제가 2학기에 이 자리에 잘 서 있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할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거든요. 그래서 글을 쓰고 나서도 계속 슬픈 마음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정말 병가를 써야 할 수도 있겠어요. 마음이 아픈 건 사유가 안 된다는 당신. 마음의 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시나 봅니다.


그리고 결국 마음을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9월 4일 공교육 멈춤. 공교육 바로세움에 동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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