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외삼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에게 오빠가 있다는 것은.

by 여울

정확하게는 당숙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나에게는 오빠나 남동생이 없고 여동생만 있으니, 아이들이 외삼촌이라고 부르는 나의 오빠들은 모두 사촌오빠들이다. 친정 부모님 모두 형제들이 많으셔서 양쪽으로 사촌들이 많았는데 지내다 보면 조금 더 친하고 마음이 잘 맞는 사촌들이 있기 마련이다. 친가 쪽에서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오빠와, 외가 쪽에서는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와 한 살 어린 동생과 좀 많이 친하게 지내서 자주 만났다. 그런데 이모네 두 사촌은 모두 커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 버리는 바람에 15년째 얼굴을 보지 못한다. 사촌 오빠 역시 결혼해서 러시아로, 중국으로 해외 근무를 하는 바람에 장기간 얼굴 보기가 어렵다가 몇 해 전 회사를 옮기면서 드디어 귀국했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얼굴 보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가족 행사 때 얼굴을 보지만 예전처럼 둘이서 이야기를 따로 많이 나누는 경우는 힘들다는 의미.)


어려서부터 뭐든지 혼자 해내는 습관이 있던 나에게 사촌 오빠는 좀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다. 특히 고3 때 많이 힘들었을 때 먼저 대학에 입학한 오빠는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 주었고 갖고 싶었던 고가의 1년 치 문제집 시리즈를 사 주기도 하면서 실제적인 도움도 많이 주었다. (나중에 아빠가 알고 오빠에게 문제집 값을 주었다. ;;)


그러나 우리 오빠에게는 힘든 사연이 있었으니 새엄마로 인한 것이었다. 친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큰아버지는 재혼을 하셨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복잡하고 지저분한 문제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리 모두를 경악하게 했던 것은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두 오빠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들어 버린 일이었다. 두 의붓아들의 이름으로 신용대출을 받고는 갚지 않은 것이다. 오빠들은 대학을 졸업해야 했으나 신용불량자이기에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더 어려운 상황에 놓여버린 큰아버지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고, 돈을 모으기에는 시간도 없었다. 고민 끝에 우리 아빠를 찾아온 오빠들에게 아빠는 선 듯 1년 치 학비를 대 주었다. 조건은 대학 후 졸업을 하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던지 되는 대로 갚을 것. 아빠는 그냥 줄 수도 있었지만 삶의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했다. (나는 몰랐다가 나중에사 들었다.)


오빠들은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고 작은 오빠는 취직을 바로 해서 매달 10만 원 정도씩 3년을 꾸준히 상황을 해서 다 갚았다. 다 갚았던 날, 작은 선물을 들고 우리 집을 찾아와 "작은 아버지 덕에 이렇게 졸업도 하고 취직도 하여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감사 인사를 드렸고 나는 그제야 아빠가 어떻게 하셨는지를 알게 되었다. 오빠는 그 후로도 기가 쓰지도 않은 돈 때문에 월급의 반을 강제로 차압당하면서 오랜 시간을 그렇게 지내왔다. 대기업에 취직했기에 사회 초년생이라도 급여는 적지 않았으나 반을 차압당하면 사실은 많지 않은 금액인 것은 분명하다. 그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어땠을지는 능히 상상도 되지 않지만 그래도 오빠는 지금까지 성실하게 노력해 오고 어른들께 항상 인사를 먼저 드리면서 그렇게 지내왔다. 한 번도 먼저 나에게 찾아가 인사를 드리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저 혼자서 그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가정의 어른들께 말없이 찾아가 인사드리는 모습은 내게 더 큰 감동과 마음의 움직임을 주었다.


어젯밤에 갑자기 오빠에게 연락이 왔다.

"아직 방학이지?"

"응"

대답을 하자마자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밥 사 주려고?"

기가 막히다는 듯이 웃으며 오빠는 대답했다.

"어떻게 알았어?"

"내가 그쪽으로는 감이 너무 좋지."

"내일 시간 괜찮아?"

"내일 시간은 괜찮은데..."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안 되겠다. 아이들도 방학이라서 점심을 챙겨줘야 한다.

"안 되겠다. 나중에 내가 시간 될 때 오빠랑 오후에 따로 만나서 차나 마시자. 아이들 점심도 먹여야 하거든."

이야기하다가 장난처럼 "아니면 우리 아이 네 명 다 사 줘야 하는데." 그랬더니 오빠가 선 듯 "다 데려와. 애들이랑 먹으려면 빕스나 애슐리 같은 데로 가야 하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헐.... 빕스.... 가고 싶은데.... 내일 아이들 일정 때문에 시간이 매우 빠듯하다....- 가 나의 속마음이었다. ;;;


그래서 우리는 오늘 어찌어찌 애슐리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보는 오빠는 여전히 밝고 긍정적이고 유머러스하며 아주 오랜만에 봐서 기억도 잘 못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하나씩 물어보면서 이야기를 끌어내고 특히 야구를 하는 셋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는 밥만 사 주는 것도 너무 좋았는데 밥을 다 먹고 나니 갑자기 "자, 내가 너희를 자주 보기 어려우니까 외삼촌이 오랜만에 용돈을 좀 제대로 주려고 한다."라면서 네 명에게 봉투를 하나씩 주었다. 큰 아이 입이 찢어지는 것을 보니 적은 금액은 아닌데 얼마나 들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아니 그런 건 나한테 줘야지!" "엄마한테 맡기면 있는 줄도 모르게 사라지니까 꼭 너네가 잘 관리해서 쓰거라." 하자 막둥이가 "맞아요. 지난번에 내가 엄마한테 4만 원 맡겼는데 2만 원으로 줄어 있었어요."라면서 맞장구를 친다. 아니 이 사람들이!!!! 나는 진짜 아이들 돈에 손을 대지 않기 때문에 억울하다, 억울하다!


그 광경을 보면서, 그리고 다음 일정을 위해 나와 셋째는 먼저 나와야 헸는데, 오빠가 아이들 세 명을 집에 데려다주겠노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여러 감정이 올라와 좀 울컥했다. 나보다 훨씬 힘든 환경에서 자라온 우리 오빠는 어떻게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늘 감싸 안으면서 베푸는 사람이 되었을까. 올라오는 눈물을 참으면서 말했다. "오빠가 우리 동네에 살아야 얘네 데리고 같이 캐치볼도 하고 야구 시합도 데려가는 건데, 왜 이렇게 멀리 살아. 너무 아쉽네."


이렇게 나는 베풂을 받는다. 내가 무엇을 잘한 것도 아니고, 내가 직접적으로 도와준 것도 하나 없는데, 오빠를 귀찮게 하던 나를 어려서부터 챙겨주던 오빠에게서 나는 오늘 또 받았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 부모님이 쌓아 올리신 선행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아직은 어린 우리 집 아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외삼촌 한 분이 계시다는 것은 아이들 마음에 조용히 스며드는 든든한 힘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사실은 아이들보다는 내가 받는 힘이 더 크다고 여겨진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여울아, 괜찮아. 네 아이 키우면서 너 힘든 거 다 안다. 오빠가 따로 뭘 어떻게 해 주지는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너를 지지한다.'라는 조용한 응원을 받은 날이었다. 그 응원으로 오늘 하루 먼 길을 다녀오는 여정이 든든했고, 다음에 오빠를 또 만날 때까지 마음이 따듯할 것이다. 둘 다 바쁜 사람들이라 우리는 겨울방학이나 되어야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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