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 원 밖에 안 한대요

진짜....?

by 여울

반 아이들과 세계지리에 대해서 배우기 시작했다. 6학년 사회는 사실 조금은 지루할 수 있지만 접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매우 흥미로운 단원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정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마드리드로 가는 직항 티켓이 150만 원 정도이고 경유를 하게 되면 110만 원 정도로 가격이 낮춰진다고 했다. 그러자 한 아이가 바로 "유럽에 가는데 어른은 200만 원 밖에 안 한다고 해요. 저는 내년에 갈 거예요."라고 대답을 했다. 순간 나는 현타가 왔다. 아. 이 아이들에게는 200만 원 '이나'가 아니라 '밖에'구나...


200만 원이면 내 한 달치 월급 실수령액의 반은 가뿐히, 훨씬 뛰어넘고, pay check to pay check으로 매달을 연명하는 나에게는 사실 선 듯 건넬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다. 갑자기 뜬금없이 마드리드로 가는 티켓을 알아보았던 것은 딸아이를 이번 겨울 방학에 한 달간 유럽에 보내기 되었기 때문이다. 아는 선생님이 여행을 자주 다니시면서 그동안은 국내 여행에 우리 딸들을 데려가 주셔서 참 감사한 시간을 보냈다. 역사 선생님이시기에 그냥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답사여행처럼 역사공부를 동반한 여행이었다. 그래서 주로 경주, 부여 이런 곳으로 갔다. 이번에는 유럽에 가실 예정이시라면서 우리 큰 딸을 데려가고 싶다고 하셨다. 말씀만 들어도 너무 감사했던 것이 나는 정말 여행을 갈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 캐나다로 온 가족이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생활이 갑자기 너무 어려워지면서 국내여행을 갈 때에도 큰맘 먹고 잔뜩 허리를 졸라서 다녔다. 그런데 유럽이라니... 최소 몇 백은 들 텐데 우리 형편으로는 당장 이사 비용이 급하지 아이를 여유 있게 보낼 수 있지 않았다. 다만 나에게는 비밀 적금이 하나 있었다. 내 월급은 항상 생활비와 이자 및 대출 상환에 다 들어갔기 때문에 많이도 모으지 못하고 1년에 대강 50만 원 정도씩 그렇게 5년을 모았다. 비밀리에 했던 것은 돈이 조금 쌓이려고 하면 항상 누군가 어디선가 돈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모아둔 돈 좀 있어?"라고 하면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어서 울면서 적금을 몇 번을 깼는지 모른다. 내가 이 돈만큼은 복리로 모으겠다는 생각으로 정말 5년을 버텼다. 누군가에게는 별 거 아닌 돈이겠지만 해가 바뀌면서 조금씩 모여서 몇 년 더 지나면 다른 적금들과 합쳐서 뭔가를 하기 쉽지 않을까 싶어 건드리지 않았다. 나는 그 적금을 깨기로 했다.


지금 우리 가족의 형편을 생각하면 큰 아이 유럽 여행이 가당키나 할까마는..... 아이에게 일생일대의 선물을 한 번 해 주고 싶었다. 내가 데려갈 수 없는 형편에 좋은 역사선생님과 함께 한 달을 보내면서 세상을 보는 시선을 넓혀오라고 하고 싶었다. 나는 유럽에 가질 못했다. 친정 아빠는 위험하다고 했다. 그리고 종교적인 부분도 있었다. 주일을 어떻게 지킬 것이냐고 하셨다. 지금은 좀 여유로워지셨지만 당시에 우리 교회와 우리 가족의 가장 큰 부분은 주일성수였기에 주일에 다른 교회에 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에 파견 연수를 갔을 때도 나는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려야 할 정도로 주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대학생 때 유럽에 다녀오지 못한 것은 지금까지도 너무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나는 해외여행을 가지 못했고 다만 스카우트 대원 인솔이나 국가에서 보내주는 파견 연수 같은 공식적인 사유만 허락이 되었다. 그렇게 짧게라도 다녀온 중국, 일본, 미국에서의 생활은 시선을 넓게 해 주었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의 틀마저도 변화한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아이를 유럽에 보내고 싶은 것은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나 이런 곳도 다녀왔어." 정도의 과시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려는 것이 아니다. 학교와 학원, 집, 그리고 조금 더 해서 교회 정도만 오가는 아이에게 다른 세상도 있다는 것과 앞으로 네가 살아야 할 세상이 이렇게 넓고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단순한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 속에 깊이 담긴 역사와 문화, 삶의 이야기를 느끼고 앞으로 더 넓어지면서도 좁아질 세상으로 다가가게 해 주고 싶었다. 나와 함께 가면 더 좋겠지만 그럴 여력은 없다. 둘이 갈 수 있는 비용도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가면 나머지 세 아이는 어찌할 수가 없다. 중학교를 마치는 이 시기에 부디 넓은 세상을 잘 보고 다녀와서 더 깊고 넓은 시선으로 나와 내가 속한 사회를 보면서 길을 걸어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누군가에게는 매번 방학마다 나가는 해외가 누군가에게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될 수도 있고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생각해 보니 우리 딸이 매우 부럽다. 엄마가 자기도 못 간 유럽으로 해외여행도 보내주다니....


나는 아이들 다 키워 놓고 환갑에나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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