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동안 미드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모두 보았다. 아팠을 때 책의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그저 심심풀이로 오랜만에 넷플릭스에 접속한 것이 시작이었다. 구슬샘이 가끔 언급하시던 미드가 궁금해서 봤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두어 편을 연달아 보고는 운동하면서 짬짬이 보았다. 처음에는 말도 못 하게 재미있었는데 시즌이 나아갈수록 '음.... 이거 약간 한국판 막장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즌 3가 끝나갈 때 즈음 '에밀리와 가브리엘의 관계가 이대로 좋은 친구 사이로 끝난다고??? 진짜??? 생각 의외의 반전인데?'라고 생각할 때 역시 그건 아니라고 알려주었다. 그대로 끝났으면 시즌3으로 에밀리 파리 시리즈는 종결될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보면서 즐거운 것은 파리의 멋진 풍경과 함께 에밀리와 사람들의 화려한 패션들이다. 처음에는 '에밀리는 저 많은 옷을 어디에 다 보관하고 가져왔을까' 하는 것이랑 '정말로 저렇게 과감하게 혹은 덥게 입고 다닌단 말인가???'라는 의문을 가졌다가 나중에는 포기했다. '그냥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일상에서 입지 못하는 과감한 옷들을 저렇게 보여주는 거겠지....'라고 그냥 납득해 버렸다.
화려한 패션만큼이나 복잡한 것이 에밀리와 사람들 간의 관계이다. 몇 다리 건너면 다들 아는 사이인데 정말로 여기서도 그 관계들이 적용이 된다. 에밀리와 주변 인물들 간의 얼기설기 복잡하게 엮인 관계에서 정말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뭘까 (비록 막장성 요소가 있지만) 생각해 보았다. 부분 부분 분명 감동을 제시하는 장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최소 50대로 추정이 되는 에밀리의 상사 실비는 남편과 오랜 별거 중이지만 가끔씩 남편과 만나서 그의 도움을 받는다. 그 와중에 사업 고객인 앙투완과는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오다가 애매하게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서 젊은 사진작가와 새롭게 사랑에 빠진다. 여기서 20대의 젊은 사진작가는 실비가 그저 나이가 많은 싱글 우먼 정도로 알고 있고 실제로 실비를 매우 좋아한다. 웨이트리스가 아들뻘로 알 정도로.... 실비와는 나이 차이가 확연하게 보이지만 실비와의 관계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 친구의 결혼식? 약혼식에 같이 가자고 실비에게 제안하자 실비는 망설인다. 누가 봐도 아들 내지는 조카 뻘인 남자의 친구들을 만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이미 사회적으로 공인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도 조심스럽다. "친구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하는 질문에 이 남자는 "저를 행운아라고 생각하겠죠."라고 당당하게 대답하고 실제로 실비가 모임에 가자 누구보다도 환영하며 사랑을 표현한다. 관계 초반에 실비가 이 작가에게 주려고 했던 대형 프로젝트가 다른 유명한 작가에게 넘어가자 실비는 미안함을 표현하는데 그때 "그래도 계속 만날 수 있을까요?"라면서 '내가 당신을 만나는 것은 당신에게서 뭔가 받을 수 있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신 그 자체가 좋아서'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렇지만 결국 헤어지게 되는데 그 계기는 실비의 모호한 태도이다. 나이는 상관이 없지만 나에게 충실할 수 있는지 아닌지가 문제였던 것. 그리고 그 덕분에 실비 역시 자신의 진짜 마음을 돌아보게 되고 다시 남편에게 돌아간다는..... 그런 이야기.
실비의 이런 태도로 상처받은 것은 여러 사람인데 아무튼 내 마음에 들어온 것은 그 젊은 사진작가의 당당함과 솔직함이었다. 다른 사람의 기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닌 내가 보는 당신의 그 아름다움을 나는 그대로 사랑하겠다는 것. 내가 상대방과 비교했을 때 이만큼을 더 해 줘야 나의 부족함이 메꿔질 것 같아서 자꾸 뭔가를 더 해 주거나 양보하거나 나를 낮추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 나는 당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 Take you as you are. 이 말의 반대인 Take me as I am.이라는 표현을 오래전에 보면서 그만큼 나를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런 말이 있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 나는 당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나에게 당신은 지금 그대로 충분히 아름답고 빛나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그런 사람이 있는가. 나 역시 그렇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는... 이름도 잘 기억이 안나는 실비의 지나가는 사랑인 그 사진작가를 보면서 생각해 본다. You are perfect just as you are.
There's not a thing that I would change because you are amazing just the way you 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