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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Aug 09. 2023

마흔셋, 또다시 피아노

이번 여름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피아노이다. 제대로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하기 위해 레슨 10회권을 끊고 그 돈을 헛되게 쓰지 않기 위해서 거의 날마다 연습을 한다. 덕분에 몸살을 앓고 있다.


어린 시절 배우고 한참을 쉬다가 피아노를 배우는 것은 아니고 지금까지 내 삶에서 피아노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다만 결혼을 하고 시가에서 살게 되면서,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게 되면서 피아노를 꾸준히 가까이하기는 어려웠다. 다시 시작한 것이 작년 봄이었고 한참 열심히 하다가 팔과 어깨를 다치면서 잠시 쉬었고 이제 다시 시작한다.



우리 엄마는 명시적으로 바라는 것이 많지 않으셨지만 구체적인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피아노'였다. 어릴 때 너무나 간절히 바라던 음악에 대한 열망은 딸들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말 너무나 어려웠던 시절에 다른 사교육은 일절 안 시키셨지만 피아노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그 끈을 놓지 않고 이어가게 하셨다.


5살 때 교회 반주자 선생님 댁이 너무나 멀었지만 3살 5살 두 딸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갈아타고 언덕을 걸어 올라가면서 피아노를 가르치시던 엄마의 열정은 몇 주 만에 끝이 났다. 피아노를 배우고 돌아가는 길, 오토바이가 갑자기 나를 덮치면서 왼쪽 다리가 부러졌고 (덕분에 미세하지만 왼쪽 다리가 살짝 짧다) 3개월 깁스를 해야 하면서 배움은 끝이 났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7살 겨울부터 지금의 백산초등학교 앞에 있던 복음피아노 학원에서 1년 반 정도 피아노를 배웠다. (너무 좋았던 원장 선생님께 지금이라도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싶지만 이사를 가셔서 어디에 계셨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2학년 때 이사를 가면서는 정식 피아노 전공생은 아니지만 피아노를 조금 치시던 교회 분과 사촌 언니에게 나누어서 피아노를 배웠고, 그리고 5학년이 되면서 다시 5살 때 잠깐 피아노를 가르쳐 주셨던 반주자 선생님께 고 1 때까지 피아노를 배웠다.


보통은 중학생이 되면 피아노를 그만 두지만 나는 음악이 너무 좋았다. 노래도 좋았고, 잘 못하지만 작곡도 재미있었고, 피아노는 더 좋았고 그래서 다른 악기들도 배우고 싶었는데 가정 형편 상 어렵다고 허락해 주시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피아노를 조금 치는 아이로 소문이 나서 입시하는 고3언니들 향상음악회에 반주자로 부탁을 받기도 하고 합창 동아리 친구들이나 다른 음악회에서 간간히 반주 부탁이 들어오기도 했다. 전공을 하고 싶다고 울면서 부탁을 했지만 되지 않았다. 우리 아빠는 왜 비싸게 사교육비를 들여서 대학교 피아노과를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셨고,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우선이라고 하셨다. (자랑은 아니지만 공부를 좀 했고 반에서 1등, 전교 3등까지 했기 때문에 공부를 더 시키고 싶으셨던 것 같다.) 피아노를 가르쳐 주시던 반주자 선생님은 "이런 아이가 피아노를 공부해야 하죠."라고 말씀하셨지만 부모님은 고개를 저으셨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동생에게는 사교육비를 들여서 작곡과 피아노를 가르치셔서 내 동생은 작곡과를 갔다. 울면서 호소하는 큰 딸은 공부를 시키고 딱히 간절하지 않았던 동생은 음악을 시키신 것은 지금도 좀 가슴이 아프다. (물론 동생이 뜻하지 않게 갑자기 작곡을 하게 된 데에도 다 사연이 있긴 하다.)


그래서 나에게도 이 피아노란 것이 한이 된 것 같다. 너무 하고 싶은데 안 시켜주니까 그게 가슴에 맺혀서 대학교에 가자마자 다시 시작한 것이 피아노였다. 교대 말고 K대에도 합격을 했는데 거기를 가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음악과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피아노가 있는 대학교에 가고 싶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거기도 음악 동아리가 있었겠지... 밥오.) 교대에는 음악관이 있었고 피아노가 있는 연습실들이 4층까지 있었다. 그리고 강사님들로부터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매주 레슨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어서 망설임 없이 피아노 레슨을 신청했다.


그렇게 4년 간 피아노과 학생처럼 매일매일 음악관에 들려서 피아노와 살았고 나처럼 피아노를 좋아하는 선배랑 연애를 했고 클래식 동호회와 동아리에 들어가서 공연을 하다가 졸업을 했다. 교사가 되어서도 두 분의 선생님께 결혼하기 전까지 피아노를 배우면서 하루에 두 세 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하면서 보냈다. 그런데 결혼하고 원치 않게 시가에서 살게 되면서 피아노를 칠 수가 없었다. 어른들이 계신 집에서는 피아노를 그렇게 칠 수가 없다는 것을, 한 시간은커녕 30분도 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분가를 해서는 네 아이를 키우느라 어쩌다 한 두 곡씩 칠 수 있을 뿐. 내가 피아노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으면 신랑은 이렇게 한 마디씩 던졌다. "그렇게 연습해서 뭘 하려고 그래? 전공생도 아니면서. 전공생도 그렇게까지 하진 않아." 신랑은 성악가였다.


