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하는 아들 이야기 하나

야구에 울고 야구에 웃고

by 여울

오늘 아침은 5시 반에 알람을 맞추었다. 요새 피아노 연습과 레슨에 열을 올리는 중이라 새벽 1시까지 연습하고 돌아와서 1시 반에 잠들었으니 4시간 정도 잠을 잘 수 있는 셈이다. 한참 정신없이 잠들어 있는데 "엄마엄마!!! 왜 내 알람이 안 울렸지!!! 일어나요 일어나!" 소리에 번쩍 눈을 떠 보니 다행스럽게도 5시 28분이다."괜찮아. 금방 준비할 수 있어." 아이를 다독이고 일단 아침을 먹게 했다. 아이가 먹는 사이 나도 간단하게 준비를 하고 마지막 준비물들을 챙겼다. 얼음목걸이를 냉장고에서 꺼내고 아이가 먹을 떡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물과 영양제도 챙겼다.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가지고 올라와 학교로 향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야구를 시작한 지 이제 정말 1년이 조금 넘었다. 초등학교 야구 대회가 일 년에 이렇게 많이 열리는 줄도 아이가 야구를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지지난 주에 울진에 2박 3일 일정으로 따라갔다 왔기에 이번 주 홍천에 2박 3일 일정으로 따라가기는 좀 무리수다. 울진에서 돌아온 날 나를 반긴 것은 엉망으로 어수선한 집안이었다. 신랑이 "당신이 없는 사흘 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좀 봐봐."라고 말했다. 아이가 넷이기 때문에 한 명을 위해서 다른 세 명을 집에 놓고 여러 번 집을 비우기는 좀 균형이 안 맞는다. "당신이 안 따라가도 다들 이해하셔."라는 말에 "그럴 수도 있지만 이해 못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 다들 똑같이 어렵고 힘든데 우리만 아이들 핑계로 계속 빠질 수는 없어."라고 대답했다. 그런 이유로 이번 사흘은 일단 빠지고, 혹시 대회에 이겨서 다음 사흘을 홍천에 머물러야 하게 되면 그때 내가 다른 어머니와 교대하기로 했다. 아무리 아이가 하나인 집이라도 홍천에서 엿새를 머무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차량 지원을 하기로 했다. 학교 진입로가 좁아서 대형 버스가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한참을 돌아서 버스가 서 있는 큰길까지 짐을 옮기는 일이 필요하다. 서둘러 도착해서 아이스박스에 차가운 물과 이온음료를 담고 다른 야구부 장비들과 짐들을 차에 싣는다. 코치님과 다른 부모님들이 도와주셔서 짐 싣기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이제 버스 있는 곳까지 가서 다시 짐을 내리고 버스에 싣고 배웅을 한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 중 한 분이 따라가는데 혼자 가야 하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엄마랑 한 번 안을까?" 하니 "으으응." 하면서 스르륵 빠져나간다. "하루를 시작하는 포옹을 해요." "하루를 마무리하는 포옹을 해요."라고 말하며 와서 꼭 안기는 셋째이지만 사람들 앞에서 엄마랑 꼭 안기는 쑥스러운가 보다. 가는 버스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고는 나의 다른 일정을 진행했다. 연습실 가서 피아노 연습을 한 시간 다시 하고 건강검진을 받고 둘째랑 이비인후과에 가고 아이들 점심을 챙겨주고 다시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노라니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아이 경기 영상 링크가 올라왔다.


처음으로 본 것은 아이가 3루에서 홈 베이스를 밟는 영상이었다. '다행이다.' 볼넷으로 출루했건 안타를 쳐서 출루했건 어쨌거나 진루를 했고 그래서 팀에 점수를 안겼으니 안심이다. 그리고 다음은 아이가 투수로 마운드에 서는 모습을 보았다. 아아 화면이 작아서 안 보이는데 볼이 잦은 것 같고 다른 팀 선수들이 홈으로 연달아 들어오는 것 같다. 점수는 7:6으로 우리가 리드하는 상황에서 7:11로 뒤쳐지고 있다고 한다. 마음이 조여든다. 지난 토요일 경기가 데자뷔처럼 떠오른다.




지난주는 우리 가족이 교회에서 열리는 청소년 캠프에 다 같이 참여했었다. 아이는 모처럼의 가족여행 겸 교회 여행에 참여하기 위해 연습을 이틀간 쉬기로 했다. 다만 마지막 날 일정은 참여하지 않고 셌재만 나와 금요일 밤에 먼저 올라오기로 했다. 토요일 다른 학교와 연습 경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날 5회 6회에 등판한 아이는 무참하게 깨졌다. 지켜보는 내가 애가 타서 차마 보기 힘든 지경이었다. 공이 포수 머리 위로 올라가면서 상대팀 선수들은 방망이를 휘두를 필요도 없이 그냥 볼넷으로 계속 출루했다. 얼마나 많은 점수를 줬는지 아이가 등판하기 전까지 우리가 이기고 있던 경기는 누가 봐도 패배로 뒤덮인 것이 뚜렷하다 못해 새겨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감독님은 다음 이닝에 또 아이를 올리셨다. 두 번째 등판은 좀 나았지만 여전히 볼이 잦았다. 감독님은 아이가 이닝을 마무리할 때까지 내려 보내지 않으셨다. 지켜보는 내 마음은 그냥 새카맣게 타 버렸다.


참담한 기분으로 면목이 없어 서 있으려니 감독님이 "ㅈㅇ이 어머님 저 좀 잠깐 보시죠."라고 하신다.

"오늘 일부러 감 잡으라고 끝까지 던지게 했습니다. ㅈㅇ이 울고 있더라고요. 이틀간 쉬었고 공은 수요일부터 던지지 않았으니 사흘을 내리 쉰 셈입니다. 저라도 사흘간 안 던지면 당연히 볼 나옵니다. 그러니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괜찮습니다. 만약 오늘 경기까지 여행으로 쉬었으면 홍천에서 좀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라고 말씀해 주셔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당장의 연습 경기 승리보다 아이의 회복과 성장을 위해 필요한 길을 보여주신 것이다. 아이를 위한 진정한 배려와 성장을 도와주시는 마음이 여실히 와닿았다.


햇빛 아래서 더위와 아픔으로 얼굴이 벌겋게 된 아들은 눈이 붉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팀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틀간 훈련을 쉰 대가는 참으로 컸다. 생각해 보니 당연했다. 내가 피아노 콩쿠르나 공연을 앞두고 있다면 며칠 전에 이렇게 놀러 가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도 놀러 가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부모의 잘못이다. 항상 연습을 꾸준히 했으니 괜찮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랬기에 오늘 경기가 너무나도 마음이 쓰였다. 만약 아직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아 팀에 또다시 패배를 가져오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애가 타서 하는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집중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다음 이닝은 무실점으로 마무리된 것 같았고 점수는 11:11. 이제 6회만 남았다. 초등학교 야구는 6회까지만 진행이 된다. 그리고 최종 스코어는 11:12. 우리는 1점 차이로 졌다. 우리 아이 때문에 경기에 또 진 것 같아서 좌불안석의 마음인 나는 단톡방에 죄송하다고 글을 올렸다.


그런데 저녁에 아이가 영상을 보내왔다.

"나 커브로 삼진 잡았다."

'아니.... 너 패전 투수 아니니???? 그런데 그 와중에 자기 잘한 거를 자랑하려고 하나?'라는 마음에 하나하나 물어봤다. 3, 4, 5 이닝을 등판했고 3이닝에 3 실점을 제외한 나머지는 무실점으로 마무리했다고. 아이가 등판했을 때는 이미 8점을 줘서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도 그때사 알았다. 타격은 어땠는지 물어보니 3루타를 쳤다고 한다. 아아. 다행이다. 팀의 패배는 속상하지만 아이가 지난번처럼 무너지지 않아서, 그래서 팀에 손해를 가져오지 않아서 너무너무 안심이 되었다. 다른 아이가 실수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보게 되는데 우리 아이에게는 좀 더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게 된다. 물론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지만 오늘은 지난 일의 여파로 긴장을 많이 했었나 보다.


응원하는 팀인 키움이 9연패를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참 안 좋다. 이기고 있다가 역전패를 당하는 것도 여러 번이고 비등하게 가다가 마지막에 패배를 하거나 처음부터 점수 차이가 확 나서 부지런히 따라가지만 못 미치기도 한다. 지켜보는 팬의 마음 만으로도 힘든데 굳이 이 힘든 길을 가겠다는 아들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까지 더해져서 야구에 대한 내 마음은 두 배가 아닌 세 배 네 배 이상으로 힘든 것 같다. 프로의 길을 갈 수 있든 아니든 간에 지금 경험하는 이 모든 과정이 아이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되어 성장의 한 동력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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