그래서 신랑이 있으면 피아노를 치지 않았는데 사실상 프리랜서인 신랑이 나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으므로 집에서 피아노를 치기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참을 수 없을 때가 문득문득 있어서 한 시간씩 치곤 했다. 우리 엄마는 내가 피아노를 치면 좋아하시면서 방문을 열어 두셔서 으레 그래도 되는 줄 알았는데 신랑은 문을 닫았다. 그래서 더더욱 피아노를 잘 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레슨을 받고 싶지만 레슨비도 만만치 않아서 참고 그냥 쳤다. 그러다 교회에서 반주를 부탁해 왔다. 교회 반주도 신랑은 사실 마뜩잖아했지만 정말로 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이 부분까진 말릴 수 없었다.


반주를 하면서 보니 십 년도 넘게 피아노를 쉰 세월의 여파는 매우 컸다. 내 마음은 결혼 전에 치던 쇼팽 소나타, 브람스 랩소디, 라흐마니노프 에뛰드 같은 어려운 곡들에 있는데 현실의 손가락은 모차르트 소나타는 고사하고 간단한 소품들 조차 잘 되지 않았다. 물론 칠 수는 있고 그럭저럭 흉내도 낼 수 있지만 감동을 주는 편안하고 아름다운 음악에 대한 기준을 놓고 보자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여 레슨을 받아야겠노라고 선언을 했다. 신랑은 역시 반기진 않았지만 본인도 필요성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연습해야 할 명시적인 이유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8개월 가까이 레슨을 받았다. 그리고 팔을 다치면서 다시 8개월을 쉬었다. 한 번 쉰 레슨을 다시 시작하려니 쉽지 않아 망설이다가 우연히 무료 레슨 1회권을 받아서 레슨을 받고 나니 참을 수 없더라. 손가락부터 손목 모양까지 하나하나 제대로 잡아주시는 선생님을 새로 알게 되어서 '이번 학기가 끝나면 레슨을 받아야지'라고 마음을 먹었다. 학기 중에는 학교폭력 사건으로 인해 학부모님 상담과 아이 상담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7월이 되기 전에 일은 종료가 되었고 방학을 앞두고 다시 레슨을 시작했다.




이번 레슨은 훨씬 깊다. 바이엘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손가락 관절의 명칭부터 모양, 구부리는 방법, 누르는 방법, 손목을 움직이는 방법, 스타카토를 치는 방법, 펼친 화음과 트레몰로, 아르페지오 연주 방법 등등 매 시간 하나하나 교정을 받으면서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어제로 4회 차 레슨을 받았는데, 레슨을 받고 그 방법대로 연습을 하고 나면 꼭 이렇게 몸살처럼 앓았다. 이미 가지고 있는 기존 지식과 습관을 버리고 새로 힘을 빼서 공명하는 소리를 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아예 몰랐으면 나았을 수도 있는데 어느 사이 자꾸 나도 모르게 힘을 주는 습관이 잡혀버린 것이다.


성인이고 아마추어로 피아노를 치는 분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공통으로 듣는 질문이 "나이 들어 피아노 배워서 뭐 할 건데?"이다. 그럼 우리는 대답할 말이 궁해진다. 이 나이에 피아노를 배워서 다시 대학을 갈 것도 아니고 일부 분들은 콘서바토리를 가서 자격증을 따시기도 하고 피아노 학원을 열 계획도 가지고 계시지만 그냥 순수하게 피아노를 즐기는 분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피아노를 칠 때 살아있다고 느낀다. 비록 원하는 소리가 나지 않아 완전 초보처럼 다시 도레도레를 반복하고 메트로놈을 40으로 매우 느리게 맞춰서 답답함을 죽이면서 나를 내려놓는 연습을 무수히 반복하면서도 이 순간 내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한다. 미숙하지만 내가 누르는 건반을 타고 음악이 만들어진다. 서툴지만 현을 울리는 소리를 통해 음악이 나타나진다. 내 안에 말로 전달이 되지 않는 생각과 감정, 표현들이 이렇게 나오고 나를 치유해 준다. 아아, 피아노. 아아, 음악. 마흔셋의 나이에 나는 피아노를 통해 다시 나를 버리면서 나를 찾아가는 연습을 한다. 아마 죽는 순간까지 피아노를, 음악을 놓지 못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마흔셋 이후에도, 삶이 허락되는 순간까지, 쉰셋, 예순셋, 일흔셋 그 이후라도 나는 계속해서 피아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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